[1948.4.19] "백범 김구 선생" 경교장에서 학생들에게 1948.4.19. 경교장에서 학생들에게... " 학생들은 미래의 주인공이다. 그런 까닭에 정의를 위하여 싸움하는 용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제군의 행동은 어떠했나 ! 내가 장덕수 사건으로 억울하게 미군율 재판에 증인으로 법정에 서게 되었을 때, 제군들은 어떠한 태도를 취했나 ? 나는 그때 .. 근현대사 2015.08.06
조선인 전사들 대일본국 육군중장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이은 총독부 자료와 그 밖의 자료에 의하면, 육군지원병 지원자는 1938년에 2946명이었던 것이 1941년에는 14만 4천여명, 1942년에는 25만 4천여명, 1943년에는 30만 3천여명으로 증가하고, 해군지원병 지원자도 9만명에 달했던 것으로 되어 있다. 영,미 .. 근현대사 2015.08.06
역대 육군 참모총장 현황 역대 육군 참모총장 현황 역대 성명 출신 재임 기간 초대 준장 이응준 일본육사 26기 (대좌)/군영 48.12.15~49.5.8 2대 소장 채병덕 일본육사 49기 (소좌)/ 49. 5. 9~ 49. 9. 31 3대 소장 신태영 일본육사 26기 (대좌)/ 특임 49.10.1~50.4.9 4대 소장 채병덕 일본육사 / 군영 50.4.10~50.6.29 5대 중장 저일권 일본육.. 근현대사 2015.08.06
이승만을 알기위해서 - 오른팔 김창룡의 행적에 대해서 요즘 갑자기 때 아닌 이승만 재평가 작업이 여당 및 보수언론등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헌법 전문에 4.19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적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의가 나옴은 건국의 아버지라는 타이틀로 인해 얻게 되는 여당의 정통성과 잇다아 있지 않을까 하는 저의 생각입니다. .. 근현대사 2015.07.23
어떤 세 친구의 사진 맨 오른쪽의 인물은 북간도 명동촌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문학적으로 재능이 있었습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숭실 중학을 자퇴했습니다. (양 옆에 있는 친구들도 함께 자퇴했습니다) 이후 27세 때인 1943년 일본 도시샤 대학 재학 중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돼 일본 감옥에서 고문 후유.. 근현대사 2015.07.21
왕정체제의 낙오자, 이승만 / 철저한 복벽주의자, 이상설 이승만과 김구는 30년 가까이 왕정체제에서 산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인격이 조선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어느 면에서 그들은 조선왕정체제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 인물들이었다. 김구는 물론 이승만 역시 과거에 실패한 전력이 있다. 특히 이승만은 과거에 다섯 번씩.. 근현대사 2015.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