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역사, 소식

황계지 서문

백삼/이한백 2013. 12. 9. 13:31

黃溪誌(황계지)

한글번역 이규삼(李揆三)

黃溪誌序

황계지서 황계지 서문

余老於峽棄於世,棲身窮谷,只事慵眠,平日所聞見,皆茫昧而不省,則况於文字記述之事乎,

여노어협기어세,서신궁곡,지사용면,평일소문견,개망매이불성,즉황어문자기술지사호,

→ 나는 세상을 등지고 깊은 산골에 사는 늙은이로, 다만 낮잠이나 자고 평일에 보고 듣는것이 모두 분명하지 않아 살피지 못하는데 하물며 문자로서 글을 짓는 일이야 어떠할까?.

茫昧 ; 분명하지 않다

今年仲秋,地主姜侯,偶訪余弊廬,屬余邑誌曰,視篆此邑于,今三載,莅任之初,欲知本邑,

금년중추,지주강후,우방여폐려,촉여읍지왈,시전차읍우,금삼재,이임지초,욕지본읍

古今事蹟

고금사적

→ 금년 추석에 황간의 주인 강현감이 누추한 나의 집을 방문하여 나에게 읍지를 간행하는데 대한 부탁하는 말씀을 하였다. “제가 이 읍에 부임한지 이제 3년이 되었습니다. 처음 부임하여 황간의 고금의 사적을 알아보려고 하였으나

∠視篆;공문서에 결재하는公務 ∠三載; 3년載(시를재)=年莅任; 맡아서 다스림

而邑旣無,何從而考其實乎,盖其載錄於輿地勝覽者,固多未詳,而且其纂集已久,其後事蹟이읍기무지,하종이고기실호,개기재록어여지승람자,동다미상,이차기찬집이구,기후사적

之可記者,亦已多矣

지가기자,역이다의

→ 종전의 읍지가 없으니 무엇으로 그 실제를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그 여지승람에 대개가 기록되어 실려 있으나 진실로 자세하지 않은 것이 많고, 또 편찬한지 오래된 것이어서 그 후의 사적을 기록하여야 할것이 또한 많습니다.

∠志는 誌로 해석함 ∠輿地 만물을 싣는 수레 같은 땅 ∠輿地勝覽;각도의 지리, 풍속 등을 적은 책

子旣詳於此邑之古事,又以文墨爲喜盍,爲我之以闢後觀,余旣辭謝不獲命,

자기상어차읍지고사우이문묵위희합,위아지지이벽후관,여기사사불획명,

而更思之夫郡縣

이갱사지부군

→ 선생께서 이 읍의 옛일을 자세히 알고 또 시문이나 서화를 좋아하시니 나를 위하여 읍지에 등재(登載)할 내용을 마련하여 뒷사람이 보게 해주십시요“하므로 나는 이에 사양하였으나 명을 얻지 못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대저 군현의

∠謝 사양하다.

之所當志者,不過虛實,沿革,山川,人物,土産,風俗.皆已見於輿地,而惟八路郡邑之事,要以盡

지소당지자,불과허실,연역,산천,인물,토산,풍속,개이견어여지,이유팔로군읍지사,요이진

載於一書,

재어일서

→ 읍지라는 것은 마땅히 허(虛)와 실(實)을 싣는데 불과할 것이나. 현의 연혁(沿革;역사). 산천(山川), 인물(人物), 토산품(土産品), 풍속(風俗)은 모두 이미 여지승람에서 볼 수 있으나. 오직 팔도 군읍의 중요한 것을 모두 한 책에 싣고저 하나

之不能無略,理有固然是以列邑,各有其,所以詳,輿地之未詳者,且輿地之纂己經二百기서지불능무략,이유고연시이열읍,각유기지,소이상여지지미상자,차여지지찬기경이百餘載,山川

여재,산

→ 그 책에 빠짐없이 싣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이유로 여러 고을에서 각각 상세한 내용의 읍지를 갖추려고 하였다. 여지승람에 자세하지 않은것은 여지승람을 편찬한지 200여년이 지나갔고, 산천이나

∠書 ; 여지승람

土産,雖無古今之大變,至於邑居之遷,徙人物之盛衰,風俗之美惡,可記可錄者,固非一類,

토산,수무고금지대변,지어읍거지천,사인물지성쇠,풍속지미악,가기가록자,고비일이류, 토산품이 비록 고금에 큰 변화가 없었다고 해도 지금에 이르도록 거주지의 변천이며 인물들이 성쇠, 풍속의 좋은것 나쁜것은, 기록할 수 있는 것은 기록해야 할 것이니 진실로 한가지만은 아닐 것이다.

苟無記籍而之,則一邑數百年之事,遂皆煙滅,而無徵,後之續輿地者,何所資焉,斯二者,

구무기적이지지,즉일읍수백년지사,수개연멸,이무징,후지속여지자,하소자언,사이자

乃侯之所大懼也

내후지소대구

→ 진실로 장부와 읍지에 기록이 없으면 한읍의 수백년의 일들이 드디어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지고 증거가 없을 것이다. 훗날 여지승람 속편을 발행한다면 무엇을 자료로 할것인가. 이 두가지를 현감께서는 크게 두려워하는 것이다.

之所以命余者,非有取爾也,盖曰生於斯老於斯知古事頗詳云,(余爾)則終亦有不敢辭

차후지소이명여자비유취이야개왈생어사노어사지고사파상운 이 즉종역유불감사

者,惟歲踰八十,精神昏耗,文字拙陋,不能詳實,則惟在後之人,修潤身且念.

자유세유팔십,정신혼모,문자졸루,불능상실,즉유재후지인수윤신차념,

→ 또 현감이 나에게 명한 것이 그가 취할것이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모두들 말씀하기를 태어나면 늙고 노인은 아는 것이 있고 고사(古事)에 자못 상세할 것이다. 우리는 죽음이 또한 있을 것이니 감히 사양하지 못한다. 나이 80을 넘기고 보니 정신은 혼미하고 글자도 잘 안되지만 오직 후인(後人)이 있음으로 몸과 닦아 마음을 맑게 할 것이다.

∠候는 侯의誤字 ∠(余爾)는 이(爾)와 같음

一邑之美惡,係於風俗之善惡,惟我玆鄕,雖曰峽中殘縣,氓淳俗朴,人稱忠厚之鄕,

일읍지미악,계어풍속지선악,유아자향,수왈협중잔현,맹순속박,인칭충후지향

→ 한읍의 미악(美惡)이 풍속의 선악(善惡)에 관계가 있으니 오직 우리 고장은 비록 협소하고 발전이 더딘 고을이지만 백성들은 순후하고 민속은 소박하여 사람들이 말하기를 충후(忠厚)한 고장이라고 한다.

∠縣氓;현에사는 백성 맹(氓)=민(民)

自庚辛飢荒之後,生民減半,旣失其恒産因忘,其恒心獄訟煩,興盜賊窃,發民多强悍,孝悌之자경신기황지후생민감반긔실기항산인망,기항심옥송번,흥도적절발,민다강한효제지행

→ 경신년의 굶주림으로 고통을 당한 이후에 백성들의 생산이 반으로 줄고 일정한 생산을 잃으니 일정한 양심을 잊어버려 소송(訴訟)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도적이 자주 일어나고 민심이 많이 사나워 져서 효도와 공경하는 행실이

獄訟 ; 재판, 소송

不興,士無學術,人才之出益衰,孟子所謂,凶歲多暴者,不幸近之矣,夫岐西之地一也,而前有

불흥,사무학술,인재지출익쇠,맹자소위,흉세다폭자,불행근지의,부기서지지일야,이전유

→ 일어나지 않고 선비는 학업이 없어 인재의 배출이 더욱 적어졌다. 맹자가 말한 흉년이 들면 다폭(多暴)해진다는 말씀에 불행하게도 가까워 졌다. 대저 기서(岐西)의 땅과 같이 되는 길 뿐이다. 예전에 있었던

∠岐西; 周 文王이 일어난 고장, 땅이 기름지고 어진 지도자를 내어 윤택한 것을 뜻함

讓路讓畔之風後,有捐廉棄義之俗,風俗之美惡,惟在上者導之耳方,今 聖上,當廟愛養生民

양로양반지풍후,유연염기의지속,풍속지미악,유재상자도지이,방금성상,당묘애양생민

→ 길을 양보하고 밭두둑을 양보하는 풍속이 된 후에 염치를 버리고 의를 버려도 되는 풍속이 되어야 한다. 풍속의 아름다움과 악함은 오직 윗사람의 지도에 달려 있다. 지금 임금께서 묘정에서는 마땅히 사랑으로 백성들을 기르고 어짐을 지키며

賢守當官淸簡,律已則移風易俗,特在一轉移之間耳,余將拱手而竣之

현수당관청간,율이즉이풍이속,특재일전이지간이,여장공수이준지

→ 관리는 마땅히 청렴하고 간결하고 법을 지키게 하여 풍속이 바뀌도록 하겠다고 했다. 특별하게 하면 풍속이 바뀌는 것은 잠간일 것이다. 나는 손을 마주잡고 장차 잘 완성되기를 바란다.

上之十年歲舍甲子 一月小春 日

상지십년세사갑자 一月소춘 일

→ 숙종 10년 갑자(서기1684년) 1월 초봄 일

八十一歲 老人 忠原 朴惟棟 識

팔십일세 노인 충원 박유동 지

→ 81세 노인 충원 박유동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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