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계 박연 선생은 고려우왕 4년인 1378년 8월 20일 이곳에서 출생 태종5년(1405년)인 28세에 생원이 되었고, 34세(1411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교리, 관습도관제조, 악학별좌, 대제학 등을 역임후 세조 2년(1456년)에 삼남 계우가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화를 당할뻔 하였으나, 세 임금에 봉직한 공으로 화를 면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으로 돌아와 살다가 세조4년(1458년)3월 23일 81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0년 5월 안채(11.8평), 사랑채(6.6평)를 학술용역을 근거로 복원하였다. 생가의 평면은 정면3칸 측면은 전후퇴가 있는 겹집에 전면퇴에는 우물마루를 설치하고 한켠에는 부엌과 곡식창고를 부설한 고미반자에 우진각의 기와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부속채는 1동으로 외양간, 광과 방1칸인 초가지붕으로 되어있다.
- 전해오는 이야기 : 효자박연
난계 박연은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신라의 우륵(于勒) 과 함께우리나라 우리나라 삼대악성 으로 불리워 지거니와 박연의 탄생지요 묘소가 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위대한 악성(악성)의 일면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어릴 때의 박연은 가야금을 매우 잘 타서 날아가는 새와 짐승들이 그의 곁으로 모여 와서 가야금 연주에 맞추어 덩실 덩실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올 정도이다. 음악에 천재였던 박연은 어릴 때부터 사람과 짐승의 마음을 하나로 통하게 하여 거의 신인(神人)에 가까웠으며 또 망고의 효자로 높았다. 박연의 어머니가 죽어서 심천면 마곡리에 묘를 쓰고 시묘(묘옆에 움막을 짓고 묘를 짓고 모시는 일) 살이를 하던 때의 일이다. 소년 박연이 매일 밤 어머니의 무덤 옆에서 꼬박 밤을 새우다시피 하자 시묘 첫 날밤부터 어디서 나타났는지 호랑이 한 마리가 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어린 박연과 묘를 지켜 주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도 또 그 다음 다음 날에도 호랑이는 걸르지 않고 소년 효자를 지켜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호랑이는 밤이 늦도록 묘 앞에 나타나지를 않았다. 박연 소년은 은근히 호랑이의 안부가 궁금 하였다. 움막 옆에서 매일 밤 어린 효자를 지켜주던 고마운 호랑이였으니 기다려 질 법도 하였다. 호랑이를 기다리기 위해 소년 박연은 새벽녘까지 잠을 한 잠도 이루지 못했다. 소년 박연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밤마다 움막 옆에서 묘와 박연을 지켜주다 그만 몸살이라도 난 것일까 도대체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아주 어디 먼 곳으로 떠나가 버린 건 아닌가 모를 일이었다. 잠을 설친 소년 박연은 거의 먼 동이 틀 무렵에서야 겨우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런데 소년 박연이 막 잠이 들다 꿈속에 호랑이가 나타나 말하기를 「상주님‥ 상주님 제발 저를 살려 주옵소서 저는 당제(지금의 길현리)에서 함정에 빠져 바로 죽게 되었습니다. 상주님‥‥」 소년 박연은 꿈속에서 벌떡 일어났다. 과연 꿈이었으나 소년은 도무지 호랑이의 애원이 꿈만 같지가 않았다. 「호랑이가 함정에빠져 눈물로 호소해 왔는데 내가 이러고 있다니‥」 소년 박연은 어머니의 묘소를 떠나 당제 쪽으로 달렸다. 내를 건너고 언덕을 넘어 당제까지 달려갔을 때 거기에는 놀라운 사태가 벌어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함정에 빠진 호랑이를 꺼내 놓고 삥 둘러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소년 박연은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 호랑이를 보았다. 틀림없이 어머니 묘소를 지켜주던 호랑이었다. 그러나 호랑이는 이미 숨이 진 뒤여서 박연이 어떻게 손 쓸 도리가 없었다. 소년 박연은 눈물을 흘리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자기와의 관계를 설명해주고 호랑이를 돌려 줄 것을 부탁했다. 마을 사람들은 박연의 효심과 짐승과의 인연을 귀하게 여겨 호랑이를 넘겨 주었다. 박연 죽은 호랑이를 어머니 묘소 밑으로 매고와 정성을 다해 묻어 주었다. 박연은 해마다 이 호랑이 무덤에 제사를 지내주어 생시의 고마움을 추모하였는데 박씨 문중에서는 박연 어머니의 묘소에 제사를 지낼 때마다 반드시 호랑이 무덤에도 제사를 지내 주었다고 전해 온다.
- 위치 :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 308번지
- 규모 : 건물 2동(안채,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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