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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 터진 '합리적 보수주의자' 홍용표…그의 고뇌·속내

백삼/이한백 2016. 2. 15. 17:57

등록: 2016-02-13 17:10  수정: 2016-02-13 18:43

 
 
 

 

생각에 잠긴 홍용표 통일부 장관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폐쇄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생각에 잠겨있다. 2016.02.12 김인철 기자 yatoya@focus.kr
 

 

(서울=포커스뉴스) "나는 홍용표 교수를 잘안다…대학(연세대) 후배이고…보수적인 학자지만 합리적인 사고를 할줄 아는 학자다. 지금 정부에서 많이 힘들 것으로 보인다. 힘 들고 피곤해서 입술까지 터진 것을 보니 안쓰럽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오랫동안 알고 지냈다는 어느 학계 인사가 13일 오전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그의 말대로 홍 장관이 보수이면서도 합리적인 대북관을 가지고 있다면 대북 강경책을 고수하는 청와대와 홍 장관 간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빚어지는 상황이다. 

실제로 청와대가 통일부의 개성공단 전면중단 발표를 밀어붙였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다. 통일부는 당초 개성공단 '잠정 중단'을 제시했으나,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전면 중단'이라고 문구를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홍 장관의 입술 상처가 점점 덧나면서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진 것만 봐도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저렇게 됐겠느냐'며 일종의 '동정론'이 일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 관련 성명서 발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개성공단 폐쇄에 대한 성명서 발표 후 취재진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2016.02.12 김인철 기자 yatoya@focus.kr

◆ 1급에서 차관 건너뛰고 장관…'파격 인사'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난 홍 장관은 전형적인 학자 출신이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96년부터 2000년까지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을 지냈고, 2013년까지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홍 장관은 2012년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활동하다가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외교·국방·통일분과 실무위원을 역임했고,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통일비서관을 지내기도 했다.

통일부 장관으로 취임한 건 지난해 3월이었다. 2월 개각 당시 통일부 장관에 '홍용표'라는 이름 석자를 예상한 이는 드물었다. 차관급을 건너뛰고 1급 직위에서 곧바로 장관으로 내정돼 '파격 인사'라는 평이 대체적이었다.

새누리당조차 홍 장관을 낯설어했고, 실무 경험이 부족하다거나 리더십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려했던 이들도 있었다.

재밌는 점은 홍 장관의 부친인 홍순일 씨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연이다.

홍순일 씨는 한국일보 기자 출신으로, 1974년 특파원 자격으로 응우옌반티에우 당시 베트남 대통령을 인터뷰했다. 문제는 군인 출신으로서 장기집권하는 대통령을 인터뷰한 이 기사가 박정희 정권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사실이다.

결국 한국일보 간부들은 중앙정보부에 소환돼 조사를 받게 되고, 때마침 동아일보 간부들마저 연행되는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10·24 자유언론실천운동이 발생하게 된다.

박정희 정권과 마찰을 빚었던 언론운동이라는 거대한 '태풍'이 홍 장관의 부친의 기사라는 '나비의 날갯짓'으로 일어났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홍 장관과 박근혜 대통령이 한 배를 탄 상황은 다소 아이러니하게 보인다.

통일부 장관 대표단 격려
지난해 12월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남북회담본부에서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남북당국회담 대표단을 격려하고 있다. 황 차관을 수석대표로 한 우리 대표단 3명은 이날 오전 회담본부를 출발, 북한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6층 회의실에서 전체회의를 여는 것으로 회담을 시작할 예정이다 2015.12.11 양지웅 기자 photo@focus.kr

◆ 비둘기, 매?…'올빼미'의 대북관

홍 장관은 지난해 취임식 직후 기자들이 '비둘기파냐, 매파냐'고 묻자 "올빼미 정도로 생각해달라"고 즉답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비둘기냐 매냐, 이런 것보다 균형감각을 가지고 가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자신을 '올빼미'로 자처한 통일부 장관의 대북관은 무엇일까. 홍 장관이 2005년 한양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발표한 통일연구원 논문 '6·15 남북공동선언 재조명: 이론과 실제'을 읽어보면 단서가 나온다.

당시 홍 장관은 햇볕정책과 6·15 남북공동선언에 대해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하면서도 한계가 있다고 적시했다.

햇볕정책에 대해 그는 "햇볕정책은 '정·경분리' 원칙을 활용,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남북 사회·경제교류의 활성화에도 불구하고, 정치·군사 분야에서의 협력은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였다"고 썼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역사적인 성과"라며 "정치적 신뢰구축을 바탕으로 한 남북한의 교류·협력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남북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 6·15 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남한과의 군사 대화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따라서 긴장완화 부문에서는 큰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고 하면서 "한반도에서도 현존하는 국가주의는 6·15 공동선언 의 성공적 이행에 장애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김대중 정부의 6·15 공동선언이 역사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한반도에서 낼 수 있는 효과 자체는 근본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논문 한 편으로 개인의 대북관을 온전히 대체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적어도 홍 장관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에 토를 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해당 논문에서 '김대중 정부가 대북송금으로 정상회담을 돈 주고 사왔다'고 말하는 일부 우파들의 주장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대북송금 그 자체만으로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체제유지에 급급한 북한의 상황을 고려할 때,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며 일관되게 화해·협력을 추진한 햇볕정책이 없었다면, 북한은 정상회담 자체를 거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 4차 핵실험 이후에도 "개성공단 유지"

홍용표 장관은 북한의 4차 핵실험(1월6일) 후인 지난달 22일 신년업무보고를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개성공단에 대한 폐쇄, 철수 등에 대해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앞서 분명히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또 개성공단에 대해 "개성공단이 남북관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분명한 위치가 있다"며 "그러한 것들이 이해가 됐기 때문에 그동안 유엔의 대북 제재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운영돼왔다"고 했다.

물론 홍 장관도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엔 대북 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그것이 '잠정중단'이 아닌 '전면중단' 수준의 제재였는지, 안보리 제재 결의 이전의 선제적인 고강도 제재였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홍 장관은 개성공단 전면중단을 최종적으로 발표한 통일부장관으로 역사에 남게됐다.


통일부 소식통은 "청와대가 개성공단 중단을 지시했고, 통일부는 잠정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대통령이 직접 전면이라고 고쳤을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언젠가 다시 학계로 돌아가야하는 홍 장관이 개성공단을 폐쇄시킨 통일부장관을 지냈다는 점은 평생 짊어져야할 짐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선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홍 장관이 대통령의 비서관에서 장관으로 '벼락출세'한 이후 학자적 양심과 대통령 총애 사이에서 고민이 많아 보인다.  


 

송은경 기자 songss@focu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