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크리스티안 샤드의 작품들

백삼/이한백 2014. 9. 1. 09:28

노골적이고 충격적인 작품들은 아쉽게도 빠져있음. 

 

1894년 독일 오버바이에른(Oberbayern)의 미스바흐(Miesbach)에서 태어났다. 1913년에서 1914년 뮌헨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했으며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 징집을 피해 스위스로 가서 다다(Dada) 운동에 참여하였다. 1918년 자신의 이름을 붙인 샤도그래프(Schadographs)라는 추상 사진을 실험하였다. 이것은 만 레이(Man Ray)의 레이요그래프(Rayographs)와 모홀리-나기(Moholy-Nagy)의 포토그램(Photograms)과 마찬가지로 카메라 없이 감광지 위에 직접 물체를 놓고 빛을 투과시켜 음영을 만드는 방법이다.

1920년 스위스를 떠나 이탈리아에서 5년 동안 머물렀으며 1925년 빈으로 이주했고 1928년 베를린으로 돌아와 그곳에 정착하였다. 그는 1921년부터 차갑고 사실적인 화풍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후에 독일에서 일어난 신 즉물주의(Neue Sachlichkeit, New Objectivity) 운동과 깊게 연관된다. 전후 혼란상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사물 자체에 접근하여 객관적인 실재를 철저히 파악하려는 이 운동은 전쟁의 공포와 도시 사회의 퇴폐적인 모습을 가차없이 그려냈다.

신 즉물주의에는 오토 딕스(Otto Dix), 게오르그 그로스(George Grosz), 막스 베크만(Max Beckmann) 등이 참여하였는데 이들은 캐리커처를 통해 전후 독일 사회의 부패상을 풍자하였다. 이에 반해 샤드는 개인의 내면에 관심을 가졌으며 사회의 불평등과 모순을 부르주아와  노동자 간의 거리감과 공허감을 통해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그러나 그의 냉정하고 날카로운 붓 끝은 전쟁의 잔혹함과 그로 인한 인간의 절망과 소외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1930년대 신 즉물주의가 나치에 의해 퇴폐미술로 낙인 찍혀 탄압을 받으면서 그 역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고 1940년대가 되어서야 초상화 의뢰를 받기 시작했다. 그는 1950년대에 마술적 사실주의(Magic Realism) 양식의 그림을 그렸으며 1960년대에는 포토그램을 다시 실험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그리고 1982년 2월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서 사망했다.

주요 작품에는 <일시적 사랑 Amourette> (1918), <트리그리온 백작부인 Countess Triglion> (1926), <자화상 selbstportraet> (1927), <제노아 다노코르트 백작 Count St. Genois d'Anneaucourt> (1927), <하우슈타인 박사 Dr. Haustein> (192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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