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병이 있습니다. 재앙이 오겠습니까(有疾心 唯有害)."
은(상) 후기(기원전 1300~1046년)의 임금이 길흉을 점치며 기록한 갑골문의 내용이다. '심질'은 '지나치게 마음을 쓰거나 괴로움을 당해 생긴 질환(思慮煩多 心勞生疾)'( < 좌전 > '소공' 조)이다. 그러니까 상나라 임금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앓고 있음을 고백하면서 나라의 장래에 악영향을 미칠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기야 '군주는 일일만기(一日萬機), 즉 하루에 만가지 업무를 처리한다'( < 상서 > '고요모')고 했으니…. 오죽했으면 조선조 숙종은 "즉위 후 노심초사로 수염이 다 하얗게 셌다(鬚髥盡白)"고 토로했을까( < 숙종실록 > ). 예컨대 세종은 명나라 사신이 방문한 1425년, 위중한 상태에서도 겨우 몸을 추슬러 사신을 맞이했다. 외교적인 결례를 범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신료들은 임금의 관곽을 미리 짜놓고 최악의 사태에 대비했다. 세종의 병명은 정신적인 과로였다. 세종은 그럼에도 "본보기를 보여줘야 할 과인이 병 때문에 오랫동안 정사를 보지 못했다"고 걱정했다.
"당신이 맡지 않겠다는데 누가 맡겠는가. 나 홀로 걱정하다가 병이 되었구나. 나랏일이 한심하구나."( < 광해군일기 > )
그러고 보니 제대로 만기(萬機)를 처리하다 보면 만병(萬病)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게 임금 자리였던 것 같다.
< 이기환 사회에디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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