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山公実録
同きニ十六日熊川水淵にて辰の刻より酉の刻まて大に舟戰して敵を破る斬取首三百八十余 此時新七郞良 勝勘解由氏 勝孫八郞忠重 等あり
(같은 시기 16일 공은 웅천수연(水淵)에 진각(辰刻 아침 8시)부터 酉刻(저녁 6시)까지 크게 수전으로 적을 부수어 머리 380여급을 취함. 이때 新七郞良 勝勘解由氏 勝孫八郞忠重 等의 공이 있었다.)
默記
(묵기)
御歸陣被成候
ちとまへかとにこもかいへ御こしなされ候
処にすいえんと申所にはん舟の大しやう分十三そうい申候
大川のせよりはやきしはのさし引御さ候 所の內にちとしほのやハらき申候
所に十三そうのふねい申候
それを見付是ともとり可よし舟手と御相にてはいまのせとをこきくたし候
儀はなるましきとていつれもせきふねを御かゝり被成
さき手のふねともハ敵船にあひ手負あまたいてき申候
中にも來島出雲守殿うちしににて御座候
其外ふね手の衆めしつれられ候
からうのもの共もくわはん手負討死仕候
処に 毛利民部大夫殿せき舟にて、はんふねへ御かゝり成候。
はん船へ十文字のかまを御かけ候処に、
はん船より弓鉄砲はけしくうち申候に付、
船をはなれ海へ御はいりなされ、あやうく候
処に、藤堂孫八郎、藤堂勘解由両人船をよせ、敵船をおいのけ、たすけ申候。
朝の五しふんより酉の刻まて御合戰にて御座候
みなとのやうすはん船能存候に付風を能見すまし
其せと口をめけほをひきかけはしらせ申について是非なくおつかけ申儀もまかいならす
いつみ樣も手を二か所おはせられ候
(진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 조금 전에 제포薺浦에 가셨습니다.
'수영'이라는 곳에 조선 대장선 13척이 있었습니다.
큰 강의 여울목에서 바닷물의 간만이 빠른 해역인데, 약간 바닷물의 흐름이 약해진 구역에
13척의 배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꼭 쳐부숴야겠다고 수군(舟手)들과 상의하여 싸우게 된 것입니다.
큰 배로는 지금의 좁은 해역을 배를 저어나갈 수 없으므로, 모두 세끼부네(關船)를 마련한 후에
싸움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먼저 싸움을 시작한 수군들은 적선을 만나, 많은 사람들이 부상당했습니다.
그중에서 '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出雲)'님은 전사하셨습니다.
그밖에 수군들이 잡혀갔습니다.
부하들도 과반수는 잡혀가거나 전사하든가 했습니다.
그곳에서 모리민부 대부(毛利民部 大夫, 좌군의 행정담당관 毛利高政) 님이 세끼부네를 타고 적선을 공격했습니다.
적선으로 뛰어들어가기 위해 十字 모양의 낫을 걸었습니다만,
적선으로부터 활과 총탄이 격렬하게 퍼부었므로
배를 떠나 바다로 들어가 위험하게 되었는데,
(그때)'도도 송하찌로(藤堂孫八郎)'와 '도도 강까이유(藤堂勘解由)' 두 사람의 배가 다가와서 적선들을 밀어제친 후 구해드렸습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6시까지 싸웠습니다.
항구의 모습이나 적선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으므로, 바람의 방향도 잘 판단하여서
그 좁은 해역을 벗어나 돛을 끌어당겨 달렸습니다. 그 때문에 적도 어쩔 수 없이 추격할 수 없었습니다.
이쯔미 님(和泉樣,도도 다까도라藤堂高虎를 말함, 좌군 소속 대장)도 팔 두 곳을 부상당했습니다.)
(김시연 작가의 일본어 재번역에 의함)
行狀
到熊川水淵而舟戰公被レ創身如刻漆士卒多死敵船咸沈溺
행장
웅천수연(우수영 앞바다를 말함)에 도착해 수전을 했다. 공이 몸에 상처를 입어 칠그릇 새긴 것 같았다. 사졸이 많이 죽어 적선과 함께 침몰해 빠졌다.
藤堂高虎(1556 - 1630)
高山公実録은 藤堂高虎(토도 다카도라)의 문서를 모아 만든 전기이다.
藤堂高虎(토도 다카도라)는 정유재란시 수군을 이끌고 참전해 원균을 칠천량해전에서 대패시키고 남원성전투를 지휘해 함락시켰다. 그후 명량해전을 지휘하다 부상당했다.
그후 강항을 납치해 데려갔으며 그후 세키가하라(関ヶ原)전투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가문을 배신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도와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도쿠가와 가문의 중신이 된 사람이다.
시코쿠 今治城과 藤堂高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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