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밑 암초를 보지 못한 서툰 선장이었다."
1986년 8월 6일, 청보 핀토스 선장이었던 허구연 감독은 이 말을 끝으로 청보호의 선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남긴 성적은 15승 2무 40패, 승률 2할 7푼 3리였다.
1985년 시즌 도중 삼미 슈퍼스타즈를 인수했던 청보 핀토스는 그해 39승 1무 70패, 최하위로 시즌을 마치자 김진영 감독을 퇴진시키는 한편 MBC 방송 야구해설위원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허구연을 감독으로 전격 영입했다.
유려한 해설로 학구적, 이론적 이미지를 심어주었던 허구연은 35세라는 역대 최연소 감독으로 각광을 받으며 프로야구 무대 전면에 등장했다. 하지만 1986년 시즌을 시작하자마자 7연패의 쓴 맛을 봐야했다. 팀은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허구연 감독은 5월 8, 9일 인천에서 빙그레 이글스에 연승을 거둔 다음 지휘봉을 내려놓고 강태정 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긴 뒤 '자의반 타의반' 일본으로 단기 외유를 떠나야했다.
6월 10일에 귀국한 허구연 감독은 전기리그 종료 후 이틀 뒤인 6월 14일에 현장에 복귀했으나 한 번 가라앉기 시작한 팀을 제대로 이끌어보지도 못하고 결국 도중하차했다.
허구연 해설위원이 청보 사령탑으로 가게 된 경위에는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봤다.
"1985년 시즌 중 당시 MBC 청룡 이웅희 사장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MBC는 어우홍 감독 대신 후임을 물색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웅희 사장과 서울 롯데호텔에서 3번째로 만난 자리에서 '어우홍 감독님은 고교 은사인데 제자로서 그 자리를 밀고 들어간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고 고사했다. 결국 그 해 후기부터 김동엽 감독이 MBC로 가게 됐다."
허구연 해설위원이 MBC 감독직 제의를 뿌리쳤다는 얘기는 그 동안 별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다. 허구연 위원은 "그 때는 감독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1985년 시즌 뒤 박정삼 청보 단장이 허구연 위원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박정삼 단장의 제의를 놓고 한 달 간 고심했다. 감독직을 수락하는 대신 코치진 인사권과 계약기간 3년 보장을 요구했다. 코치 경험도 없는 판이어서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성적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프로야구 판에서 허구연 감독의 요구는 부질없는 노릇이었다. 성적이 좋지 않자 안팎에서 그를 흔들어댔다.
"일본에 다녀온 뒤 구단과 싸웠다. 심지어 3루 주루 코치가 상대 팀에 사인을 알려주는 기막힌 일도 당했다. 제주도 캠프 스케줄도 감독 손으로 짜지 못하는 한심스런 일도 벌어졌다." 그래서 그는 사퇴를 결심했다. 사퇴 발표 후 다음날 새벽 청보 담당이었던 장윤호 기자(현 스타뉴스 대표)가 전화를 걸어와 통화를 하면서 자신이 '서툰 선장'이었음을 털어놓은 것이다.
허구연 감독이 현장에 있는 동안 시선을 붙잡아매는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무언가 울분에 찬 표정으로 심판 앞에서 거친 발길질을 하는 장면이었다.
인간은 발로 땅을 딛고 산다. 발이 허공으로 들리는 것은 위태로움을 뜻한다. 한 발을 드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으름장이자 강력한 분노의 표시이다. 야구에서 발을 높이 드는 것은 아주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금기시 된다. 그런데도 허구연 감독은 '발을 높이' 들었다.
당연히 그 까닭이 있었다. 발단은 1986년 3월 29일, 청보 핀토스는 삼성 라이온즈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5-6으로 졌다. 허구연 감독으로서는 난생 처음 프로야구 감독으로 지휘를 했던 경기였지만 경기도중 이근우 주심과 주루 플레이를 놓고 실랑이가 있었다. 당시 야구판은 '허구연에게 지면 안 된다.'는 말이 떠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경험도 없는 풋내기 감독한테 지면 망신살이 뻗친다는 얘기였다.
6월 30일 인천구장. 허구연 감독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롯데 자이언츠와 야간경기를 벌인 청보는 1-2로 뒤지고 있던 6회 초 롯데 공격 때 선발투수 김기태(재일교포)가 3타자 연속 볼넷을 내주어 무사 만루로 몰렸다. 롯데 6번 타자 김한조가 포수 앞 땅볼을 친 뒤 1루로 뛰었고 공을 잡은 청보 포수 김진우가 홈플레이트를 찍은 다음 1루수 김경갑에게 공을 던졌다. 하지만 이 공은 타자주자 김한조를 맞추고 말았다. 기록은 포수 에러. 그리고 1사 만루가 됐다.
바로 이 대목에서 허구연 감독이 덕 아웃에서 득달같이 뛰쳐나왔다. "상대 타자주자가 라인 안쪽으로 뛰는 바람에 김진우가 던진 공에 맞았는데 왜 세이프냐"라는 게 항의의 요지. 이근우 1루심은 막무가내로 고개를 내저었다.
허구연 감독은 개막전을 비롯해 비슷한 상황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여겨 그 동안 누적돼 온 심판, 특히 이근우 심판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다.
"당시 허구연이한테 지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감독을 관두는 한이 있더라도 그냥 물러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똑같은 룰을 적용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래서 땅을 박차면서까지 항의를 한 것이다."(허구연 해설위원)
허구연 감독의 항의는 계속됐고 경기는 무려 53분간이나 중단됐다.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박현식 심판위원장과 심판조장이 그라운드로 내려와 허 감독을 설득했고, 청보 구단 임완 사장도 "참으라"고 달랬다. 이근우 심판은 그 경기 오심으로 징계를 받았고, 허구연 감독은 더욱 미운 털이 박혔다.
그 날 한국야구위원회 공식 기록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20:21~21:14 53분간 1차 중단. 21:19~21:28 19분간 2차 중단. 1차 중단=(청보 허구연 감독이) 6회 초 6번 김한조가 1루수(수비)를 방해했는가로 어필하다가 선수단 철수. 20:38 주심, 경기 속행하지 않으면 감독 퇴장 경고. 20:57 허구연 감독, 제소를 전제로 경기에 임하겠다고 주심에게 통고. 21:00 주심, 제소 사유가 안 된다고 장내 방송. 21:14 경기재개'
허구연 해설위원의 프로야구 감독 경험은 그 사태를 고비로 짧게 끝났다.
1986년 8월 6일, 청보 핀토스 선장이었던 허구연 감독은 이 말을 끝으로 청보호의 선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남긴 성적은 15승 2무 40패, 승률 2할 7푼 3리였다.
1985년 시즌 도중 삼미 슈퍼스타즈를 인수했던 청보 핀토스는 그해 39승 1무 70패, 최하위로 시즌을 마치자 김진영 감독을 퇴진시키는 한편 MBC 방송 야구해설위원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허구연을 감독으로 전격 영입했다.
6월 10일에 귀국한 허구연 감독은 전기리그 종료 후 이틀 뒤인 6월 14일에 현장에 복귀했으나 한 번 가라앉기 시작한 팀을 제대로 이끌어보지도 못하고 결국 도중하차했다.
허구연 해설위원이 청보 사령탑으로 가게 된 경위에는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봤다.
"1985년 시즌 중 당시 MBC 청룡 이웅희 사장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MBC는 어우홍 감독 대신 후임을 물색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웅희 사장과 서울 롯데호텔에서 3번째로 만난 자리에서 '어우홍 감독님은 고교 은사인데 제자로서 그 자리를 밀고 들어간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고 고사했다. 결국 그 해 후기부터 김동엽 감독이 MBC로 가게 됐다."
허구연 해설위원이 MBC 감독직 제의를 뿌리쳤다는 얘기는 그 동안 별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다. 허구연 위원은 "그 때는 감독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1985년 시즌 뒤 박정삼 청보 단장이 허구연 위원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박정삼 단장의 제의를 놓고 한 달 간 고심했다. 감독직을 수락하는 대신 코치진 인사권과 계약기간 3년 보장을 요구했다. 코치 경험도 없는 판이어서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성적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프로야구 판에서 허구연 감독의 요구는 부질없는 노릇이었다. 성적이 좋지 않자 안팎에서 그를 흔들어댔다.
"일본에 다녀온 뒤 구단과 싸웠다. 심지어 3루 주루 코치가 상대 팀에 사인을 알려주는 기막힌 일도 당했다. 제주도 캠프 스케줄도 감독 손으로 짜지 못하는 한심스런 일도 벌어졌다." 그래서 그는 사퇴를 결심했다. 사퇴 발표 후 다음날 새벽 청보 담당이었던 장윤호 기자(현 스타뉴스 대표)가 전화를 걸어와 통화를 하면서 자신이 '서툰 선장'이었음을 털어놓은 것이다.
허구연 감독이 현장에 있는 동안 시선을 붙잡아매는 한 장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무언가 울분에 찬 표정으로 심판 앞에서 거친 발길질을 하는 장면이었다.
인간은 발로 땅을 딛고 산다. 발이 허공으로 들리는 것은 위태로움을 뜻한다. 한 발을 드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으름장이자 강력한 분노의 표시이다. 야구에서 발을 높이 드는 것은 아주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금기시 된다. 그런데도 허구연 감독은 '발을 높이' 들었다.
당연히 그 까닭이 있었다. 발단은 1986년 3월 29일, 청보 핀토스는 삼성 라이온즈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5-6으로 졌다. 허구연 감독으로서는 난생 처음 프로야구 감독으로 지휘를 했던 경기였지만 경기도중 이근우 주심과 주루 플레이를 놓고 실랑이가 있었다. 당시 야구판은 '허구연에게 지면 안 된다.'는 말이 떠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경험도 없는 풋내기 감독한테 지면 망신살이 뻗친다는 얘기였다.
6월 30일 인천구장. 허구연 감독은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롯데 자이언츠와 야간경기를 벌인 청보는 1-2로 뒤지고 있던 6회 초 롯데 공격 때 선발투수 김기태(재일교포)가 3타자 연속 볼넷을 내주어 무사 만루로 몰렸다. 롯데 6번 타자 김한조가 포수 앞 땅볼을 친 뒤 1루로 뛰었고 공을 잡은 청보 포수 김진우가 홈플레이트를 찍은 다음 1루수 김경갑에게 공을 던졌다. 하지만 이 공은 타자주자 김한조를 맞추고 말았다. 기록은 포수 에러. 그리고 1사 만루가 됐다.
바로 이 대목에서 허구연 감독이 덕 아웃에서 득달같이 뛰쳐나왔다. "상대 타자주자가 라인 안쪽으로 뛰는 바람에 김진우가 던진 공에 맞았는데 왜 세이프냐"라는 게 항의의 요지. 이근우 1루심은 막무가내로 고개를 내저었다.
"당시 허구연이한테 지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감독을 관두는 한이 있더라도 그냥 물러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똑같은 룰을 적용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래서 땅을 박차면서까지 항의를 한 것이다."(허구연 해설위원)
허구연 감독의 항의는 계속됐고 경기는 무려 53분간이나 중단됐다.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박현식 심판위원장과 심판조장이 그라운드로 내려와 허 감독을 설득했고, 청보 구단 임완 사장도 "참으라"고 달랬다. 이근우 심판은 그 경기 오심으로 징계를 받았고, 허구연 감독은 더욱 미운 털이 박혔다.
그 날 한국야구위원회 공식 기록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20:21~21:14 53분간 1차 중단. 21:19~21:28 19분간 2차 중단. 1차 중단=(청보 허구연 감독이) 6회 초 6번 김한조가 1루수(수비)를 방해했는가로 어필하다가 선수단 철수. 20:38 주심, 경기 속행하지 않으면 감독 퇴장 경고. 20:57 허구연 감독, 제소를 전제로 경기에 임하겠다고 주심에게 통고. 21:00 주심, 제소 사유가 안 된다고 장내 방송. 21:14 경기재개'
허구연 해설위원의 프로야구 감독 경험은 그 사태를 고비로 짧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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