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 8회 - 평양 탈환.| 2월, 명나라 조정에서는 크게 군사를 동원하여 병부우시랑 송응창*을 경략으로 임명하고, 병부원외랑 유황상과 병부주사 원황*에게 군무(軍務)를 맡게 하여 요동에 머무르게 하고, 제독 이여송을 대장으로 삼아 삼영장인 이여백*, 장세작, 양원과 남방 장수 낙상지*, 오유충, 왕필적 등을 .. 조선의역사 2014.01.07
징비록 - 7회 - 민중의 봉기,의병 훈련원 부봉사 권응수* · 정대임* 등이 그 향토의 군사를 거느리고 영천의 적군을 쳐서 부수고 마침내 영천을 수복했다. ☞ 권응수 : 조선시대의 무신. 선조17년(1584) 무과에 급제한 후 훈련원 봉사로서 북변 수비에 종사했다. 선조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해 영천성을 수복.. 조선의역사 2014.01.07
징비록 - 6회 - 이순신과 조선수군 전라수군절도사 이순신이 경상우수사 원균과 전라우수사 이억기* 등과 함께 적병을 거제 바다 가운데서 크게 쳐부수었다. ※ 이억기 : 조선시대의 무신 일찍이 무과에 급제, 경흥 부사 · 온성 부사를 역임하면서 북방의 수비에 힘썼다. 선조24년(1591)에 전라 우수사가 되고, 이듬해 임진.. 조선의역사 2014.01.07
징비록 - 5회 - 평양성 전투 평양이 함락되었다. 임금께서 가산으로 행차하셨고, 동궁은 묘사의 신주를 받들고 박천에서 산골에 있는 고을로 들어갔다. 처음에 적병이 강가 모래 위에 나누어 주둔하여 10여 진(陣)을 만들고 풀을 엮어 장막을 치고 있었으나, 여러 날이 되도록 강을 건너지 못하여 경비가 자못 게을러.. 조선의역사 2014.01.07
징비록 - 4회 - 국왕의 피란과 구원군의 요청 4월 30일 새벽에 임금께서 서쪽으로 파천(서울을 버리고 피란하는 일)의 길을 떠났다. 신립이 떠난 후 서울 사람들은 날마다 싸움에 이긴 보고가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전날 저녁에 전립(군대에서 죄인을 다루는 병사가 군장할 때 쓰는 갓)을 쓴 사람 세 명이 말을 달려 숭인문으로.. 조선의역사 2014.01.07
징비록 - 3회 - 임진왜란의 발발과 서전의 붕괴 경상 우병사 조대곤을 경질하고 특지로 승지 김성일이 이를 대신하게 하니, 비변사에서 “김성일은 유신(儒臣)이므로 이러한 때 변방 장수의 임무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라고 아뢰었으나 임금께서 윤허하지 않으시므로, 김성일은 배사(拜辭)하고 임지로 떠났다. 4월 13일에 왜병이 국.. 조선의역사 2014.01.07
징비록 - 2회 - 우리의 국방태세와 이순신의 기용 우리 조정에서는 왜국의 동태를 걱정하여 변사(국방사무)에 밝은 재신을 뽑아 하삼도(충청도 · 전라도 · 경상도)를 순찰하여 방비하도록 했다. 김수*를 경상 감사로 삼고, 이광*을 전라 감사로 삼으며, 윤선각*을 충청 감사로 삼아 병기(兵器)를 준비하고 성지를 수축하게 했는데, 그중.. 조선의역사 2014.01.07
징비록 - 1회 - 전란 전의 일본국과의 관계 만력(萬曆=명나라 신종의 연호) 병술년(선조19년, 1586) 무렵에 일본국 사신 귤강광(다치바나 야스히로)이 일본의 국왕* 평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서신을 가지고 우리나라에 왔다. ☞ 일본 막부의 장군을 지칭하는 것으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가마쿠라 막부를 창설한 후 모든 국정.. 조선의역사 2014.01.07
비운의 왕 단종 / 충신 엄흥도 비운의 왕 단종 / 충신 엄흥도 1, 비운의 왕 단종 / 충신 엄흥도 조선 6대 임금인 단종(端宗1452~1454)이 영월로 유배된후 복위운동이 일어나자 왕위를 찬탈한 단종의 숙부 세조에 의해 17세에 사약을 받고 영월 동강에 버려진다, 엄흥도(嚴興道): 당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는자는 3족을 멸한.. 조선의역사 2014.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