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앵그르
유럽 명화에 보면 유독 오달리스크를 소재로하여 그린 그림이 많습니다. 오달리스크 자체가 오리엔트에서 온 것이라 낯설고 신비해보이기도하고 선정적인 코드와 아름다운 여체가 화가들에게는 좋은 소재 랍니다.
하얀피부의 여성을 오달리스크로 선호해서 '하얀노예' 이런 표현도 가끔 씁니다. 많은 작가중에 앙리 마티스와 오달리스크의 대표작 '그랑 오달리스크' 의 작가 앵그르작품 올려 봅니다.
앙리 마티스의 오달리스크는 연출 느낌이 너무 나 좀 키치해보이기까지 하나 다 수십억대 호가하는 키치한 작품입니다. 어차피 백인 모델 을 쓰니 오달리스크 연출은 쉬울듯합니다.
앵그르의 걸작 중 하나가 「그랑드오달리스크 (Grande Odalisque)」이다. 이국풍의 나부가 아름답고 요염한 자태를 하고는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 그림으로, 유연한 곡선과 아름다운 피부가 압권이다.
'오달리스크'란 터키 황제의 신변에서 시중을 들던 여자 노예를 가리키는 말로, '그랑드 오달리스크'란 곧 '큰 노예'이다. 이 작품은 앵그르가 이탈리아에 체류할 때 나폴리 왕국의 카로리네 여왕의 주문에 의해서 완성한 작품으로, 당시 근동 지방에 뻗친 프랑스의 세력과 함께 세인들의 이목을 끈 터키의 풍물에 대한 관심과 취미가 반영되어 있다.
특히 여체를 비롯해 커튼과 침상의 도구들을 표현한 정밀한 붓 터치와 그림 속 오브제들의 전체적인 조화와 통일감, 그리고 전면으로 비춘 엷은 광선과 함께 빛나는 우아한 여체의 미가 고전주의의 원칙을 철저히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인의 머리에서 허리를 거쳐 발끝으로 연결되는 S자, 즉 콘트라포스토의 곡선은 고전미의 대표적인 곡선으로, 이 여인을 더욱 우아하고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앵그르는 고전주의 화가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1819년 파리의 살롱에 출품되었을 때, 엄격한 해부학에 눈이 길들여진 고전적 화풍의 평론가들은 이 작품에 대해 엄청난 비난을 보냈다. 이 그림이 비난을 받은 이유는 그림 속 여인의 신체가 여러모로 왜곡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이 여인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난히 긴 허리가 눈에 띈다. 해부학에 의거하면 이 여인은 정상적인 사람보다 척추가 몇 마디는 더 있어 보인다. 허리와 히프 그리고 허벅지의 경계도 불확실하며, 오른쪽 다리 위에 올려진 왼쪽 다리가 어색하기 그지없다. 발 또한 오른발과 왼발의 위치가 바뀐 것 같다. 그리고 그 길게 휘어진 허리선과 맞물린 팔 또한 대단히 길어 보이며, 몸통과 왼쪽 팔의 관계 또한 어색하다. 평론가들은 앵그르의 스승인 루이 다비드1)가 지적한 대로 예술적 재능은 있을지 모르지만 소묘력이 부족한 앵그르를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앵그르는 이런 엄격한 해부학과 해부학에 의거한 소묘를 강조하면서 자신의 그림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회화는 해부학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며, 눈으로 보아 아름다운 것이 바로 회화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이 말은 회화가 더 이상 대상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해부학, 즉 엄정하고 정밀한 과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 예술적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순수 예술적 아름다움이란 대상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감각과 의지에 따라 가공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곧 예술의 아름다움이 조형, 즉 선과 색에 있음을 주시한 것이다. 달리 말해 앵그르는 화가란 현상의 합리적 재현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그 조형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있다는 것을 천명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랑드 오달리스크」는 해부학을 고의로 왜곡시켜 가면서 허리와 팔의 긴 선을 통해 유려한 여인의 본질을 표현한 것이며, 팽팽한 양감은 고운 여인의 피부 감촉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여인은 해부학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예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형상이며, 예술적으로밖에는 존재할 수 없는 형상인 것이다. 바로 눈으로 보아 아름다운 형상이 진정 예술적 아름다움이라는 앵그르의 말이 실감나는 모습인 것이다.
이처럼 예술가가 보고 느끼는 자율 의지에 따라 형상을 창조할 수 있음은 예술 창작의 관례를 거부하는 것으로, 도덕적 교훈과 메시지를 위해 완전하고 지고한 미를 창출했던 과거의 예술, 즉 고전주의와는 다른 예술의 시대인 낭만주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그 새로운 화풍을 촉발시킨 주역이 바로 앵그르라는 점에서 그를 고전적 낭만주의로 부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