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역사, 소식

추풍령 눌이항산 봉수대(訥伊項山 烽燧臺)

백삼/이한백 2013. 11. 28. 10:45

봉수대(烽燧臺)

22. 추풍령 눌이항산 봉수대(訥伊項山 烽燧臺)

영동(永同)의 봉수로(烽燧路)는 제2거(釜山 東萊:南海 錦山-서울 南山)봉수로(烽燧路)가 통과(通過)하는 봉수대로서, 추풍령면(秋風嶺面) 눌의항산(訥伊項山)744.5m 봉수대(烽燧臺)는 금릉(金陵) 고성산(高城山) 봉수대에서 전달(傳達)을 받고, 눌이항산 봉수대에서 황간(黃澗) 소이산(所伊山) 봉수대로, 所伊山에서 용산(龍山) 박달라산(朴達羅山) 봉수대로 傳達되어, 옥천(沃川) 월이산(月伊山) 봉화대로 전달해주면, 환산(環山)-계족산(鷄足山)-문의소이산(文義所伊山)-거질대산(巨叱大山)-소을산(所乙山)을 거쳐 충주 망제산성(望弟山城)에서 문경 충주에서오는 봉수와 함께 받아 안성(安城: 竹山죽산) 건지산(巾之山) 용인 보개산(龍仁寶蓋山) 광주천천현(廣州穿川峴)으로 하여 서울 목멱산(木覓山(南山)에 도달(到達)하고 궁성(宮城)에서는 목멱산의 봉수대에서 국가안위(國家安危)를 전달 받는다. (영동군지-한국 근세 전기 521-522참조)

이중에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도계에 있는 눌이항산 봉수대는 744.5m 정상에 있다. 눌의항산은 눌의산(訥誼山)이라고도 하며 주민들은 선계산(仙溪山) 누리산이라고 부른다. 산정(山頂) 봉수대에 오르는 길은 은편마을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 길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영동현 군병조에 기록된 봉수대에 배속된 봉군수는 별장(別將)2인, 감관(監官)10인 봉군(烽軍)50명 보(保)150명으로 기록 되어 있다.

이 숫자는 현내의 소이산 봉수대에 배속된 군인 숫자와 합한 것이다.

봉수대가 있었던 곳은 헬기장을 만들면서 모두 파괴된 것으로 보이며, 헬기장 표시로 사용한 석재들이 봉수대의 석재로 보인다. 현재 봉수대 아래에는 동에서 북으로 경부고속도로와 국도, 경부선 철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북서쪽 4km 쯤에 소이산 봉수대가 보이고 남동쪽에 금산(김천) 금성산이 보인다.

이 봉수대는 추풍령 역참의 관할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유적분포지도 영동군 2006)

23. 추풍령(秋風嶺) 역참(驛站)

고려사지(高麗史誌)에 경산부도에 소속으로 금산군(金山郡경북김천)에서 35리에 위치한다고 되어 있고, 조선 세종실록지리지에 황금소 추풍역이라고 했으며, 여지도서에는 김천도에 소속되어 금산35리에 있으며, 서쪽에 신흥역 20리, 동은 문산역 20리, 북은 상주 낙서역이 60리에 있고, 대마 2필, 중마 2필, 소마 10필이 있다.고 되어 있다.

조직 인원으로 역리 32명, 노 3명, 비 1명으로 되어 있다. 역재(驛宰(長)는 종6품 찰방(察訪)이었다,

역참은 말에 따른 마전(馬田)을 경작하여 자체 운영하는 체제였다.

역참에는 원(院) 관영숙박업소와 봉수대와 수참(水站)에서는 배(渡船)를 관리해야 했다, 이러한 역참제도가 폐지 된것은 고종 32년1886년 이었다.

(영동군지)

24. 추풍령원(秋風嶺院)

역참에는 원(院)이 함께 있었다. 원은 관영(官營) 숙박업소이고, 사영(私營) 숙박업소는 주점(酒店) 주막(酒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