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역사

연초 흡연역사

백삼/이한백 2017. 2. 2. 20:16

 

연초 흡연의 역사

 

?담배의 전래와 장죽의 등장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 라고 우리는 비유법을 씁니다.

사실 담배는 우리나라에 전래된 역사가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습니다.

 

조선 인조 때 장유가 지은 (계곡만필)에서는 담배가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전해하고 있어 임진왜란 때 처음으로 담배가 전해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역사 속에 담배*

1641년 이수광의( 지봉유설 중)

담배 초명은 또한 남령초라고 하는데 근세 왜국에서 비로소 나오다“ 담배는 잎을 따서 말려서 불을 붙여 피운다. 병든 사람은 대통은 가지고 그 연기를 마신다. 한번 빨면 그 연기가 콧구멍으로부터 나온다. 능히 다모가 하습을 제거하며 또한 능히 술을 깨개 한다. 지금 사람들이 이를 심어 그 방법을 씀으로써 매우 효과가 있다. 그러나 독이 있으므로 경솔하게 사용하면 아니 된다" 기록 했습니다.

 

*1760년 이익 (성호사설 중에서)*

"이로움보다 해로움 이 더 심합니다.

안으로 정신을 해치고, 밖으로 귀와 눈을 해칩니다. 담배연기를 쐬면 머리

카락이 희어지고, 이가 빠지며, 살이 깎이고, 사람으로 하여금 노쇠하게 합니다. 내가 이 담배에 대해 이로움

보다 해로움이 더 심하다고 하는것은

, 냄새가 독해 재계하면서 신명과 통

할 수 없는것이 첫째이고, 재물을 축내는 것이 둘째이며, 이 세상에는 할

일이 너무 많아 걱정인데, 요즘 사람들은 상하노소를 막론하고 일년

내내 하루종일 담배 구하기 급급하여 잠시도 쉬지 못하는것이 셋째입니다".

담배가 전래되고 백년의 시간차이 담배에 관련되어 보는 인식이 많이 달라져 있는걸 알 수있습니다.

*흡연의 천국시대*

 

16세기 말 17세기 초 담배가 전래되는

시기에는 흡연은 천국 시대였습니다.

담배가 전래된 초기에는 흡연의 보급속

도가 빠르고, 그것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 지지 않아 누구나 담배를 피울

수 있었습니다.

6살 어린이부터 70세된 노인까지 이르

기까지 담배를 피웠으며, 양반은 물론

이고 평민 심지어 천민인 노비에 이르

기까지 마음대로 담배를 피울수 있었

습니다.

 

 

그러나 남녀노소 상하귀천을 막론하고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은 당시 양반층 에게는 곤혹스런 일이었습니다.

조선시대는 신분제사회이었고 신분간

의 차별이 뚜렸하였던 시기였습니다.

양반과 평민이 입는 의복이 달랐으며

집의 규모(몇 칸이냐)재료(초가 집이냐

,기와집이냐)의 면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시기에 담배만은 남녀노소 상하귀천을 가리지 않고 피울 수 있었

으니, 당시 천대받고 있었던 천민이나

여자들 양반 내지 남자들과 맞 먹으면

서 담배를 피우는 기분이란 말할 수

없는 희열이었다 담배를 누구나 똑같이

피운다는 사실은 신분제를 무너뜨리

는 형태로 작용할수도 있었습니다

 

신분제에 따른 담배문화의 형성

 

17세기 후반 주자학이 강화되면서

가부장제적 질서가 심화되었습니다

유교적 예속이 향촌사회와 가족제도

에 영향을 미치면서 이전의 외손봉사

(시집간 딸이 제사를 지내는것) 윤희

봉사(자식들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

내는것) 대신에 장자의 의한 시대봉사

가(아버지로 부터4대조)정착되고,

자녀균등 상속제로부터 적장자 상속

으로 가부장제적 질서가 강화되었습니다.

이런 사회분위기 속에서 양반층들이

평민과 천민층이 담배피우는 행위를

금하지는 못하지만 담배를 피우는것

을 인정하더라도 신분간의 차별을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림에 담배를 피우는 행위도 신분간

에 구별을 엄격히 규율과 관습이 생기

게 되었습니다

담배를 피우면서 신분제 및 가부장 권위체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담배에

대한 예절을 강요하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관습으로 전해져 내려오면서

체계화 되었습니다.

 

유득공의 (경도잡지)에는 당시에 행해

졌던 구체적인 내용 일부가 전합니다

 

비천한 자는 존귀한 분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조관들이 거리를 지날때 담배를 피우는

것을 금지하기를 매우 엄격히 하여, 재상이나 홍문관 관원이 지나가는데

담배를 피우는 자가 있으면, 우선 길가

의 집에다가 구금시켜 놓고 나중에

잡아가다가 치죄한다.

 

이러한 관습은 체계화되고 더 정교하

게 다듬어지게 됩니다.

 

아버지와 형님은 물론 연장자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길거리에서 연장자를 만날을

담배댓를 눈앞에서 보이는 것은 실례

이니 곧바로 뒤로 감춘다

 

여자는 남자앞에서 담배를 피지 안는다

 

상놈은 양반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이러한 사항은 법률적으로 규정한것이

아니지만, 사회적 관습에 의해서 전해저

내려오게 됩니다.

신분에 따른 담배문화의 형성은 담배댓

사용에도 나타납니다.

 

담뱃대는 담배를 담아 불태우는 담배통과 입에 물고 빠는 물부리, 그리

고 담배통과 물부리 사이를 연결하는

설대로 구성되며,설대가 긴 것은 장죽,

설대가 없거나 짧은것은 곰방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담배가 일본을 통하여 들어온

까닭에 초기에의 담뱃대 역시 일본의

양식이 전래되어 담배통도 작고, 설대

도 짧았습니다

그러나 양반들은 평민과 구별짓기 위

하여 긴 담뱃대를 사용하였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2~3m나 되는 담뱃대

를 사용하고 하인이나 노비로 하여금

불을 붙히게 하였습니다.

 

그것으로 평민과 구별짓도록 하였고,

긴 담뱃대를 재떨이에 딱 딱 떠는 소리

로 권위를 나타내기도 하였습니다.

18세기 풍속도에 담배통이 커진 장죽이 유행되었음을 알 수있습니다.

긴 담뱃대로 담배를 피울 경우 혼자서

담배통에 불을 붙이면서 물부리를 빠는

것이 쉽지 않으므로, 불을 붙이는 하인

이 딸리게 만련이었습니다.

즉 장죽으로 담배를 피울수 있는것은

양반층을 비롯한 여유있는 생활을 누

릴수 있는 계층에 국한되고,일반 상민

은 곰방대를 애용할수밖에 없었습니다.

양반층 가운데도 재산이 넉넉학 사람들

은 백통이나 오동나무로 담뱃대를 만들

고 금이나 은으로 무늬를 넣어 치장한

장죽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나가 양반들은 담뱃대뿐만 안니라 담

배통을 금이나 은으로 치장하여 평민

과 구별 짓고자 하였을 뿐 아니라 멋

을 내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담뱃대의 길이와 재질을 보면

그 소유자의 신분을 가늠할수 있습니다

호랑이가 담배피우는 민화

 

조선후기에 등장하는 민화 중에는 호

랑이가 담배를 피우는 내용의 그림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 는것일까요?

우리는 옛날 이야기를 시작할 때 "옛날

옛날에 아주 먼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에? 시작합니다. 그것은 가장

오랜 시절의 일을 뜻하면서, 아주 먼 옛

날에는 신분이 없어서 평등하고 자유스

러운 시기였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울러 호랑이가 담배피우는

민화에 담긴 의미는 신분에 구애 됨없이 마음대로 담배를 피웠던 이상적

인 사회를 그리워하는 의미를 담고 있

는 것입니다.

담배가 전래된 초기에는 누구나 담배

를 자유스럽게 피웠으며, 심지어는 왕

앞에서도 신하들이 담배를 피웠습니다

야사에는 "조정에서 신하들이 국사를

논하다가 의논이 막히면 담배만 자꾸

태우게 되는데, 연기라는 것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어서 높은자

리에 앉은 임금에게로 자꾸 가게 되니

그것을 참지 못한 임금님이 높은 분이

있는 데에서는 담배를 삼가하라고 하

게 되었다" 광해군 의 내용이 전합니다.

초기에는 평민들도 양반과 똑같이

담배를 피웠고, 맛담배질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신분간의 차별이 큰 사회에서 담배를

같이 필수 있다는 사실은 평민에게 큰

위안을 주는 행위입니다.

조선전기의 사회에는 평민들이 성리학

적 조선왕조의 사회가 이상적이고 합리

적인라는 인식을 양반들과 함께 공유하

고 있었지만, 조선후기의 사회에는 평

민들이 점차 조선왕조의 사회가 불평등

한 사회라는것 깨닫기 시작합니다.

사회 경제 사상적으로 조선왕조의

중세적 사회체계가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평민들은 자신들이 고생을 하고 불평

등한 처지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을 점차 깨달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평민과 평민에 입장을 이해

하는 지식인들은 소설등의 문학, 풍속

화 등의 그림, 판소리등의 여러 형식

으로 당시의 불평등한 사회상을 비판

하면서 이상적인 사회상을 그리워 하

였던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

는 민화'가 출현 하였고 거기에는 호랑

이가 담배를 피우는 시절 즉 상하귀천

을 막론하고 담배를 피웠던 이상적인

사회를 그리워 하는 속내가 담겨져 있

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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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연구회 담배이야기 이영학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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