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역사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 세계 4대 해전이라고?

백삼/이한백 2017. 1. 31. 15:10

세계 4대 해전'이라는 말이 있다.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는 4개의 해전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이 세계 4대 해전에는 다음과 같은 해전이 들어간다고 한다.
1. BC 480년 살라미스 해전
2. 1588년 칼레 해전
3. 1592년 한산도 해전
4.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

 세 번째로 꼽히고 있는 한산도 해전! 이것은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무찌른 그 유명한 학익진의 한산대첩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대승이 무려 세계 4대 해전의 하나라니! 

 한산대첩을 묘사한 민족기록화. 김형구 작 1975년./출처=위키백과
▲ 한산대첩을 묘사한 민족기록화. 김형구 작 1975년./출처=위키백과

 벅찬 감동에 가슴이 뛴다면 조금 진정하시라. 대체 누가 언제 이런 선정을 했다는 말일까? 역사를 이용한 헛소문은 항상 민족 감정을 자극하는 이른바 '국뽕'을 노려서 만들어진다. '국뽕'이란 국가에 대한 마약(뽕: 필로폰을 가리키는 말인 히로뽕에서 왔다) 같은 자긍심 도취를 꼬집는 말이다.

 2007년에 윤지강 작가가 쓴 '세계 4대 해전'이라는 책이 나왔다. 이렇게 어떤 사실이 책으로 등장하면 일반인들에게 큰 영향력을 갖게 된다. 그것을 쓴 사람이 누군가는 대개 중요하지 않다. 잘못된 사실을 기술한 책에 대한 비판을 할 때 흔히 받는 반론 중 하나가 "이 사람은 이렇게 한 권의 책을 쓸 만큼 노력했는데 님은 뭘 한 게 있다고 비난을 하는 것이냐"다. 

 책은 이처럼 '사실'에 대한 근거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당장 통영에 가보면 한산도 역사길에 있는 안내판에 세계 4대 해전의 하나로 한산해전을 걸어놓고 있다. 

 책도 있고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안내판에도 등장한다. 이 정도면 한산대첩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해전이 아니겠는가? 일반인이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을 판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석영달 교수의 논문이 실린 <군사> 제101호/출처=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 석영달 교수의 논문이 실린 <군사> 제101호/출처=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바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 고찰한 재미있는 논문이 발표됐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나오는 '군사(軍史)' 제101호에 실린 '세계 4대 해전의 근거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이다. 석영달 해군사관학교 교수가 발표했다. 

 석 교수는 먼저 세계 4대 해전이라는 말이 언제 등장했는지를 추적한다. 이 추적 과정은 매우 흥미진진하다. 누군가 감기에 걸렸다는 말이 동네를 한 바퀴 돌면 누군가 죽었다는 말로 변하는 것처럼 세계 4대 해전이라는 말도 오해와 억측과 민족 자존감의 희망 사항이 얼버무려지면서 마치 역사적 근거가 있는 말처럼 떠돌게 된 것이다. 

 2007년 세계 4대 해전이 실리기 전 상황을 석 교수가 정리하고 있다. 2005년에 방영된 '불멸의 이순신'에서 한산도 해전을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로 소개했다. 국영 방송인 KBS의 인기 드라마에서 언급된 이런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보다 앞선 2004년에 아산에서 열린 '아산 성웅 이순신 축제'의 자료에서 세계 4대 해전이 언급되면서 여러 언론기관이 이 사실을 받아 적었다. 언론의 보도, 드라마에서의 언급, 책자 발간의 과정을 거치면서 세계 4대 해전은 공식적인 사실처럼 받아들여졌다.그리고 이런 흐름이 만들어진 최초의 '작품'을 석 교수는 2002년 10월 9일 해피캠퍼스에 올라온 '역사(거북선)'이라는 자료라고 말한다. 이 자료는 지금도 500원에 팔리고 있는데 자료를 구입하지 않아도 본문 내용이라고 제공되는 요약 화면에 세계 4대 해전을 언급하고 있다. 

 이 짧은 글은 오탈자마저 수두룩하다는 점을 석 교수가 지적한다. 테미스토클레스를 '데미스토클레스'라고 쓰고 있고 트라팔가르 해전 스펠링에서 f를 p로 잘못 쓰고 있다. 칼레 해전이라는 말은 해전사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며 '아르마다 전역' '아르마다 해전' 또는 '영국과 스페인 간의 전투'로 쓰는 것이 적절하다는 점도 이야기한다. 

 이 자료에서 황당한 부분은 세계 4대 해전 말고도 있다. 1905년 러일전쟁의 쓰시마 해전을 치른 일본 제독의 이름을 존재하지도 않는 야마토 제독(大和提督)이라고 쓰고 있다. 네이버에서 야마토 제독을 검색해 보면 이 잘못된 정보에 의한 '복사-붙이기'를 한 결과물을 여럿 볼 수 있다. 디지털 시대의 폐해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된다. 해당 글에서는 이런 주장을 하고 있다. 

 '여러 나라의 해군사관학교에서는 생도들에게 역사적으로 유명한 세계 4대 해전(世界四大海戰)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석 교수는 미국·프랑스·독일·일본 등에서 교육을 받은 해군 장교들에게 해당 사실을 확인했으며, 그런 교육이 없다는 점을 밝혔다. 당연히 우리나라 해군사관학교에서도 세계 4대 해전이라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사실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듣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진실로 믿으려는 경향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떡밥'은 사라지지 않고 끊임없이 재생산됐고 불행히도 앞으로도 재생산될 가능성이 높다. 

 당장 해군 공식 블로그에 세계 4대 해전이라는 글이 대학생 기자의 글이라고 올라와 있다. 물론 말미에 '해군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다'는 말이 붙어 있으나 사람들은 대개 이런 면에 주의하지 않는다. 

 석 교수는 해피캠퍼스에 자료가 올라오게 된 오해의 근거도 추정해보고 있다. 세계 4대 해전이라고 언급되는 해전들은 이순신과 관련해 등장한 적이 있는 해전들로, 이런 해전들을 긁어모아서 만든 것이 바로 세계 4대 해전이다. 그 뿌리가 1933년 미국 선교사 언더우드가 쓴 '한국의 배와 함정들'까지 내려간다는 점은 나름 충격적이다. 

 전문가가 이런 인터넷 괴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전문가들의 철저한 연구와 성과가 일반인들에게 널리 전달될수록 괴담의 뿌리는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록 잡초처럼 괴담이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보면 뽑아내버릴 수는 있게 된다. 

 석 교수의 논문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홈페이지(http://www.imhc.mil.kr/user/indexSub.action?codyMenuSeq=70543&siteId=imhc&menuUIType=top) 간행물 안내 섹션의 간행물 소개에서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다. 더 관심이 가는 분들은 직접 해당 논문을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