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역사

<조선왕조실록> ①국보 지정서 빠진 60여책 더 찾았다

백삼/이한백 2016. 12. 20. 09:17

서울대 규장각에 밀랍본·춘추관本 추가로 존재
병자호란 직후 정리 과정서 별도 보관.."정밀조사 필요"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있는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밀랍본은 표지를 쪽빛으로 염색하고 내지는 습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밀랍을 입혔다. psh59@yna.co.kr

<※ 편집자주 = 태조부터 철종까지 25대 472년의 역사를 시간순으로 정리한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 기록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입니다. 실록은 수많은 소설과 영화의 소재가 될 만큼 중요한 역사 콘텐츠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고, 정확히 몇 책이 남아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연합뉴스는 서울대 규장각에서 새롭게 확인된 실록 현황, 들쭉날쭉한 실록 통계의 문제점, 손상된 실록의 보존처리 방안을 세 꼭지로 나눠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왕조실록 중에 국보로 지정되지 않은 60여 책이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규장각 자료의 보존 관리와 한국학 연구를 담당하는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이 사실을 지난 2013년 인지하고도 문화재청에 통보하지 않음으로써 문화재 관리의 난맥상을 드러냈다. 특히 문화재청은 국가지정문화재의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20일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 조사 결과 국보 제151-1호인 조선왕조실록 정족산사고본과 국보 제151-4호인 조선왕조실록 기타 산엽본(낙장으로 구성된 책) 외에 밀랍본(종이에 밀랍을 입힌 책) 25책과 춘추관사고본 40여 책이 더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보 미지정 춘추관사고본의 정확한 책수는 아직 조사되지 않은 상태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책'(冊)은 물리적인 책을 셀 때 사용하는 단위이며, '권'(卷)은 내용을 분류할 때 쓰는 용어다. 대개 한 권은 한 책으로 돼 있지만, 성종실록은 2∼6권이 한 책으로 묶여 있는 경우도 있다.

국보로 지정되지 않은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제7권'.

이번에 새롭게 확인된 실록은 1636년에 일어난 병자호란 때 일부가 분실되고 훼손된 전주사고본(밀랍본)을 보수·정리해 완벽한 한 질로 다시 만든 뒤 남은 책으로 추정된다. 이들 책은 훗날 국보로 지정되는 실록들과는 구분되는 별도의 실록궤에 담겨 따로 보관됐다.

당시에 보수된 책들은 1660년 강화도 정족산사고에 봉안돼 지금은 '정족산사고본'으로 불리는데,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전주사고본 중에 빠진 부분은 춘추관사고본이나 적상산사고본을 등사한 책으로 대체했다.

실록등출봉안후형지안.

조선왕조실록의 피해와 수리 상황을 정리해 1666년에 펴낸 '실록등출봉안후형지안'(實錄謄出奉安後形止安, 형지안)의 '첩권질'(疊卷秩) 항목에는 "양대 이십사책(樣大 二十四冊), 양소 사십사책(樣小 四十四冊), 산장 일백오십이장(散張 一百五十二張)을 세 개의 실록궤에 넣었다(合入三櫃)"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에 대해 규장각 측은 '양대'와 '양소'가 밀랍본과 춘추관사고본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밀랍본은 춘추관사고본보다 책이 훨씬 크다.

또 '산장'은 낙장으로 잔존한 실록을 뜻한다. '산장'은 대부분 국보 제151-4호로 지정된 기타 산엽본으로 추정되나 정확히 일치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일차적으로 국보 지정에서 제외된 밀랍본을 조사한 이상찬 규장각한국학연구원장은 "형지안에는 '양대 이십사책'이라고 돼 있으나 정종실록 제1권 한 책이 더 있다"며 "몇 권이 더 추가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조선왕조실록 밀랍본에 대해 "표지는 비단을 쪽빛으로 염색했고 내지는 습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밀랍을 입혔다"며 "실록은 정족산사고본, 태백산사고본, 적상산사고본 등 세 개의 완질이 전하지만, 정족산사고본에만 유일하게 밀랍본이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규장각 수장고. 오른쪽에 있는 함에 국보 미지정 실록이 보관돼 있다.

이번에 새롭게 확인된 실록 밀랍본은 정종실록 1책 외에도 태종실록 1책, 세종실록 1책, 문종실록 1책, 세조실록 2책, 예종실록 3책, 성종실록 7책, 연산군일기 1책, 중종실록 6책, 명종실록 2책이다.

그중 세종실록 제119권, 세조실록 제27권, 성종실록 제63권은 표지가 바뀌었지만 낙장이 없고, 성종 제96∼99권도 낙장이 없으나 화재로 인해 약간 훼손된 상태다. 예종실록 제5권은 푸른색 비단 표지가 남아 있고 낙장이 한 장에 불과하다.

현재 이들 책은 다른 실록과 마찬가지로 항온·항습 기능을 갖춘 오동나무 함에 보관돼 있다.

이 원장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1973년 국보를 지정할 때 별도의 실록궤에 있었던 잔질본은 제외됐다"며 "국보에서 빠진 밀랍본과 춘추관사고본의 정확한 수량과 내용을 파악하려면 정밀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올해 서울대로부터 정족산사고본과 기타 산엽본의 소유권을 넘겨받았다"며 "국보로 지정되지 않은 실록이 있다면 조사를 통해 국보 지정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보로 지정되지 않은 조선왕조실록 춘추관사고본 성종실록. 표지 상태가 제각각이다.

psh5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