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인물로 본 2015년
거꾸로 가는 민주주의
② 국립국악원 공연 검열에 맞선 안무가 정영두
2015년 문화예술계를 습격한 단어는 ‘검열’이다. 일제가 식민지 조선을 통제하기 위해 도입한 검열이, 세기를 넘어 예술 표현의 자유를 겁박하고 문화예술인들을 무대 아닌 거리로 내몰았다.
지난 9월 이윤택·박근형 연출가가 각각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박정희·박근혜 부녀를 풍자’했다는 이유로 정부 창작 지원사업에서 탈락한 사실이 확인됐다. 주체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였다. 예술위는 연출가들에게 지원 포기각서를 종용하고, 심지어 본인이 신청한 것처럼 온라인 시스템을 조작하기까지 했다. 이뿐 아니다. 예술위 산하 공연예술센터는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센터장 등이 직접 나서 연극 <이 아이>공연을 방해하고 대본 제출을 요구했다. 시대를 거스른 ‘검열의 귀환’이자, 민주주의의 후퇴였다.
검열에 맞선 예술인들의 저항도 본격화하고 있다. 정영두 안무가는 험난한 최전선에 서 있다. 지난 10월 국립국악원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부녀를 풍자한 박근형 연출의 출연 배제를 요구하자, 이를 폭로하고 서울 국립국악원과 일본 주일대사관 앞에서 1인시위를 이어갔다. 그를 뒤이어 연극인들이 릴레이 시위에 나서는 등 민주주의 후퇴를 막기 위한 검열과의 항쟁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현재 릿쿄대 준교수로 일본에 머무르고 있는 정 안무가를 지난 주말 전자우편으로 만났다.
“박근형 연출이 당할 때 이미 나도 함께 검열을 당한 것입니다. 이것은 곧 나의 문제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인간 조건으로서의 기본 원칙입니다. 억압에 의해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없다면, 그것은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조건을 빼앗긴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검열은 인간 모두의 문제입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박정희·박근혜 부녀 풍자 이유로
이윤택·박근형 연출가 지원 탈락
“세월호를 연상시킨다”
연극 ‘이 아이’ 공연방해·대본 검열
“검열은 예술가에 대한 폭력·모독
이런 상황 계속되면 자기검열 만연”
예술위 모르쇠 일관
“침묵은 고도의 계산 깔린 정치행위”
그에게 먼저 “당신이 직접 검열당한 것도 아닌데 왜 검열과 맞서 싸우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그는 “군사정권 이후, 이처럼 치밀하고 광범위하게 검열했던 정권은 없었던 것 같다”고 위기감을 토로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예술가들은 작품의 소재 선택이나 표현 방법을 스스로 검열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입니다. 자유로운 창작을 꿈꾸는 모든 예술가들에 대한 모독이자 폭력입니다. 예술가들은 지금 정치권력으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 안무가는 “원칙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실은 그의 지적을 뒷받침한다. 심사 결과 번복, 포기 종용, 공연 방해 등 ‘예술 기본권’의 훼손이 이어졌다. 결국 젊은 연극인들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검열 반대 투쟁은 길거리 공연, 성명서 배포, ‘검열과 파행’ 세미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졌다. 공연 방해를 받은 연극 <이 아이>의 김정 연출은 “시신안치소에서 아들의 주검을 확인하는 어머니를 그린 작품인데, 단지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사실상 검열을 시도했다”고 항의했다.
정 안무가는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다시금 강조했다. “국립국악원, 예술위 등 국가기관의 행위는 국가 자체의 행위입니다. 국가기관에서 예술 검열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국가가 검열을 한 것입니다. 국가기관, 그리고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만큼 큰 책임과 의무가 따릅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검열 파문에도, 예술위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정치적 검열’에 항의하는 정 안무가를 되레 ‘정치적’이라고 몰아붙이기까지 한다. 그는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시대 “침묵이야말로 진정 고도의 계산이 깔린 정치적 행위”라고 반박했다. “추운 날씨에 밖에 나가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동료 예술가가 쫓겨난 무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공연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국립국악원이 박근형 연출을 배제한 뒤, 그가 자신이 나올 예정이던 또다른 국립국악원 공연 프로그램 출연을 스스로 거부한 까닭이다.
그를 필두로 ‘생각 자체를 가두려는’ 검열에 맞선 문화예술인들의 싸움도 거세지고 있다. 연극인들은 최근 열린 검열 관련 토론회 보도자료에서 “정치적 잣대로 검열하는 것은 민주화의 성과를 짓밟고, 국민을 정권의 의도대로 길들이려는 시도”라고 규정했다. 2015년 세밑, 검열의 망령이 다시 검은 망토를 펄럭인다. 여기가 문화융성을 부르짖는 그 나라가 맞느냐고 예술인들이 묻고 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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