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원주율(π) 속에 숨어있는 놀라운 삶의 비밀

백삼/이한백 2015. 12. 4. 10:28

원주율(π) 속에 숨어있는 놀라운 삶의 비밀

우리들은 초월수의 카오스적 플랙탈(Fractal)현상을 통하여, 우리사회를 하나로 초극하는 아름다운 세상으로 반드시 구현

 

▲ 원주율 속에는 무한대의 평화정신이 있지만, 인류는 끈임없는 전쟁의 원주율 바뀌를 움직이고 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원주율(圓周率)은 수학과 물리학의 여러 분야에 등장하는 수()로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수학 상수 중의 하나이다. 또한 이 원주율은 공식이나 문장 중에서는 관습적으로 그리스 문자 파이(π)로 표기하여 읽는다. 이 원주율은 문자 그대로 지름에 대한 원주(圓周)의 비, 즉 지름이 1인 원둘레의 길이의 비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 원주율 '파이(π)'의 값을 계산해보면, 소수점 아래에서는 비()규칙성을 띠며 무한대로 모든 숫자가 지속적으로 전개됨을 알 수 있다. 실례로 이 원주율 파이(π)의 값을 소수점 아래 100번째 자리까지 써 보면 아래와 같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3.1415926535 8979323846 2643383279 5028841971 6939937510 5820974944 5923078164 0628620899 8628034825 3421170679........

 

우리들은 원주율이 이와 같은 비()규칙성을 띠며 무한대의 숫자배열이 왜 나타나는지를 분석해보아야만 한다. 사람들은 그저 이러한 숫자배열을 계산결과로 나온 수치로만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다. 이 깊은 뜻을 분석해 보기위해 고대 그리스의 과학자 아르키메데스는 원에 내접하는 다각형과 외접하는 다각형을 통해 분석해 보았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원에 내접하는 96각형과 외접하는 96각형을 이용해 원주율(π)값이 '3.140845< π <3.142857'사이에 존재함을 계산해낸다. 그러나 아르키메데스는 이 숫자배열 속에 철학적인 깊은 사유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아르키메데스는 왜 다각형과 원주를 가지고 원주율의 값을 계산해 낸 것일까? 여기에는 바로 아르키메데스도 모르는 삶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우리들은 우선 그 비밀의 베일을 벗겨보자.

 

무한대()의 순환적인 평등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원주의 다각형

 

우리들은 아르키메데스의 방법대로 다각형과 원주를 가지고 원주율을 만들기 보기 위하여 다각형 중 가장 간단한 사다리꼴의 사각형과 원주를 가지고, 여기에 어떠한 성격이 숨어있는지를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원에 내접하는 사각형의 성질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들이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원에 내접하는 사각형에는 다음과 같은 성격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원에 내접하는 사각형의 성질

 

1) 사각형에서 한 외각에 이웃한 내각의 대각을 그 외각의 내대각이라고 한다.

2) 원에 내접하는 사각형의 성질로는, 우선 한 쌍의 대각의 크기의 합은 180 가 되며, 또한 한 외각의 크기는 그 내대각의 크기와 같다는 것이다. 즉, ∠A+∠C=180°, ∠B+∠D=180°이다.  ∠A=∠DCE이다.

 

 

 

 

 

 

이때, 이 문장에서 한 쌍의 대각의 크기의 합은 180 가 된다는 것은, 결국 두 쌍의 대각의 크기의 합이 360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한 외각의 크기는 그 내대각의 크기와 같다는 것은, 모든 각도에 있어서 속과 겉이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는 360 원주에 있어서 다각형의 합은 역시 360 로 속과 겉이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원주에 있어서 다각형은 속과 겉의 빔()을 통해 360 순환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원에 외접하는 사각형의 성질

 

1) 원에 외접하는 사각형에서 두 쌍의 대변의 길이의 합은 서로 같다.

2) 대변의 길이의 합이 서로 같은 사각형은 원에 외접한다. 즉, 이다.

 

 

 

이 말은 사각형의 모양이 어떤 모양을 하던지 간에 원에 외접하는 양변은 서로 항상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 지름이 1인 원주율의 바뀌가 1회 회전하여 자신의 자리로 돌아올때 3.14...에 해당하는 초월수가 생성

 

 

따라서 원에 내접 혹은 외접하는 사각형의 성질은 끝임 없이 360 순환운동을 하며, 그 평등성의 순환운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끝임 없는 순환성의 운동은 원주율이 무한대의 값을 가지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들은 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들이 모두 알고 있듯이 원주율은 지름이 1인 원둘레의 길이의 비로 결정한다. 그런데 지름이 1인 원이 한 번 회전하여 자신의 위치로 돌아올 때, 그 원주율의 값은 3.14....가 된다. 그리고 두 번 회전하여 자기 자신의 위치로 역시 다시 돌아올 때 그 값은 6.28...이 되며, 이렇게 원주율은 무한대의 값으로 계속 커지며 진행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진행되는 전체적인 모습을 그대로 평면상으로 펼쳐보면, 원주율로 대변되는 두 선이 평행운동을 무한대로 진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원주율을 만들어내는 원운동이 결국 평행 운동하는 직선운동과 같다는 것이다.

 

 

▲ 원주율이 회전할때마다 그에 해당하는 플랙탈 형태의 평면구조가 생성

 

 

우리들은 여기에서 원운동은 원주를 만들어내고, 직선운동은 수많은 다각형을 만들어낸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알고 있는 모든 직선운동은 사실상 원운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직선운동을 하는 다각형의 전체 집합구조는, 결국 대칭적인 플랙탈(Fractal)구조를 띠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플랙탈(Fractal)구조는 상호대칭성을 가지고 끝임 없이 자기 닮음을 만들어내는 자기조직화의 구조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러한 플랙탈(Fractal)현상이 일어나는 현상을 단순한 원운동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 과연 원운동에는 어떤 베일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이제 우리들은 원운동의 세계로 들어가 보기위해, 먼저 원을 그려보기로 하자.

 

원운동의 반지름 속에는 끈임 없이 살아 움직이는 유무의 순환운동이 동시에 존재

 

우리들이 알고 있는 원운동은 과연 어떤 운동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또한 이 원운동 속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우리들은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 간단하게 원을 그려보기로 하자. 우리들이 원을 그리기 위해서는 통상적으로 컴퍼스를 이용해 그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중심을 잡고 있는 끈을 잡아당기면서 회전시켜 필요한 원을 그릴 것이다. 그러면 컴퍼스와 줄 끈의 반지름을 통해서 원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여기에서 그냥 무심코 지나치는 것이 있다. 우리들이 그냥 무심코 지나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원의 반지름 상에서 들어나는 유무(有無)의 관계성이다. 우리들이 원을 그리는 데에 있어서 나타나는 이러한 유무(有無)의 관계성은 무엇일까? 이 유무(有無)는 원을 그리는 데에 필요한 반지름의 끈과 서로 대칭으로 이어지는 들어나고, 또한 들어나지 않은 또 하나의 반지름이다. 즉 원의 지름 속에는 들어난 실재 반지름()과 들어나지 않은 비실재의 반지름()이 동시에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수학적인 개념으로 이를 말하자면, 이때 들어난 반지름은 원을 만들어내는 끈인 유()로서 실수로 표현될 것이며, 들어나지 않은 반지름은 무()로서 허수로 표현될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원은 실재와 비실재, 유와 무, 실수와 허수와 같은 상대적인 대칭성들이 서로 함께 작용하여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우리들이 원주율을 계산할시 그 값이 불규칙적인 무한대의 값으로 나오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원주율이 불규칙적인 무한대의 값을 가지는 데에는, 이러한 비()실재, (), 허수(虛數)와 같은 세계가 원의 반지름 상에 항상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은 자연계에서 이러한 현상을 언제든지 목격할 수 있다.

 

 

▲ 태양은 들어난 반지름의 그림자와, 그리고 그 그림자의 반대편에 대칭으로 숨겨져 있는 반지름으로 원을 생성

 

 

예를 들어 우리들이 모래 위에 하나의 막대기를 꽃아 놓고, 이 막대기를 쳐다보면 햇빛의 이동에 따라 막대기의 그림자가 360 회전하며 원을 그리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막대기의 그림자는 실재 반지름을 나타내며, 그와 상대적인 대칭 속에 있는 또 하나의 반지름은 무()를 나타낼 것이다. 이처럼 태양이 그리는 자연적인 원에서도 항상 유무(有無)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무의 동시성을 평면그림으로 그대로 그려낸다면, 바로 플랙탈(Fractal)구조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들은 이처럼 아르키메데스가 원에 내접 혹은 외접하는 다각형을 통해 원주율을 나타내는 방식이라든지,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원을 그린다든지, 그도 아니면 자연계의 태양이 그리는 모든 원운동 속에서도, 모두 전체적으로 플랙탈(Fractal)구조 현상이 존재함을 목격할 수 있다. 우리들은 이제 원운동의 실재 움직임을 통해 이러한 현상을 재검증해 볼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뉴턴의 법칙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뉴턴의 법칙으로 살펴 본 원운동의 법칙

 

 

▲ 뉴턴, 3가지 운동의 법칙을 고안해내다(뉴턴의 법칙)

 

 

우리들은 모든 물체가 움직이는 운동의 법칙을 뉴턴의 법칙(Newton's laws of motion)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 뉴턴의 법칙에는 3가지의 운동법칙이 있다.

 

1) 관성의 법칙 : 외부로부터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물체의 운동 상태는 변하지 않는다는 법칙

 

2) 가속의 법칙 : 어떤 물체에 힘이 가해졌을 때 물체가 얻는 가속도는 가해지는 힘에 비례하고 물체의 질량에 반비례한다는 법칙

 

3) 작용반작용의 법칙 : 어떤 A물체가 B물체에게 힘을 가하면, B물체 역시 A물체에게 똑같은 크기의 힘을 가한다는 법칙

 

 

▲ 운동의 법칙을 설명하는 도안

 

 

우리들은 원주율을 생각하면서 이 3가지의 법칙을 두고, 이 속에 과연 무한대의 플랙탈(Fractal)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위와 같은 그림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우선 관성의 법칙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관성의 법칙은 외부로부터 어떠한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그 물체의 운동 상태는 항상 변함없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즉 그림과 같이 처음의 A위치에 원형의 구슬을 놓고 이 구슬을 굴리면, 그 구슬을 B, C, D, E의 방향으로 굴러갈 것이다. 그러나 관성의 법칙만을 놓고 생각할 시에, 구슬은 구슬이 굴러가는 방향의 빗면에 마찰이 없다면, 그 구슬은 주어진 면의 각도에 상관없이 언제든지 똑 같은 운동을 계속 지속할 것이다. 이때 구슬이 굴러가는 방향의 빗면에 마찰이 없다는 것은 외부로부터 어떠한 힘도 작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제 다시 우리들은 가속의 법칙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가속의 법칙(F = ma. a = . F : . m: 질량. a : 가속도)은 어떤 물체에 힘이 가해졌을 때 물체가 얻는 가속도는 그 가해지는 힘에 비례하고 물체의 질량에 반비례한다는 법칙이다. 그러나 이 가속의 법칙에 관성의 법칙이 작용한다면, 위 그림처럼 구슬이 위치해 있는 A위치에서 B, C, D, E방향으로 구슬이 이동할시 속도의 변화는 일정하게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관성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그 속도의 변화는 제각기 달리 발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용 반작용의 법칙을 생각해보기로 하자. 작용반작용의 법칙은 어떤 A물체가 B물체에게 힘을 가하다면, B물체 역시 A물체에게 똑같은 크기의 힘을 가한다는 법칙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우리들은 얼음판 위에서 두 사람이 스케이트를 신고 마주보면서 서로 손 벽을 친다고 생각해보자. 그러면 두 사람은 손 벽의 힘에 의해서 동시에 뒤로 밀려날 것이다. 이러한 작용반작용의 법칙은 물체의 운동 상태에 관계없이 성립하며, 모든 힘에 대해서 성립하므로 항상 쌍으로 존재하며, 그 작용점이 서로 다른 물체에 작용하여 그 작용점의 힘이 서로 평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관성의 법칙과 가속도의 법칙이 작용한다면, 그 차이점은 약간 달리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작용반작용의 법칙에는 전혀 영향이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들은 이러한 뉴턴의 물리학적인 운동의 법칙에서 플랙탈(Fractal)현상이 발생하는지를 살펴보아야만 한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뉴턴의 법칙 중 관성의 법칙가속의 법칙작용반작용의 법칙을 통해서, 이러한 법칙이 모두 작용해도 결국 원주율의 계산 방식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결국 관성의 법칙이든, 가속의 법칙이든, 그도 아니면 작용반작용의 법칙이든 그 어떤 법칙이 작용하던지 간에, 모두 구슬이 이동하는 원운동에는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들은 이미 원운동 그 자체에 플랙탈 현상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다시 말해 이러한 플랙탈(Fractal)현상이 뉴턴의 법칙과는 무관하게 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다시 우리들은 이러한 모든 현상들의 통해 원주율이 만들어내는 초월수의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성이 있다.

 

원주율의 초월수와 플랙탈(Fractal)현상, 그리고 우리들의 삶

 

우리들이 모두 알고 있듯이 원주율은 문자 그대로 지름에 대한 원주(圓周)의 비, 즉 지름이 1인 원둘레의 길이의 비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러한 원주율의 값을 계산해보면, 소수점 아래에서는 그 값이 비()규칙성을 띠며 무한대로 전개되는 초월수(超越數, transcendental number)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초월수란 대수적인 무리수가 아닌 무리수를 말한다. , 유리수를 계수(係數)로 하여 대수방정식의 근()이 될 수 있는 수를 대수적인 수(algebraic number)라고 하고, 그렇지 않은 수를 초월수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대수방정식은 변수를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거듭제곱· 근풀이 등 대수연산을 하여 만든 두 식을 등식으로 놓은 방정식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정수계수를 갖는 아래와 같은 다항식의 방정식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a0xn+a1xn-1 …+an-1x+an=0 , (는 다 정수 )

 

우리들은 위와 같은 대수방정식에서 대수적인 수는 번호를 붙여가며 셀 수 있는 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들은 번호를 붙여가며 셀 수 있는 수를 자연수로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은 대수적인 수와 자연수는 집합의 개념에서 서로 11로 대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자연수 NN2 = N×N, N3 = N×N×N, ......N4, N5, NN 11 대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수적 수는 자연수와 11 대응이 되고, 우리들은 이와 같은 형태를 수학적으로 가부번(denumerable)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처럼 일대일 대응시켜 번호를 부여하여 셀 수 있는 집합을 가산집합이라고 한다. 우리들은 이미 칸토어의 집합론에서 규칙적인 방식으로 11로 대응하는 가산집합구조는 모두 플랙탈(Fractal)구조 형태를 띤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원주율을 나타내는 초월수(超越數. transcendental number)에 있다. 초월수는 집합의 개념에서 11로 대응시킬 수는 있으나, 번호를 붙여가며 셀 수 없는 비()가부번의 수이다. 우리들은 이를 원주율의 숫자배열에서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원주율의 값인 3.14 다음에 오는 모든 소수점 이하의 숫자들이 모두 불규칙적인 숫자배열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초월수가 서로 11로 대응시킬 수 있다는 관점에서 불규칙적인 플랙탈(Fractal)구조를 만들 수 있다. 우리들은 이제 원주율 속에 숨어있는 놀라운 삶의 법칙을 깨달아야만 한다.

 

 

▲ 자연은 원주율의 초월수에서도 플랙탈 형태의 만물을 생성

 

 

원주율은 지름에 대한 원둘레의 길이의 비로서 정의된다. 그런데 이 비의 값은 무한대의 초월수로 나타난다. 초월수란 11대응의 개념은 있지만, 그 수의 형태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형태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 속에서도 플랙탈(Fractal)구조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는 원주율을 구하는 전체적인 과정을 들여다보면 금방 들어난다. 플랙탈(Fractal)구조는 상대적인 대칭구조에서 부분과 전체가 같은 모습을 띠는 구조이다. 이러한 부분과 전체가 같은 모습을 띠는 현상이 초월수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아니 초월수의 집합성은 대수적인 수 전체의 집합보다도, 오히려 더욱더 농후하게 그 무한한 집합성을 보여준다. 즉 더욱더 농후하게 부분과 전체가 같은 집합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집합성을 카오스적 플랙탈(Fractal)구조의 집합성이라 한다. 카오스적 플랙탈(Fractal of Khaos))구조는 텅 빈 공간의 대공허가 만들어내는 플랙탈(Fractal)구조이다. 이처럼 텅 빈 공간의 대공허가 만들어내는 플랙탈(Fractal)구조는 모든 원주율의 생성에서 그대로 형성된다. 우리들은 이미 원주율의 초월수를 분석하는 전 과정에서 이미 이러한 사실을 모두 입증했다. 이제 우리들은 원주율의 초월수의 개념에서 부분과 전체가, 모두 하나가 되는 카오시적 플랙탈의 세계에서 이미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 이 세상에 혼돈되어 있는 잘못된 점을 초극하는 삶!, 이것이 바로 원주율의 초월수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삶의 모습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이제 이러한 원주율의 초극적인 세계를 바로 인식하고, 그리고 우리시대를 너와 내가 함께하는 활기차고 아름다운 세상으로 반드시 만들어 가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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