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YS) 전 대통령은 독특한 정치인이었다. “머리는 빌리면 된다”는 느긋함,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민주화)은 온다”는 굴하지 않는 신념을 동시에 지닌 승부사였다. 빈소를 찾은 정치인들 사이에 ‘YS스타일’이 재조명되고 있다.
①DJ도 인정한 전격성=YS의 배짱과 실천력은 동교동계(김대중계)도 인정했다고 한다.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비서였던 새정치민주연합 설훈 의원은 “YS가 하나회 척결을 하는 걸 보더니 DJ도 ‘저건 나도 쉽게 못할 일’이라고 말한 게 기억난다”고 회고했다. YS는 1993년 2월 25일 취임한 뒤 11일 만에 군내 사조직인 ‘하나회’ 척결에 나섰다. 그러고는 하룻밤에 별 50개를 날리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승부를 내버렸다. 이걸 보고 당시 ‘적진(敵陣)’이었던 DJ와 동교동계가 모두 감탄했단 얘기다.
노무현 정부에서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 의원의 평가도 비슷했다. 문 의원은 22일 “YS는 개혁을 (집권) 1년 안에 다 해치운 분”이라며 “이런 면에선 독보적”이라고 평가했다. 하나회 척결 외에 ▶금융실명제 ▶공직자 재산공개 ▶부패와의 전쟁이 모두 집권 1년차에 YS가 벌인 일이다. 당시 참모진의 속도조절론이 컸지만 YS는 멈추지 않았다.
②“가라! 뚫어라!” 단순함=YS는 정치적 목표가 정해지면 에둘러가는 법이 없었다. 늘 직진했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증언이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3일이나 단식투쟁을 이어간 건 하나의 예일 뿐이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어려울 때 복잡한 생각을 단순하게 가질 수 있도록 해준 정치선배”라고 YS를 기억했다. 22일 빈소를 떠나며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YS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싸워 민주주의를 쟁취했다”고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이광재 전 강원지사는 YS와 관련된 기억을 전했다. 노무현 의원 보좌관 시절의 기억이다. 이 전 지사는 “YS는 선거 때면 당시 관행이었던 선거자금을 나눠주는 대신 새벽부터 자기 당 후보들한테 전화를 걸어 ‘빨리 일어나 뛰라’고 불호령을 내리곤 했다”며 “YS는 늘 가진 걸 다 걸고 풀베팅하는 지도자였다”고 했다.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과 열린우리당-민주당(새정치연합 전신)에서 YS 정치와 DJ 정치를 곁에서 지켜본 새정치연합 김부겸 전 의원은 빈소에서 “DJ가 치밀한 준비를 가르쳐줬다면 YS는 의제를 가르쳐줬다”면서 “YS의 의제는 ‘가라! 뚫어라! 그러면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③‘내편’으로 만드는 매력=YS 정치는 ‘도와주고 싶게 만드는’ 매력의 정치였다. 민정당에서 노태우계로 정치를 시작했지만 90년 3당 합당 이후 민자당 대변인으로 YS 총재를 보좌했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빈소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3당 합당 이후) 우리 (민자)당에 여러 계파가 있었는데 YS를 반대하던 사람도 YS가 직접 만나 손을 꼭 잡고 ‘한번 꼭 도와주십시오’ 하면 YS 사람이 되는 걸 여러 번 목격했다. 뜨거운 포용력이 YS의 장기(長技)였다.”
이광재 전 지사도 YS의 그런 면모를 직접 경험했다고 한다. 89년 당시 노무현 의원이 진보운동을 하겠다며 의원직을 사퇴하고 갑자기 잠적한 적이 있다. YS가 그의 보좌관이었던 자신을 따로 불렀다고 한다. 이 전 지사는 “지금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 당시 스물다섯 살이었던 나를 YS가 상도동 자택 2층 방으로 불러 직접 차를 만들어 따라주며 30분간 간곡하게 ‘노무현 의원을 좀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하더라. YS는 그런 인간적인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조문객들은 권력의지는 불굴에 가깝고, 실천할 때는 전격적이고 신속하게 밀어붙이며, 필요한 인재를 향해선 포용력과 친화력을 보이는 걸 YS 정치의 특징으로 꼽았다. 하지만 드러난 스타일의 이면에 있는 능력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견해도 있다. 서울대 강원택(정치외교학부) 교수는 “YS의 용기와 결단 이면에는 시대의 변화를 보는 눈이 있었다”며 “민주화가 올 것이라는 판단과 그 판단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실천하며 주변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남궁욱·강태화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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