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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야구는 왜 김성근 감독을 초대했나

백삼/이한백 2015. 5. 4. 14:50

요즘 한화극장의 상영작은 장르상 드라마로 분류해야 맞다. 스펙터클한 화면 구성보다 스토리 중심으로 전개되며, (찡하고, 뭉클한) 정서적인 감동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나가는 흥행작을 어찌 한가지 장르로만 한정할 수 있겠는가. 가끔은 어둠의 세계와 맞닿는 짙은 느와르(noir)적인 요소가 작품 세계를 풍요롭게 한다.

이미 몇 주전 이동걸과 황재균을 공동주연으로 캐스팅했던 시리즈 1편은 공전의 흥행작으로 남았다. 반면에 큰 기대를 모았던 후속작이 지난 주말 대전에서 개봉됐지만 별다른 박진감을 보여주지는 못한 채 막을 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느와르적인 장치가 요소요소에 숨겨져 있어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한화극장의 느와르적 요소들

그 일단이 드러난 게 재회 첫날인 금요일(1일)이었다. 이종운 감독은 경기 2시간전부터(구장 도착 무렵인듯) 김성근 감독을 찾아가려 했다. 그러나 중요한 손님을 만나고 있다며 면담은 미뤄졌다. 둘은 경기 개시 30분 전에야 잠깐 얼굴을 마주했다(그것도 비공개로).

이 대목에 대해서는 고도의 정치적, 외교적 해석이 필요하다. 아마도 까마득한 후배 감독은 몇 주전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는 모양새를 갖추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둘이 악수하면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상상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도 고수인 상대방은 영 마뜩치 않았을 거다. '그게 무슨 좋은 기억이라고..'. 생각해 보시라. 김성근 감독이 중요한 게임을 앞두고 2시간 가까이 '외부 손님'을 만나고 있을 캐릭터냐 말이다. 그건 '화해 이벤트'가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안하기는 뭐하고. 그래서 '▶30분전에 ▶잠시 ▶비공개로'라는 어정쩡한 모양새가 돼 버렸다.

그 찜찜함은 어제(3일) 경기 막판에도 여실히 나타났다. 5-1이던 9회초 롯데 공격. 강민호의 머리쪽에 슬라이더가 하나, 그리고 오승택의 옆구리에 직구가 하나 날아들었다. 이종운 감독은 구심에게 위협구가 아니냐고 항의했다. 곧이어 몸에 맞고 나간 오승택에게 초구에 2루 도루를 성공시켰다. 보기에 따라 치열한 독수가 날아다닌 장면들이었다.

이어 6-1이 된 뒤 9회말. 롯데는 원아웃을 잡은 뒤, 완벽하던 심수창을 내렸다. 그리고 좌타자 김경언을 상대하기 위한 원포인트 릴리프로 이명우를 올렸다. 이어서 김성배가 마무리. 물론 한화가 2점을 쫓아가며 6-3으로 끝났다. 하지만 애초 6-1이란 점수차를 생각하면 심수창에서 이명우로 넘어가는 교체가 '일반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어떤 감독은 이런 데서 기분이 상해 투수를 대타로 내보내기도 하지 않았나).

역사는 왜 옛날 방식을 원했나

늘 그렇듯이 야구판은 야신을 환영하지 않았다. 그가 돌아온 뒤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혹사, 지나친 번트, 잦은 교체 등등. 그의 야구는 일본식에, 구시대적이고, 지나치게 승리에 집착하며, 비인간적이라는 수근거림도 끊이지 않는다. 그가 평생 그곳에서 겪었던 반감(反感)도 그의 컴백과 함께 고스란히 돌아왔다. 다들 실감하시지 않았나. 지난 빈볼사건 때 드러난 격정적인 적대감의 실체를.

하지만 <…구라다>는 이 문제를 보는 시각이 '옳고, 그름' 또는 '좋다, 나쁘다'를 가리는 데 멈춰서는 안된다고 믿는다. 야신의 방식이 맞는지, 아닌지. 한화와 롯데가 아름다운 화해를 했는지 아닌지. 누가 오버했는지, 누가 뒤끝이 있는지. 그건 본질이 아니다.

어느 철학자가 그랬다. 역사는 우연과 필연의 연속이라고. 그러니 야신을 다시 무대로 불러올린 역사적 필연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를 다시 초대한 것은 팬들이었다. 그들이 만약 이 리그에서, 또는 그 팀에서 실현해낸 야구에 대해 충분히 만족하고 납득했다면 굳이 '구태의연한 옛날 방식'이 다시 역사의 앞쪽에 등장할 이유는 없었다. 흙투성이가 돼 시커멓게 나뒹구는 선수들에게 갈채를 보내거나, 주말 경기를 끝내고 관중들 목전에서 시전되는 질책성 펑고에 아낌없이 공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느 방식이 옳은지, 어느 것이 더 높은 차원의 야구인 지는 논쟁과 논란의 여지를 남겨 놓아야 한다. 다만 그로 인해 치열한 경쟁이 이뤄지고, 발전해 나가는 방편이 돼야 한다.

야신의 방식을 비판하려면, 그보다 훨씬 나은 방식이 있다는 걸 '실력'으로 입증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김성근 감독을 초대한 이 리그와, 그 팬들이 바라는 역사적인 가치일 것이다.

백종인 칼럼니스트 /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