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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퀴아오(역사상 위대한복서).

백삼/이한백 2015. 5. 1. 11:40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파퀴아오 역전 스토리

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매니 파퀴아오, ‘빈민가 소년에서 국민 영웅까지’ 

 

‘빈민가 소년에서 국민 영웅까지’

필리핀의 복싱 영웅, 매니 파퀴아오의 일대기를 설명할 때 이보다 더 적절한 문장이 있을까요?

 마치 영화의 헤드카피 같은 이 문장처럼, 파퀴아오는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것으로 유명합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길거리를 전전했고, 무작정 상경한 뒤 링 위에 올라 두 주먹으로

세계를 제패했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스포츠스타로 꼽히는 그는,

과장 조금 보태서 조국 필리핀에서는 신(神)과 거의 동급 대접을 받습니다.

 

파퀴아오를 잘 모르거나 복싱에 관심이 없더라도 그의 이야기는 전 세계를 뛰어넘어 사람을 끌어들이는 특별한 감동과 매력이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빵 팔던 소년

1978년 12월 17일, 필리핀의 민다나오 섬에서 태어난 파퀴아오의 집은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날이 허다할 정도로

찢어질 정도로 가난한 집이었다.

당시 필리핀은 내전 중이라 정부군과 반란군이 파퀴아오의 집 근처에서 전투를 벌이고 병사들이 죽는 모습을

직접 보는 등 최악의 환경에서 자랄 수 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지붕과 벽이 코코넛 나무로 지어진 집에서 나와 어린 시절부터 물고기 그물을 당기는 일,

거리에서 도넛을 파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을 정도.

좀 더 커서 도시에 나와살 때 자동차, TV를 보고는 놀라 숨었을 정도로 문명과도 먼 생활을 했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채 삼촌에게 처음으로 복싱을 배워 동네 복싱대회부터 시작한 그의 복싱 인생은

일주일에 한번은 싸울 정도로 거칠었다.

무리하게 경기를 해야 했던 것도 가정형편을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13살이 되던 해, 파퀴아오는 사흘 동안 밀항선을 타고 수도인 마닐라로 상경합니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파퀴아오는 어머니에게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죄송해요 어머니. 마닐라에 가겠다고 하면 허락을 안 해주셨을 거에요.

하지만 이렇게 해야 우리가 돈을 벌 수 있어요.”

수도 마닐라로 넘어가 복싱 연습을 시작한 파퀴아오는 프로 등록을 위해 나이를 2살 더 올리고,

최소 체중을 맞추기 위해 옷 속에 무게를 늘릴만한 걸 넣으며 프로데뷔에 성공했다.

 

항상 작은 체중에도 천부적 재능과 노력으로 상대를 쓰러뜨리며 필리핀 복싱계를 흔들어놨던 파퀴아오는

결국 미국까지 향하게 된다.


축구로 치면 박지성-히딩크의 관계인 파퀴아오-로치의 모습

그곳에서 만난 평생의 동반자이자 역사상 최고의 콤비가 된 트레이너인 프레디 로치를 만났다.

그와 함께 한 이후 파퀴아오는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훈련으로 세계 최고의 복서로 성장할 수 있었다.

▶파퀴아오의 위대한 업적들

미국에서는 그의 이름 알파벳조차 발음하기 힘들어했다. 1995년 라이트 플라이웰터급에서 프로 데뷔를 하자마자

스타 탄생을 알렸던 그는 15전 이후 플라이급으로 옮겨 생애 첫 챔피언 타이틀(1998)을 따낸다.

 

이후 슈퍼 밴텀급(2001)-슈퍼 페더급-라이트급(이상 2008)을 정복하며 복싱계 세계 최고의 슈퍼스타로 떠오른다.

그리고 2008년 12월 6일, ‘꿈의 경기’로 일컬어지던 오스카 델라호야와 경기를 하게 된다.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데다 아마추어 전적 223승5패를 기록한 뒤 프로에 입문해

슈퍼페더급, 라이트급, 슈퍼라이트급, 웰터급, 슈퍼웰터급, 미들급 타이틀, 총 6체급 챔피언을 차지했던 델라호야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압도적으로 큰 체구에 ‘돈을 위한 이 경기에 파퀴아오가 죽을 수도 있다’며 경기 중단론까지 언급됐지만

파퀴아오는 도리어 델라호야를 상대로 8라운드 TKO승을 거두며 전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된다.


델라호야와 기자회견 당시의 모습

이후 라이트웰터급-웰터급(2009), 라이트미들급(2010)까지 정복하며 자신이 손수 따낸 7개의 타이틀 외에도

복싱 전문 잡지 링 매거진에서도 챔피언 타이틀을 부여받아

8개급 챔피언이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으로 역사상 가장 많은 체급 챔피언이 된 복싱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오죽하면 모든 체급을 먹어치웠다고 해서 게임 팩맨을 따 별명도 팩맨(Pac-Man)이다.

▶필리핀만을 생각하는 국가적 영웅

그는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타이거 우즈 등을 뛰어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스포츠스타 2위로 알려져 있다

(1위 플로이드 메이웨더).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쓸까.

지난 2013년에는 태풍 하이옌으로 고통받는 이재민들을 위해 대전료로 받은 191억 원을 전액 기부했고,

필리핀 고향 마을이나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병원이나 학교를 짓고 양, 염소 등을 보내 자립이 가능하게 한다.

지금도 파퀴아오 재단을 통한 자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스포츠에서는 약소국인 필리핀이 낳은 최고의 스타인만큼 필리핀 내에서 그의 지지는 엄청나다.

그는 필리핀 하원의원 선거에도 나가 2007년에는 낙선했지만 2010년 다시 도전해 약 67%에 달하는 지지를 받으며

의원으로도 활동 중일 정도다.

2013년 재선에 성공한 현역 국회의원이기도한 그에 대한 필리핀 국민들의 지지는 상상을 초월해

그가 만약 대통령 선거에 나간다면 당선될 확률을 논할 정도다.

그의 경기가 열릴 때면 정부군과 반란군의 싸움이 멈추고 필리핀 거리에는 차가 없으며 TV가 있은 곳이면

모든 국민이 열린다는 전설 같은 얘기는 가상이 아닌 현실이다.



항상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친 언론적이며 농구선수, 가수, TV프로그램 출연 등도 꺼리지 않아 ‘친근한 전설’로 알려져 있다. 그가 후안 마누엘 마르케스에게 진 2012년 12월, 필리핀으로 돌아갔을 때

여전히 열렬한 환호를 보내는 필리핀 국민들에게 그는

“제가 필리핀을 짊어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여러분이 절 지탱하고 있었습니다”라는 말로

눈물바다를 만들기도 했다.

실력이면 실력, 전설적인 행보면 행보, 인성이면 인성, 모든 면에서 현존하는 복서의 완전체를 보여주는

파퀴아오에 어찌 열광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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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람들에게 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그 예가 바로 접니다.

 저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여기까지 왔고,  이 모든 영광을 신께 돌리고 싶습니다."

 

"저는 우리나라(필리핀) 사람들이 하나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하느님이 저에게 사람들을 돕도록 책임감을 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