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시

몸이 큰 여자 / 문정희

백삼/이한백 2015. 1. 6. 16:23

     
      
    ♥ 몸이 큰 여자 ... 문 정희 저 넓은 보리밭을 갈아엎어 해마다 튼튼한 보리를 기르고 산돼지 같은 남자와 씨름하듯 사랑을 하여 알토란 아이를 낳아 젖을 물리는 탐스런 여자의 허리 속에 살아 있는 불 저울과 줄자의 눈금이 잴 수 있을까 참기름 비벼 맘껏 입 벌려 상추쌈을 먹는 야성의 핏줄 선명한 뱃가죽 속의 고향 노래를 젖가슴에 뽀얗게 솟아나는 젖샘을 어느 눈금으로 잴 수 있을까 몸은 원래 그 자체의 음악을 가지고 있지* 식사 때마다 밥알을 세고 양상추의 무게를 달고 그리고 규격 줄자 앞에 한 줄로 줄을 서는 도시 여자들의 몸에는 없는 비옥한 밭이랑의 왕성한 산욕(産慾)과 사랑의 노래가 몸을 자신을 태우고 다니는 말로 전락시킨 상인의 술책 속에 짧은 수명의 유행 상품이 된 시대의 미인들이 둔부의 규격과 매끄러운 다리를 채찍질하며 뜻없이 시들어가는 이 거리에 나는 한 마리 산돼지를 방목하고 싶다 몸이 큰 천연 밀림이 되고 싶다

    '문학·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억, 오래도록 아픔 / 이정하  (0) 2015.01.07
    할머니   (0) 2015.01.06
    1월의 기도 /청담 장윤숙   (0) 2015.01.02
    소나무의 가르침  (0) 2015.01.02
    서시 - 이성복  (0) 2015.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