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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한여인이 앉아있었다. 장신구를 전혀 하지않은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
었다. 그녀의 이름은 모나리자였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을 찾는 이들의 첫번째 이유가 모나리자를 보기위해서라고 한다. 사람들이 모
나리자만 쳐다보고 옆의 그림은 보지 않아서, 루브르박물관은 고육지책으로 한면 전체에 모나리자
만 걸어 놓았다.
그들은 왜 모나리자에만 열광할까? 모나리지는 처음부터 유명했을까? 어떤 가치가 있을까? 한번쯤
이런 궁금증이 떠오르지 않는가..
14세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은 동방무역으로 경제적번영과 정치적 안정을 누리고 있었다. 거기
에 비잔틴과 이슬람 문화가 흘러 들어왔다. 상인들이 주축인 시민들은 이 상황에 맞는 새로운 사유
를 요구 하고 있었다.그것은 신이 중심인 사유가 아니라 인간이 중심인 사유였다.
인간은 원죄의 멍에를 쓰고 평생 구원을 갈망하며 전전긍긍 사는 존재가 아니라 , 한없이 위대하고
가치있는 존재라는 사유였다. 그것은 고대 그리스 로마사유의 재발견이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었는데, 고대그리스인은 절제와 중용,이를 통한 행복을 추구했다면. 르네상스인
들은 모든 한계를 초월하는,모든것에 통달하는 천재를 이상형으로 추구하였다.
그리하여 다방면에 걸출한 능력을 보여주는 에술가들이 속출하였던 것이다.
다빈치가 죽기 4년전,프랑소와 1세는 그를 프랑스로 초빙하였다. 다빈치는 이 초대에 응하여 프랑
스로 갔는데, 그의 짐속에는 아직 완성하지 못한 모나리자도 있었다.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죽을 때
까지 완성되지 못했고, 그가 죽자 프랑스왕실의 소유로 넘어갔다. 그리고 400년 동안 그저그런 그
림으로 남아있었다. 좋은 그림이라는 평가는 받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모우는 작품은 아니었다.
모나리자가 갑자기 사람들의 눈에 떠오른것은 1911년에 발생한 도난사건 때문이었다.
범인은 이탈리아출신인 빈첸조 패루지아 였다. 그는 다빈치가 이탈리아출신이기때문에, 모나리자
를 이탈리아로 되찾아 왔을뿐이라고 강변했다.그의 말은 민족주의가 고조되던 시기에 살던 유럽사
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들은 모나리자를 다시 보았고, 그 신비한 미소에 열광했다
이때를 계기로, 모나리자는 세계에서 가장 훌룡한 그림은 아닐지 모르지만,가장 유명한 그림이 되
었다. 루브르의 한 복도에 무관심하게 걸려있던 그림이, 이후에는 3중 방탄유리로 둘러싸이고, 미
국 방문때는 국빈자격으로 화물칸이 아닌 일등석을 타고 갈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고 모나리자가 운만으로 유명한 작품이 된것은 아니다.그속에는 여러 혁신적 기법들이 스
며 있었다.
16세기초까지만 해도, 화가들의 주수입원이었던 초상화는 천편일률적이었다. 옆모습을 그렸고
윤곽선은 뚜렷하게,배경은 흐릿하게 그렸다. 이에 비해 다빈치의 그림은 혁명적이었다 다빈치의
그림은 보는 사람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관객과 교감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 혁명의 정점이
모나리자였다.모나리자를 빛나게 하는 여러 테크닉이 사용되었는데, 스푸마토기법과 콘트라 포스
토 기법이 대표적이다.
스푸마토는 입가와 눈매를 약간 흐릿하게 표현하는 기법이다. 윤곽선이 분명하면 딱딱한 느낌을
준다. 이를 흐리게 표현하면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미소를 짓는지 아닌지 모호하게 그릴수 있다.
콘트라포스토로 몸을 3/4정도 돌린 상태의 모습을 표현할수 있다.자연스럽고 신비한 분위기가
우러난다. 옷주름이나 손의 묘사도 세밀하다
다빈치는 자연을 정밀하게 관찰해서 그렸는데, 모나리자의 배경을 보면, 얼굴 양쪽의 배경선이 어
긋나개 보인다. 이것은 우리가 두 눈으로 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어진 선의 중간에, 장
애물이 있으면 어긋나게 보인다. 이정도로 다빈치는 대상을 정확히 관찰해서 그렸다.
다빈치,미켈란 젤로같은 거장들은 조화와 이성, 현실성을 추구한 르네상스미술을 완성했다.
중세미술은 현실을 그리지 않았다. 그들은 신의 세계,신들의 영광만을 찬양했을 뿐이다. 신의 영광
은 빛으로 나타났고, 빛을 표현하기위해 강렬한 원색과 금가루같은 금속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렸
다. 그런 평면적,추상적 그림들이 현대미술에 많은 영감을 주었는데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르네상스예술은 중세예술에 대한 거부였다. 그들은 현실을,인간을 그렸다. 사실적 묘사를 했다.
이 혁명을 이끈 기법이 원근법이다. 세계는 평면(2차원)으로 보이지 않고 입체적(3차원)으로 보인
다.문제는 2차원 화면을 어떻게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그리느냐는 것이다.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원근법,명암법이 고안되었다. 하지만 원근법이 실제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두눈
으로 보고, 눈동자는 수시로 움직인다. 즉 소실점(촛점)이 많다. 이에 비해 원근법은 한 눈으로 본
구도이고, 소실점이 고정되어 있다. 즉 르네상스미술은 보이는 대로 그린것이 아니라, 사물을 정확
히 묘사하는데 치중했던 것이다.원근법외에 사실적 묘사의 예로, 화가가 선 자리에서는 사람 의복
의 미세한 부분이 보이지 않지만, 화가들은 미세한 부분조차 보이는 것처럼, 정밀하게 그렸다.
또한 인물이나 풍경을 보이는 대로 그리되, 아름답게 그렸다.즉 흉한 부분을 나무가지로 가린다거
나 정면모습이 추하면, 그것을 피해 옆모습을 그리는식으로 그렸다.
근대가 되었다. 근대미술은 대상의 재현이라는 전통미술의 목적을 거부했다. 원근법은 거부되었다
미술가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미술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아방가르드를 자처했다.
근 현대미술의 복잡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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