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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위기 민간인 수백명 구한 '제주판 쉰들러'

문형순 초대 성산포 경찰서장… 예비검속자 총살 명령 뿌리쳐경향신문|배명재 기자|입력2014.04.02 21:32
'제주 4·3사건' 당시 군의 명령을 뿌리치고 학살 위기에 내몰린 민간인들을 살려낸 경찰서장이 있었다. 초대 성산포 경찰서장이던 문형순씨(1901~미상·평북 출신)다.

문 서장은 1950년 8월30일 해병대 정보참모 김두찬 중령으로부터 '예비검속자 총살 집행 의뢰의 건'이라는 공문을 받았다. '1948년 제주도 계엄령 실시 후 구속 중인 예비검속자 중에서 총살 미집행자에 대해 총살을 집행해 9월6일까지 육군본부에 보고토록 하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정부는 4·3사건에 이어 6·25전쟁까지 터지자 시국불안을 우려, 정권 비판자 등을 잡아 구금하거나 감시했다. 바로 이런 인물들을 총살하라는 명령이었다.

문 서장은 공문을 받자마자 '부당함으로 불이행'이라는 글을 덧붙여 되돌려 보내고 총살집행을 거부했다. 당시 예비검속으로 제주도민 수천명이 희생을 당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문 서장이 있었던 성산포에서는 예비검속자 수백명이 있었지만 단 6명만 희생됐다. 문 서장은 성산포 경찰서로 옮기기 전 모슬포 경찰서에서도 서북청년단이 조서를 날조해 학살하려던 주민 100여명을 살려내기도 했다.

문 서장의 의로운 행동이 연구자들에 의해 밝혀지면서 2차세계대전 때 유대인 학살을 막았던 '오스카 쉰들러'에 빗대 '제주판 쉰들러'로 불리고 있다. 4·3사업소는 2일 제주4·3 평화기념관에 '의로운 사람' 코너를 만들어 문 서장의 행적을 전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 배명재 기자 ninaplus@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