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 77번지 조선왕조 제 10대 임금이었던 연산군(燕山君, 1476~1506)과 왕비인 거창군
부인 신(愼)씨 (1472~1537)등이 안장된 묘역이다.
연산군은 성종의 큰 아들로 태어나 19세에 임금이 되었다. 젊은 임금이었지만 붓글씨를 잘쓰고 시를 잘 지여 이름
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두번씩이나 사화(士禍)를 일으켜 조정을 어지럽히자 신하들은 왕위를 박탈하고 연산군으로
강등시키고 강화도로 추방하였으며, 중종(中宗) 임금을 새로 추대하였다(1506)
그 해에 연산군은 병이 들어 강화도에서 31세로 일생을 마첬는데 7년 후 부인 신씨의 요청으로 묘소를 이곳으로
옮기게 되었다(1513)
묘의 시설은 왕자의 묘제에 따라 담장, 혼유석(魂遺石), 장명등(長明燈), 문인석(文人石), 재실(齋室)등이 갖추어
져 있다. 왕릉보다는 간소하나 조선시대 전기 능묘석물의 조형이 잘 남아 있다. 묘석 아래쪽에는 궁인 조씨 및 사위와
딸의 무덤이 있다.
※ 사적 제 3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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