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역사

임진왜란 당시의 순왜들 대해서..

백삼/이한백 2014. 3. 24. 10:12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가 있었듯이 임진왜란 때도 친일파는 있었습니다. 그때는 친일파라는 표현 대신 순왜(順倭)라는 말을 썼습니다. 항왜(降倭)가 김충선처럼 조선에 투항하여 왜군과 싸운 일본사람들이라면 '순왜'는 일본군에게 각종 정보를 넘기거나 부역에 종사했던 조선 사람들을 뜻합니다. 

외세에 침략당한 나라에는 엄청난 대혼란이 일어납니다. 그 외중에서 강요로 인해 침략한 사람들에게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고 평소 정치의 잘못으로 고통받던 사람들이나 사적인 원한을 품은 사람들은 잠깐 동안이나마 침략자들을 환영하는 일도 일어납니다. 임해군, 순화군이 병사를 모으기 위해 머물던 회령 지역의 국경인, 김수량은 직접 나서서 두 왕자를 일본에 넘겼습니다. 그런 혼란의 와중에도 당시 조선 조정은 백성들을 두고 피난하기 바빴고 정치인들은 의병대장들과 자존심 싸움을 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습니다. 

이외에도 일본군의 길잡이로 나선 사화동(전쟁 후에 일본이 조선으로 되돌려 보내 조선에서 참수당함)이나 곽재우가 목을 베어 죽인 공위겸이란 인물이 있습니다. 어찌된 이유인지 사서에 실린 '순왜'들은 양반층이 거의 없는데 공위겸은 한자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벼슬을 하겠다고 큰소리친 것으로 보아 최소한 중인 신분 이상의 양반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전직 벼슬아치 중에서 순왜 노릇을 한 인물은 딱 한 사람 성세령(成世寧)이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전직 공조참의였던 성세령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이가 많아 피난을 가지 못했습니다. 성세령의 기생첩이 양녀로 들인 딸이 천하의 미인이었는데 그 딸이 일본군 총사령관이었던 우키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의 첩이 되었습니다. 왜군에 반항하는 사람들이 죽여 시체가 산더미이고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던 그때 일본군에게 장인 대접을 받으며 기세등등하게 호사를 누린 성세령은 고관대작 출신 중에서는 유일하게 왜군에 붙은 인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선조는 두고두고 분노하며 그를 잡으라 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성세령에 대한 조선왕조실록 기록을 검색하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습니다. 관직에 있을 때에도 탐욕스럽기 그지없고 부정부패의 상징같은 인물이더군요. 전쟁이 일어나자 딸을 왜군 사령관에게 바치고 왜군들에게 호위받으며 그 순간에도 재물을 받아먹었다니
 mbc 드라마 [구가의 서]에 나오는  조관웅과 비교할만한 인물임에는 틀림없을 것같습니다. 무엇보다 총칼에 위협받은 불쌍한 백성도 아니고 누릴거 다 누리고 살며 관직을 제수받은 양반층이 이런 행동을 보였다는 건 왕이나 양반들로서도 낯부끄러운 일이었겠죠. 성세령은 왜란 후에도 끝끝내 잡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