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역사

모나리자의 미소 속에 들어 난 세종의 르네상스 정신을 키워 자강의 국가를 건설

백삼/이한백 2014. 3. 28. 15:43

 

모나리자의 미소 속에 들어 난 세종의 르네상스 정신을 키워 자강의 국가를 건설

<!--[if !supportEmptyParas]--> <!--[endif]-->

 

▲ 유럽 르네상스의 도시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

 

 

르네상스(Renaissance)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

<!--[if !supportEmptyParas]--> <!--[endif]-->

나는 오랜만에 서유럽문명의 발전상이 세계문명사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유럽여행길에 나선다. 무엇보다도 서유럽문명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4~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났던 르네상스문화부흥운동에 대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르네상스 문화부흥운동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류문명사의 보고(寶庫)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르네상스문명사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이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말은 중세(中世)를 뒤이은 유럽문명의 한 시기로서 문자 그대로재생을 뜻하는 말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이때 르네상스의 재생이란 의미는 신()중심의 사상과 봉건 제도로 개인의 창조성이 억압받던 중세 유럽사회의 침체된 암흑기에서 벗어나, 바로 고대문화의 절정기를 이루었던 그리스·로마시대로 다시 돌아가, 그곳으로부터 새로운 삶의 정신문화를 바로 이끌어냄으로서, 보다 낳은 잘 사는 세상을 유럽사회에 다시 만들어보자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따라서 이러한 유럽의 르네상스 시기는 문화·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과학 등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서 새로운 신 가치를 추구하던 그러한 시대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시대에는 인쇄술도 발달하여 많은 사람들이 쉽게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지식 또한 널리 확산되었던 시기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르네상스 신문화부흥 운동은 유럽의 이탈리아에서부터 시작되어 독일· 프랑스· 영국을 거쳐 유럽사회전역의 정치·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침으로서, 오늘날 이 르네상스는서양 문화의 어머니로 비유되어 불리기도 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는 바로 르네상스(Renaissance)는 인간이 지니는 진정한 가치, 즉 인간의 창조성으로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을 서로 함께 같이 존중하자는 인문주의적인 휴머니즘(humanism)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르네상스의 의미는 곧 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일을 뜻한다는, 후마니오라(humaniora)라는 말에서 유래된 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근세 유럽문명에서 일어났던 인문주의적 휴머니즘의 르네상스 문화부흥운동은 중세유럽사회의 핵심 사상이었던 헬레니즘(Hellenism)과 헤브라이즘(Hebraism)이라는 두 사상의 기둥 사이에서 인간의 깊은 고뇌와 함께 이루어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서구 유럽문명에서 탄생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문명세계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르네상스 문화부흥 운동이 도대체 우리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또한 진정 우리의 한반도 문명 속에는 이런 위대한 문명의 발자취는 전혀 없었던 것일까? 우리들은 이런 문제점들을 한번쯤 깊이 고찰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헬레니즘(Hellenism)과 헤브라이즘(Hebraism)의 세계에서 꽃핀 르네상스 부흥운동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근세 서구유럽문명에서 탄생한 르네상스문화부흥운동은 신본주의에 대한 인본주의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에 대한 인간의 도전과 진정한 가치, 그리고 바른 인간성 회복운동이 바로 르네상스 부흥운동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르네상스 운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간략하게 서구 유럽사회에서 꽃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문명사에 대해서도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제 이 세계를 들여다보기로 하자. 우선 헬레니즘의 세계를 살펴보기로 하자.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 헬레니즘은 기원전 그리스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그리스 고대사회의 문명으로 다신교와 철학사상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이때 이들이 말하는헬레니즘(Hellenism)’이란 바로 헬라스(Hellas)’ 사람들의 문화와 사상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바로 이 헬라스(Hellas)’란 단어는 영어로 그리스(Greece)’를 나타내며, 한자로는 희랍(希臘)’를 의미한다. 따라서 헬레니즘(Hellenism)이란 고대 그리스(희랍) 사람들의 사상과 문화 전체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헬레니즘(Hellenism)이란 인간이 중심이 된 바른인본주의(人本主義)’를 표방하는 그리스사상을 말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한편 헤브라이즘(Hebraism)’헤브라이(유대)’민족의 사상과 문화, 종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헤브라이즘은 유대교의 엄격한 율법을 중심으로 체계화되었고, 그리고 예수가 유대교 율법을 사랑의 원리로 완성시킨 기독교 사상의 바로, 그 밑바탕이 된다. 이렇게 체계화 된 기독교는 당시 서구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던 로마를 지배하며 전 유럽으로 확산되었고, 그리고 그 이후 1000년 이상 서구 유럽사회의 중세시대를 지배하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구약성서에 근거한 헤브라이즘의 세계 속엔 여호와라는 유일신이 바로 그 중심에 서서 존재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러한 헤브라이즘의 세계에서는 인간은 모두 유일신의 피조물이며, 오로지 창조주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만 하고, 그리고 또한 신의 후광을 입어야만 진정으로 행복해 질 수밖에 없다는 나약한 존재로 각인되고 만다. 따라서 헤브라이즘은 이른바 신을 매개로 하는신본주의(神本主義)’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신본주의는 인간의 나약한 인본주의의 위에 굴림 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 로마문명의 헬레니즘 속에서 성장한 이스라엘 유대문명의 헤브라이즘은 서로 인간과 신이라는 가치관에서 강하게 부딪친다. 이와 같이 신본주의를 표방하는 헤브라이즘은 인본주의를 표방하는 헬레니즘의 세계를 강하게 억압하며, 중세 서구유럽사회를 암흑의 침체사회로 몰아간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르네상스(Hellenism)란 바로 이러한 헤브라이즘의 세계를 벗어나 헬레니즘의 위대한 인본주의(人本主義)사회를 다시 부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가 중세 내내 강한 위세를 떨치며 정치권력과 야합하여 서구 유럽사회를 침체된 암흑기로 몰아갈 때, 이에 도전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고뇌했던 헬레니즘의 인본주의자들이 고전으로, 그리고 원전으로를 외치며 헬레니즘의 재생(Renaissance)’을 기도하였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던 것이었을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런데 과연 서구유럽사회에서만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만들어내는 르네상스의 위대한 문명사회가 있었던 것일까? 우리들은 이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서구 유럽문명에서 르네상스 문화부흥 운동이 일어났던 14~16세기, 우리의 한반도에서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일까? 바로 같은 시기 우리의 한반도에서도 똑 같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르네상스 부흥운동이 조선반도 전체에서 힘차고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학문에 눈이 어둡고 미진한 우리들만이 그러한 세상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 그 세상을 들여다 살펴보기로 하자.

<!--[if !supportEmptyParas]--> <!--[endif]-->

 

▲ 세종대왕(世宗大王. 1397~1450)

 

조선에서 꽃핀 세종의 르네상스 부흥운동

<!--[if !supportEmptyParas]--> <!--[endif]-->

고대 그리스· 로마사회에서 헬레니즘 문명이 존속할 때, 우리의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 들어온 불교문화의 헬레니즘(Hellenism)문화가 고려 말 까지 그대로 존속한다. 불교문화는 한 마디로 자연주의를 근본으로 하는 인본주의를 철저히 그 바탕으로 한다. 당시 불교문화는 바로 서구 그리스· 로마 초기 문명사회의 헬레니즘의 인본주의 문화와 그대로 같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헬레니즘의 불교문화 속에 깨달음의 붓다에 신()의 능력을 입혀 붓다를 그대로 신격화하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바로 붓다를 인격신으로 개조하여 서구 유럽사회의 유일신과 같은, 위대한 신의 능력을 부여하는 헤브라이즘(Hebraism)의 문명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즉 간교한 인간들이 깨달음의 붓다를 신()으로 둔갑시키고 있는 것이다. 바로 신이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하려는 행위가 일어난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그리고 마침대 로마의 교황처럼 여기에 정치권력의 옷을 입히는 정종야합(政宗野合)에 들어간다. 또한 마침내 탐욕의 정치권력을 탐하려 했던 교황의 권위가 무참히 무너지며 로마가 망해가던 같은 시기, 조선반도에서도 헤브라이즘의 불교도들과 정치위정자들의 정종유착으로 고려(高麗)역시 무너져 간다. 아울러 이러한 문화적인 격심한 격동기에 새로운 불교문화 속에 숨어있던 헤브라이즘의 신격화를 원래의 바른 인본주의로 다시 돌리고자 하는 헬레니즘의 문화운동이 서서히 일어난다. 바로 고려 말 불교문화 속에 내재된 붓다의 신격화된 헤브라이즘문화를 버리고, 새로운 헬레니즘의 인본주의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는 그대로 정종유착(政宗癒着)으로 부패한 고려를 멸하고, 새로운 유교문화의 인본주의 국가를 세우고자 하는 열정으로 들어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 정도전 유배지임을 알리는 표석. 정도전은 원래 ‘백성은 풀잎같아서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쓰러지는’는 나약한

존재이며, 따라서 가르쳐야 할 존재라고 여겼지만 유배생활을 통해 민초의 만만치 않은 힘을 깨달았다.

 

 

고려 말에 중국으로부터 들어 온 이러한 유교사상은 성리학을 바탕으로 하는 철저한 사회인본주의를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 즉 서구 유럽사회에서 르네상스 부흥운동이 일어났던 같은 시기, 조선반도에서도 사회변화를 촉구하는 르네상스문화부흥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 개혁의 첫 주자는 바로 신격화된 헤브라이즘의 불교문화를 타파하고자 하는 삼봉 정도전의 인본주의적인 헬레니즘의 사상이다. 그리고 삼봉 정도전은 헤브라이즘의 불교문화를 드디어 헬레니즘의 유교문화로 바꾸어 가는 국가체제로 전환한다. 즉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를 내세워 고려를 멸하고 새로운 조선(朝鮮)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세종대왕 시대에 활기찬 르네상스시기를 맞이한다. 바로 유럽사회에서 르네상스 문명이 일어났던 시기와 그대로 일치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세종은 유교적인 성리학을 바탕으로 하여 조선의 백성을 살리고자 조정에 집현전을 설치한다. 그리고 여기서 학자들을 키우고 학문을 숭상하며, 옛 제도를 연구 검토하게 함으로써 정치와 문물제도를 정리하여 조정의 모든 행정체제를 제대로 정립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세종은 이러한 배경으로 서구 유럽사회에서 일어났던 르네상스시기에 맞추어 조선의 역사, 지리, 정치, 경제, 천문, 도덕, 예의, 문자, 운학, 문학, 종교, 군사, 농사, 의약, 음악 등에 관한 각종 저서를 편찬하게 함으로써 문화생활에 막중한 변화를 촉구한다. 그리고 가장 큰 사회변화는 바로 한글창제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바로 세종은 인류사에 있었던 가장 위대한 르네상스 문화부흥 운동을 주도한 것이다. 그런데 세종의 르네상스부흥운동은 세종의 사후 빛을 발하지 못하고 그대로 시들어버리고 만다. 세종은 아마도 이를 보며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눈물을 흘리는 장소는 바로 이탈리아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앞에서일 것이다. 우리들은 이제 왜 세종이 눈물을 머금고 있는지, 그 착잡한 마음의 세계를 들여다보기로 하자.

<!--[if !supportEmptyParas]--> <!--[endif]-->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모나리자(Mona Lisa. 1503~05. 루브르 박물관 소장)

 

 

세종의 눈물 속에 피어난 모나리자의 미소

<!--[if !supportEmptyParas]--> <!--[endif]-->

세종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모나리자(Mona Lisa. 1503~05. 루브르 박물관 소장)화폭 앞에서 물끄러미 모나리자의 아름다운 미소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세종은 자신이 그토록 세우고자 하였던 조선의 모든 역사를 상기한다. 화폭의 모나리자! 다소곳이 책상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야릇한 미소를 짓는 모나리자의 뒷 배경에는 르네상스의 고향인 피렌체의 아름다운 농촌 풍경이 그대로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자연의 편안한 드리움과 차노비 델 조콘도(Zanobi del Giocondo)의 아름다운 아내를 모델로 하여, 하나가 되도록 그린 모나리자의 순수한 그림이 그대로 세종의 눈에 들어온다. 꿈꾸는 듯한 모나리자의 완벽한 미소는 세종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다는 듯이 미소를 살며시 머금으며 세종을 야릇한 눈길로 바라본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세종 역시 천천히 화폭 하단의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바로 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천재적인 미술가이자 기술자로서 조각·건축·수학·과학·음악·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했던 인물이다. 세종 역시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다방면의 학문을 깊이 연구하며, 또한 그의 주변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수많은 인재들이 세종에 힘을 보태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종의 주변에는 아무런 인재들도 없다. 이것이 세종 후의 모든 조선의 역사이며, 그리고 작금에 한반도에서 남북이 서로 분열하며 비참히 싸우는 역사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1495~98,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소장)

 

세종은 또 다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1495~98,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소장)을 모나리자 앞에서, 그녀의 눈빛을 보며 연상해 본다. 이 최후의 만찬은 예수를 둘러싼 열두 명의 제자를 소재로 하여 1495~1497년에 걸쳐 제작한 그림으로, 예수의 머리를 소실점으로 하여 완벽한 균형을 이루도록 그린 작품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모나리자최후의 만찬은 바로 서구 유럽문명사회를 대표로하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문명의 비밀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세종의 눈물이 되어서, 세종의 마음속으로 깊이 파고든다. 순수 자연을 배경으로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고자 한 모나리자의 미소! 신들의 최후의 만찬을 그려낸 최후의 만찬! 이 두 작품은 그대로 모나리자의 헬레니즘과 최후의 만찬에서 나타내는 헤브라이즘의 표상을 나타낸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통해 모나리자의 세계를 바로 구현한 것이다. 즉 헤브라이즘의 종말을 통해 헬레니즘으로 대변되는 르네상스문명을 그림으로 그려낸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말한다. “예술은 자연의 딸이다. …… 다른 예술가의 방식을 흉내내지 말라. 그렇다면 예술은 자연의 딸이 아니라, 바로 그대로 자연의 손녀가 되고 말테니까.”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처럼 다른 예술가를 흉내내지 않고 독창적인 헬레니즘의 모나리자를 완성한 것이다. 모나리자는 세종을 향해 말한다. 자신의 독창적인 정통성을 지켜내지 못하는 민족은 반드시 망한다고 말한다. 모나리자의 위대성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세종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사후(死後)르네상스 문명을 지켜낸 유럽과, 그리고 르네상스 문명을 지켜내지 못하고 무참히 버린 조선의 운명이 어떻게 서로 달리 갈리는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세종은 여기에 감복하고 눈물을 머금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세종 사후 조선의 문명이 왜 무너졌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은 세종이 일으킨 한반도 르네상스문명을 세종의 사후 세조의 살생부와 연산군의 사화로 이어지는 정치권력투쟁으로 말미암아 급기야는 선조 시에 임진왜란의 국운을 맞이하고, 뿐만 아니라 또한 임진왜란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일제강점기를 맞이하는 비운의 역사를 맞이하고 만다. 하지만 유럽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통해 들어난 것처럼, 신본주의의 종말을 모나리자의 인본주의로 바로 극복한 것이다. 신본주의의 종말은 과거 화려했던 로마 교황청의 모습이, 지금의 초라한 바티칸의 모습으로 그대로 들어난다. 단지 중세 유럽사회에서 휘몰아쳤던 피의 대가로 건축되고, 그려진 바티칸의 화려한 예술작품들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본주의 사상을 이끌어낸 르네상스 문명은 결국 유럽 산업혁명의 기폭제가 되어 유럽사회가 동양사회를 앞서게 하는 가장 중요한 계기로 발전하게 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처럼 세종은 삼봉 정도전의 르네상스 부흥운동을 후손들이 승화시켜 국가발전을 이룩해주길 간절히 원했지만, 후손들은 세종의 이러한 뜻을 알지 못하고 오르지 정치권력투쟁에만 전념하며 모든 국권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세종의 조선은 이렇게 무너지고, 지금 한반도의 남북은 세종의 르네상스부흥운동을 부활시키지 못하고 힘없이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역사 앞에서 세종은 모나리자 바라보며, 그저 소리 없이 눈물을 머금고 있는 것이다. 세종 사후 조선은 헬레니즘의 유교문화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퇴계이황·기대승으로 이어지는 이기논쟁이라는 못된 정치논쟁에 빠져 모든 국론이 분열되어 결국 일제에 의해 망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은 헬레니즘의 인본주의 사회가 아닌 온갖 자본주의 문화로 찌든 미쳐버린 신본주의 사회로 전락해 가고 있다. ! 높은 북한산 정상에서 서울 시내를 밤에 내려다보면, 말 그대로 자본과 권력에 결탁하는 부패된 신본주의의 못된 군상들이 그대로 속속들이 모두 다 들어난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로마가 왜 멸망했으며, 고려가 왜 무너졌으며, 또한 이씨조선이 왜 망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제 우리들은 세종의 눈물을 닦아주어야만 한다. 과연 어떻게 세종의 눈물을 닦아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이제 이 문제를 생각해보기로 하자.

<!--[if !supportEmptyParas]--> <!--[endif]-->

세종의 눈물을 닦아 새로운 세상을 구현

<!--[if !supportEmptyParas]--> <!--[endif]-->

세종은 모나리자를 다시 살펴본다. 여전히 소리 없이 다소곳이 책상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아름다운 피렌체의 농촌풍경을 배경으로 않아있는 모나리자의 아름다운 모습! 모나리자는 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종의 눈물을 닦아낸다. 모나리자의 이 모습 속에는 동서양의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에 대한 융합의 문화가 자연주의로 담겨져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도저히 신 없이는 제대로 사유하지도 못하는 신 중심적(theocentric)’ 사유의 경향성을 띠는 유럽사회에서 자연주의로 이를 극복하려 한다. 그래서 모나리자의 그림 속에는 아름다운 피렌체의 자연풍경을 뒷 배경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지금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 자연주의를 배경으로 다소곳이 두 손을 모아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융합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두 손을 포개 헬레니즘으로 헤브라이즘을 감싸고 있다. 즉 자연적인 순수 인간으로 돌아오라는 외침인 것이다. 마치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 장자크 루소(1712~1778)의 외침처럼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자연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두 손을 모아 신을 감싸고 있는 인간 모나리자의 모습! 신본주의를 인본주의로 감싸고 있는 모나리자의 모습! 이 모습 속에는 인간의 허약한 감성문화 속에 숨어있는 헤브라이즘의 신본주의에 대한 배려가 숨어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모나리자를 통해 인간의 허약한 가슴의 빈자리에 파고들어 인간의 이성이 신이 되고, 자본이 신이 되며, 과학이 신이 되며, 물질과 허무조차 신이 되는 인간의 허약함을 바로 자연주의적인 인본주의로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모나리자의 미소는 언제나 야릇하다. 모나리자는 알 고 있다. 헤브라이즘을 버리고 싶지만 이를 버릴 수 없는 인간의 모습! 그러나 버려야만 하는 인간의 모습! 그래야만 위대한 인간성을 회복하고 자연과 함께 새로운 문명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 그래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통해 헤브라이즘의 신본주의를 한 손으로 덮으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알고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종교적 감성문화가 탐욕을 내어 정치권력과 야합하면, 반드시 모든 인간성을 잃고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바로 국가도 문명도 무너진다는 것을 알 고 있다. 이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르네상스부흥 운동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림으로 들어난 것이 모나리자의 미소이다. 아마도 이런 인간성 회복을 위한 세상을 만들고자 삼봉 정도전도 꿈꾸었을 것이고, 세종도 꿈꾸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처럼 모나리자를 통해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논하고 두 손을 모아 참 진리의 통일성과 조화성을 강조하는 통섭의 문명을 논했는지도 모른다. 모나리자는 기도한다. 다소곳이 두 손을 모아 거짓 신을 팔아 순수 인간성을 파멸시킨 헤브라이즘에 대한 속죄의 기도를 한다. 그것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세상에 알리고자 한 최후의 만찬이요, 모나리자의 미소이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제 우리들은 세종의 눈물을 닦아주어야만 한다. 그것은 바로 세종의 르네상스 문명을 재생시키는 것이다. 세종은 말한다. 위대한 한민족이여 신과 같은 탐욕의 욕망에 물들지 말고, 온 국민이 하나 되는 참 국가를 만들어 달라고 말하고 있다. 유럽의 르네상스 문명이 성공하고 세종이 이루고자 했던 조선반도의 르네상스 문명이 실패한 것은 바로 신본주의적인 헤브라이즘에 대한 정리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이를 위해 탐욕의 권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삶의 정보를 서로 공유하는 르네상스 문명을 만들었지만, 조선반도는 위정자들이 탐욕의 권력을 집중시켜 조선이 결국 망하는 꼴에 처하게 된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인쇄소에서 작업중인 구텐베르크를 묘사한 상상도. 저자 불명의 19세기 영국 채색판화

 

 

이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 1397~1468)가 서양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만들어낸 인쇄술로 고급지식정보를 온 유럽인들이 서로 공유하여 인간성 회복을 외치는 르네상스 문명을 만들어냈지만, 조선반도는 서양보다도 먼저 금속활자의 인쇄술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사회귀족세력들만 그들의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독점적으로 사용함으로서, 결국 세종의 르네상스 운동이 실패하는 계기가 되었음을 우리들은 이미 모두 잘 알고 있다. 이제 우리들은 위대한 한민족의 위대한 천부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세종의 눈물을 닦아주어야만 한다. 그리고 세종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러한 노력의 결과로서, 우리들은 우리민족의 통일대업을 이루고 부강한 나라를 반드시 만들어야만 할 것이다. 아마도 모나리자의 미소를 바라보는 세종의 마음속에는 이러한 깊은 마음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나는 세종과 더불어 모나리자를 떠나 다음 목적지를 향해 떠난다. 그리고 다시금 모나리자를 상기한다. 당신의 위대한 미소는 마지막으로 동양의 한반도에서 반드시 아름다운 꽃으로, 활짝 꽃 피운다는 것을 가슴깊이 약속들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