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김현희, 유족 요구 공개토론에 응답해야” [인터뷰] ‘KAL858 폭파사건’ 연구로 석-박사 학위논문 쓴 박강성주 씨

백삼/이한백 2014. 2. 10. 10:10

김현희, 유족 요구 공개토론에 응답해야”
[인터뷰] ‘KAL858 폭파사건’ 연구로 석-박사 학위논문 쓴 박강성주 씨
        


‘KAL858기 사건’. 제13대 대통령선거를 눈앞에 둔 1987년 11월 29일, 115명의 승무원과 탑승객을 태우고 이라크 바그다드공항을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기가 인도양 상공에서 행방불명된 사건이다.

 

‘폭파 용의자’ 하치야 마유미(김현희)가 바레인에서 붙잡혀 대선을 하루 앞둔 12월 15일 한국으로 압송됐고, 1988년 1월 국가안전기획부(약칭 안기부)는 KAL858기 사건이 ‘88서울올림픽 참가 신청 방해를 위해 대한항공 여객기를 폭파하라’는 김정일의 친필 지령을 받은 북한 공작원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고 발표했다.

 

사건을 다시 조사한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발전위원회)도 2007년 “북한 공작원에 의해 벌어진 사건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KAL858기 가족회와 시민대책위원회 등은 여전히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오는 11월 29일, KAL858기 사건은 25주기를 맞는다.

 

영국에서 2년, 스웨덴에서 2년을 공부하며 박사 과정을 마무리한 국제관계학 연구자 박강성주 씨는 29일에 열리는 ‘KAL858 사건 25주기 추모제’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무엇보다도 그의 석·박사 논문 소재가 모두 KAL858기 사건이다. 박강성주 씨는 29일에 열리는 KAL858 사건 25주기 추모제에서 최근 발표한 박사 논문의 핵심 내용과 연구 과정에서 했던 고민을 나누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추모제를 일주일 여 앞둔 21일 서울에서 그를 만났다.

 ▲ 박강성주 씨 ⓒ가톨릭뉴스

박강성주 씨는 박사 논문을 준비하면서 KAL858기 사건과 관련된 인물 63명을 만나 면접조사를 진행했다. 이들 중 절반 정도가 KAL858기 실종자의 가족이다. 국정원 발전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위원회)의 조사에 참여했던 이들, 관련된 전직 공무원들, 이 사건을 다뤘던 언론인들도 만났다.

 

그는 “원래 계획은 실종자 115명의 가족을 전부 만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분단 상황과 국가보안법의 제약으로 북한의 KAL858기 사건 조사 관계자나 언론인을 만나지 못한 것도 그에게는 아쉬운 점이다. 또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했지만 결국 김현희 씨와의 면접이 이뤄지지 못한 것도 그는 논문의 한계로 꼽았다.

 

박사 논문에 ‘115번 죽어야 할 처녀 테러리스트’라는 부제 붙인 이유는…

 

박강성주 씨는 여성주의 국제관계학자 크리스틴 실베스터(Christine Sylvester)로부터 논문 지도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전공 분야를 “기존의 주류 국제관계학과 달리 ‘세계관으로서의 젠더’, 몸, 감정, 위치성, 교직관계 같은 부분에 관심을 갖는 국제관계학”으로 이해한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공부와 관련해 여성학자 정희진의 영향도 어느 정도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가 발표한 논문 제목은 흔히 보아 온 형태의 제목이 아니었다. <Feminist IR / Fictional IR / KAL858―A ‘Virgin Terrorist’ Who Is To Die 115 Times>가 제목인데, 한국어로 바꾸면 <여성주의 국제관계학 / 소설 쓰기 국제관계학 / KAL858―115번 죽어야 할 ‘처녀 테러리스트’>다.

 
제목에 슬래시(/)가 들어간 것은 이 논문에서 ‘여성주의 국제관계학’과 ‘소설 쓰기 국제관계학’, 그리고 ‘KAL858 사건’이라는 세 가지 항목이 서로 밀접하게 엮어져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소설 쓰기 국제관계학’은 정보의 부족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질문에서 출발한 것으로, 박강성주 씨가 만든 용어이기도 하다. 그는 논문에 실종자 가족과 김현희 씨를 주인공으로 삼아 직접 쓴 소설을 포함시켰다.

 

‘처녀 테러리스트’(Virgin Terrorist)는 KAL858기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마유미>(1990년 개봉)의 영어 부제다. 끝으로 ‘115번 죽어야 할’(Who Is To Die 115 Times)이란 표현은 박강성주 씨가 만난 KAL858기 실종자 가족 중 한 사람이 했던 말에서 따온 것이다.

 

“그분은 김현희 씨가 진짜 범인이라고 믿고 있는 분이었어요. 기존 수사 결과가 맞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김현희 씨가 사형 판결을 받은 뒤 특별사면을 받았는데, 그때 이 가족 분은 김현희 씨를 죽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김현희 씨가 유일한 증거이기 때문에 죽지 않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분은 ‘만약 김현희를 죽여야 한다면, 한번이 아니라 115번을 사형시켜야 한다’고 말했어요. KAL858기 사건의 실종자가 115명이기 때문입니다. 이분의 말씀과 <마유미>의 영어 제목을 합쳐서 제 논문의 부제가 나온 것입니다. 김현희 씨 당사자에게는 115번 죽어야 한다는 말이 가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종자 가족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쌓여 있다는 뜻이지요.”

 

“운명처럼” 날아온 KAL 858기…

 

박강성주 씨가 KAL858기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그가 ‘통일논문 사건’이라고 부르는 일이었다. 박강성주 씨는 2002년 통일부가 주최한 제21회 전국 대학생 통일논문 현상공모전에 <9·11 테러와 한반도―남북관계의 변화 및 앞으로의 대비책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응모해 우수작에 입선됐다. 그런데 통일부가 이 논문 중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내용의 수정을 요구했고, 박강성주 씨가 이를 거부하자 입선 결정이 취소된 것이다.

 

이 사건은 박강성주 씨에게 삶의 전환점이 됐고, 이후 “운명처럼” KAL858기 사건에 대한 논문을 쓰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그가 쓴 사건의 공론화 과정에 관한 석사학위 논문(2005년 발표)은 2007년 단행본으로 나온 <KAL858, 진실에 대한 예의―김현희 사건과 ‘분단권력’>에 수정 · 보완돼 실렸다.

 

이 책에서 박강성주 씨는 자신의 입장을 ‘철저하고 전면적인’ 재조사라고 밝혔다. 여전히 철저한 전면 재조사를 주장하느냐는 물음에 그는 조심스럽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고 말했다.

▲ 2011년 11월 29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KAL858 사건 24주기 추모제. 참석자들이 헌화하는 동안 한 가족이 실종자의 이름을 어루만지고 있다. ⓒ가톨릭뉴스


수색, 수사, 수습 과정 모두 문제… 전면 재조사, 여전히 필요하다

 

여전히 전면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KAL858기 사건의 기존 조사가 부실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강성주 씨는 “단순화시킨다면 ‘3수’, 즉 수색과 수사, 수습 과정에 모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첫째, 수색은 과연 제대로 이뤄졌나요? 10일 만에 수색단이 철수했고 블랙박스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나아가 블랙박스를 발견하려는 의지가 있었는가 묻고 싶어요. 수색단이 장비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뒤에 KAL858기의 잔해가 발견됐는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폭파 흔적이 없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그 잔해는 폐기됐습니다.

 

둘째, 수사는 어떻습니까? 김현희 씨 진술에 거의 의존하는 수사 방식이었고, 이른바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수사가 이뤄졌기 때문에 문제가 있습니다. 게다가 김현희 씨의 진술이 바뀌는 경우나 모순되는 부분이 많이 발견됐지요.

 

셋째, 수습의 문제인데요. 정부가 실종자 가족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빠른 기간 내에 ‘사망’ 처리를 했지요. ‘보험금’인가 ‘보상금’인가 어떤 용어를 써야 하는지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이 돈은 거의 강압적으로 지급됐습니다.

 

그런가 하면 안기부 쪽에서 김현희 씨의 사면에 동의해달라고 실종자 가족들이 모인 장소에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 중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항의하는 사람이 있으니 안기부 직원이 멱살을 잡고 위협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제가 면접을 통해 확인한 사항입니다.”

 

박강성주 씨는 국정원 발전위원회와 진실위원회의 KAL858 사건 재조사도 동체 수색을 시도하는 등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지만 구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국정원 발전위원회는 국가정보원장 직속 민관합동기구였고, 민간 측에서 참여한 이들이 활동하는데 여러 제약이 따랐다. 진실위원회의 경우는 2005년 국회에서 과거사법을 통과시키는데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합의하는 과정에서 위원회의 권한이 상당히 축소됐다고 봤다.

 

연구자로서의 문제의식 … 우리는 ‘진실’에 도달할 수 있는가

 

한편, 박강성주 씨는 5년 전에 비해 ‘진실’이라는 개념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KAL858기 사건에 대해 두 가지 정도의 ‘진실’이 ‘경합’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나는 ‘북쪽의 테러’, 다른 하나는 ‘남쪽의 조작’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진실’은 서로 다르게 보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진실’이 실체로서 밝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두 가지 견해가 경합하고 있지만, 그 두 가지를 포함해 다른 어떤 ‘진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철저하고 전면적인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봤던 것이지요.

 

제 박사 논문 자체가 진실 개념에 대해서 문제 제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진실’이라는 것 자체가 서로 ‘경합’하고 있으며, 진실은 ‘경합’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구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뚜렷한 것은 아니고 모호하며,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진실’은 진술이나 증거에 의해 밝혀질 수 있는 것이기보다는, 그것들을 둘러싼 ‘말들’과 ‘해석들’, 그리고 이를 둘러싼 ‘정치’가 구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담론의 효과라고 할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누구의 입장에서 ‘진실’이 구성되고 그것을 확정할 수 있는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입니다. 때문에 여러 가지 ‘진실’이 경합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 제가 관심을 뒀던 부분이고, 제 논문의 핵심 가운데 하나입니다.”

 

박강성주 씨는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문제적이며, 고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밝혀지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중요한 것은 ‘위치성’의 문제라고도 말했다.

 

“만약 제가 실종자 가족 중 한 명이었다면, 다시 말해 KAL858기 사건이 제게 삶과 죽음의 문제였다면, 제가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고정돼 있지 않고 밝혀지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이죠. 어떻게 보면 저는 ‘연구자’라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논문의 결론 부분에 ‘나는 진실의 개념 자체가 고정돼 있지 않고, 진실의 개념이 재구성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런 말은 내가 연구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만약 실종자 가족의 위치에 있다면 그런 이야기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내용을 적게 됐지요.”   

 

 ▲ 지난 6월 19일 김현희 씨(오른쪽 끝)가 TV조선 '최 박의 시사토크 판'에 출연해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등과 함께 KAL858기 사건에 관해 말하고 있다. 6월 18~19일 이틀에 걸친 방송에 출연한 김현희 씨는 ‘김현희 가짜설’을 일축하고 “자국민이 희생당한 테러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망국적인 범죄 행위”라고 비난했다. (TV조선 '최 박의 시사토크 판' 방송 화면 갈무리)


KAL858기 사건의 세 가지 고통 … 실종자 115명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김현희
“김현희는 ‘왜’ 지금 살아있는가?” 하는 물음으로 돌아가야

 

박강성주 씨는 자신의 논문이 KAL858기 사건에서 ‘젠더, 고통, 진실, 안보’의 문제가 어떻게 서로 얽혀 있는가에 관한 것이라 소개했다. 이중 ‘고통’에 관해서 세 가지 고통을 살펴보았는데, ‘실종자 115명’과 ‘가족들’ 그리고 ‘김현희 씨’의 고통이다. 그는 KAL858기 가족회와 진상규명 시민대책위원회가 김현희 씨에게 공개토론회에 나서라고 외치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저는 김현희 씨도 인간적으로 그 나름의 고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씨 입장에서는 가족 분들이 공개 토론을 요청하는 게 지나친 요구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김현희 씨는 ‘나는 안기부 조사실에서 모든 것을 다 말했고, 재판 과정에서도 모든 것을 이야기했는데 왜 또 나에게 말하라고 하냐’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러면서도 그는 “왜 김현희 씨가 지금 살아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김현희 씨의 그런 심정을 이해하지만, 결국 사형선고를 받았던 김현희 씨가 왜 특별사면을 받고 지금껏 살아있는가, 그 이유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이 사건의 유일한 산 증인으로서 살려둔다는 것이었지요. 따라서 김현희 씨에게는 KAL858기 사건에 대해서 말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사건에 대해 논란이 있고, 그 논란에 대한 실종자 가족들의 어떤 요구가 있는 한, 김현희 씨 자신은 괴롭더라도 응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