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허왕후 신화' 띄우기.. 역사학계 우려 목소리
“2000년 전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사랑에서 시작된 한국과 인도의 특별한 인연이….”
6일(현지 시간)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 아요디아 허왕후 기념공원 착공식에서 김정숙 여사는 허왕후 역사를 특별히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대통령 부인의 단독 해외 방문은 16년 만에 처음으로 이례적인 행사였다. 앞서 7월 인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역시 2차례나 허왕후를 언급할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선 정부의 ‘허왕후 신화’ 띄우기에 우려의 목소리를 조심스럽게 내고 있다. 신화의 존재를 넘어 실재하는 역사처럼 취급돼서는 곤란하다는 게 학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 신화가 사실로 둔갑한 ‘허왕후’
“허왕후는 아유타국(阿踰陁國) 출신 공주다. 16세에 바다를 건너 김수로왕에게 시집가 왕비가 되었고, 태자 거등공(居登公)을 낳았다. 157세까지 살았는데 죽은 후 구지봉(龜旨峰) 동북 언덕에 장사했다.”
현존하는 허왕후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281년 편찬된 삼국유사 ‘가락국기(駕洛國記)’조에 나오는 이 구절이다. 여타 고대 국가의 건국 신화처럼 기이한 이야기로 포장돼 있지만 유독 허왕후만은 실재한 역사처럼 여겨진다.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인도에서 온 허왕후, 그 만들어진 신화’(푸른역사) 책을 낸 이광수 부산외국어대 교수는 “조선시대 양반 가문정치가 허왕후 신화를 부풀렸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1647년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한 허적(1610∼1680)이 자신의 관할지에 있던 허왕후릉에 ‘허왕후가 아들 열을 낳고, 그중 두 아들에게 허씨 성을 하사했다’는 비석을 세웠다”며 “자신이 속한 양천 허씨 집안의 역사성을 치켜세우려는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고려시대까지 전해지는 허왕후 신화에는 단지 아유타국에서 건너왔다는 기록밖에 없다. 이후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장유화상’이란 허왕후의 오빠가 불교를 한반도에 전래했다는 이야기와 허왕후의 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국을 세웠다는 설화가 덧대졌다. 특히 1972년 아동문학가 이종기 씨(1929∼1996)가 쓴 소설 ‘가락국탐사’가 발표된 후 재야사학계에서는 이를 근거로 허왕후가 실존 인물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 교수는 “허왕후 신화는 고고학적 증거나 문헌에 의한 고증이 아니라 김해 김씨, 양천 허씨 등의 문중과 일부 불교 사찰,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재야사학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윤색돼 왔다”고 설명했다.
○ 허왕후 찾겠다며 발굴 조사하는 지자체
상황이 이렇다 보니 허왕후와 관련된 유적지를 찾겠다며 발굴 조사를 벌이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남 김해시는 올해 9월 허왕후가 한반도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곳이라는 ‘망산도(望山島)’ 유적지를 찾겠다며 발굴 조사를 진행했다. 김해시 삼정동 전산마을 일대에서 진행한 조사 결과, 가야 시기 토기 몇 점만 수습했을 뿐이다. 김해시 문화재과 관계자는 “조선 후기 제작된 ‘대동여지도’ 등에 망산도로 표시돼 있는 등 근거가 있다”며 “망산도뿐 아니라 가야시대 해양 제사 유적 전반을 살피려고 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천수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는 “허왕후가 서기 48년에 인도에서 건너오려면 동남아시아, 남중국, 산둥반도 등을 거쳐 들어와야 하는데 그 당시 항해술로는 이미 몇 번을 난파당했을 것”이라며 “허왕후를 문화 콘텐츠로 활용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신화 속 인물을 실재 역사에 편입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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