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역사, 소식

360년전 황간현의 사찰(절)과 부곡

백삼/이한백 2013. 11. 28. 10:31

佛宇 불우

* 尋妙寺 심묘사

寺爲前朝巨刹,而今廢者,殆二百年,寺基有毁塔盖,開國初,辟佛毁塔廟時,所毁也

사위전조거찰,이금폐자,태이백년,사기유훼탑개,개국초,벽불훼탑묘,시소훼야

→ 심묘사는 고려 때에 커다란 절이었는데,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에 없어지고 절터에는 지붕석이 훼손된 탑 덥개가 있다, 조선 초에 불교를 억압하여 탑이 훼손 될 때 여기도 훼손된 것이라고 한다.

寺有八景,使君峰,月留峰,山羊壁,龍淵坮,花軒壑,靑鶴窟,法尊菴,冷泉亭,(舊基在內冷泉)

사유팔경,사군봉,월류봉,산양벽,용연대,화헌학,청학굴,법존암,냉천정,(구기,재내냉천)

→ 절에는 팔경이 있는데 사군봉, 월류봉, 산양벽, 용연대, 화헌학, 청학굴, 법존암, 냉천정(옛 절터 안에 냉천정이 있다)이다.

梅溪序中所謂,靑鶴洞烟霞縹渺,殆非人世中境界,者卽是處也,遊覽者謂,無讓於四郡

매계서중소위,청학동연하표묘,태비인세중경계,자즉시처야,유람자위,무양어사군

山水云

산수운

→ 매계 서문 중에 “청학동 안개는 비단처럼 깔려있고 진실로 사람사는 경계가 아니로다”하였으니 곧 이곳을 유람하는 사람이면 사군의 산수(중국의명승지)에 양보 할 수 없다고 말한다.

 

* 乾川寺 건천사

寺在黃岳山之陰,新羅善德王時,與山南直指寺,同時刱建云,寺有金堂最古,雖累經兵火

사재황악산지음,신라선덕왕시,여산남직지사,동시창건운,사유금당최고,수루경병화

→ 건천사는 황악산의 북쪽에 있다. 신라 선덕왕 때에 산 남쪽의 직지사와 더불어 같은 때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절에 있는 금당(金堂)은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비록 여러차례 전쟁(兵火)을 겪었으나

然,或者,謂有神呵禁,故如此云此言,雖不可信以,余所聞見記之,嘉靖戊午擧寺

흘금규연,혹자,위유신가금,고여차운차언,수불가신이,여소문견기지,가정무오거사

→ 지금에 이르도록 우뚝하게 서 있는 것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신이 있어 呵禁(가금)을 하는 연고라고 한다. 이러한 말을 비록 내가 믿는바 아니지만 듣고 본 바를 기록하는 것이다. 가정 무오년(명종13년 1558)에 들어 절에

∠迄이를흘 ∠巋우뚝솟을규 ∠呵禁 예로 “물렀거라 00대감행차시다”하는것

失火延法堂,法堂與金堂連.而獲全壬辰倭,焚禪堂,禪堂亦與金堂連甍,而又獲全

실화연설법당,법당여금당연흉,이획전임진왜,분선당,선당역여금당연맹,이우획전

→ 화재가 났는데 법당 까지 모두 탓다. 법당과 금당은 용마루가 이어져 있는데도 보전함을 얻어 불타지 않았고 임진왜란 때도 선당이 탔는데도 용마루가 연하여 있던 금당은 불에 타지 않았다.

∠爇불사를열 ∠甍용마루맹

今 上,已未禪堂又失火,而獲全其見,衝椽浮椽等處延爇.還滅之痕,誠可恠也,或者呵禁之說

금 상이미선당우실화,이획전기견,충연부연등처연열,환멸지흔,성가괴야,혹자가금지설

→ 지금 임금님 기미년(숙종5년 1679)에 선당에서 실화하여 화재가 났는데도 온전함을 얻었고 충연 부연만 끄슬리어 도리어 꺼칠한 흔적뿐이어서 진실로 신기한 일이다. 또 어떤 사람은 신이 막아준 것이라고 말한다.

∠衝椽지붕네귀에 들려지는 서까래 ∠浮椽 본서까래에 이어낸 작은 서까래

無乃近似乎,堂有古像年久傷毁,近年宗師震言重修焉

무내근사호,당유고상년구상훼,근년종사진언중수언

→ 이와 비슷한 일은 없었지 않는가? 금당에는 옛 불상이 오래되어 훼손되어 있는데 요즈음에 종사 진언스님이 새로 고치겠다고 말했다.

*般若寺 반야사

寺在白華山下,石川上流,舊說,新羅無染國師,住尋妙寺,時遣沙彌詢又,驅點神龍,

사재백화산하,석천상류,구설,신라무염국사,주심묘사,시견사미순우,추점신룡

→ 반야사는 백화산 아래 석천 상류에 있다. 옛 날 얘기에 신라의 무염국사가 심묘사에서 주지였는데 심묘사의 사미승 순우를 보내어 신룡의 상태를 살펴보게 하고

驅點 상태를 확인하다

陸其淵,而建此寺,僧居凡二十八房,空殿五,爲湖西巨刹,壬辰之亂蕩然燒盡,僧輩

육기연이건차사,승거범이십팔방,공전오,,위호서거찰임진지란,탕연소진,승배

→ 그 못을 육지로 만들어 반야사를 짓고 무려 28개 방이 스님들 방이요 빈 전각도 다섯채가 되어 호서지방의 큰 절이 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모두 타버리고 스님들은

僅構二房而居焉,過七十年後,至甲辰年,山人瓊演,有志重創,廣募諸緣,事將就緖,

근구이방이거언,과칠십년후,지갑진년,산인경연,유지중창,광모제연,사자취서

→ 겨우 방 2칸을 마련하고 살았다. 70년이 지난 후 갑진년에 이르러 스님 경연이 중창에 뜻을 두고 널리 여러 인연 있는 사람들이 모금을 하여 장차 착공을 하려는데

演也忽焉示寂.檀越工匠旣集,而復散距,寺四面七八里間,載輿大木數千章,棄置

연야홀언시적,단월공장긔집,이복산거,사사면칠팔리간,재여대목수천장,기치

경연이 갑자기 죽어서 이미 모였던 시주한 사람들과 장인들이 모두 흩어지고 절의 사방 7, 8리에 쌓아 놓았던 큰나무 수천장이 버려져서

∠檀越;시주하는일

自朽,見者莫不惜之,未知繼今有踵演,而重者耶

자후,견자막불석지,미지계금유종연,이중창자야

→ 썩어가므로 보는 이들이 애석해 하지 않는이들이 없었다. 지금에 계속 경연(瓊演)의 뒤를 이어 새로 중창할 사람이 있을런지 모르겠다.

∠踵= 뒤를 이어 ∠刱=創비로소,맨처음창

 

* 雙林寺 쌍림사, * 太平寺 태평사는 (지금 없어졌다)

 

* 極樂菴 在金化部曲,荒廢久矣,近年優婆等建數楹

극락암 재김화부곡황폐구의근년우파등건수영

→ 극락암은 김화부곡에 있는데 황폐된지 오래 되었다. 요즈음에 넉넉한 노파가 기둥 몇 개를 세웠다.

 

* 普賢菴 보현암 * 深源菴 심원암 *天德菴 천덕암 * 文殊菴 문수암

* 乾道菴 건도암 (舊在黃岳山) (구재황악산)

→ 보현암 심원암 천덕암 문수암 건도암은 (옛날에 황악산에 있었다)

* 神龍菴 신룡암. (룡은口아래에電이 있는자)

在石橋山,山深谷邃,小菴滿所,下有動石

재석교산,산심곡수,소암만소,하유동석

→ 신룡암은 석교산에 있는데 산이 깊고 골짜기도 깊어 적은 암자가 많다. 아래에 움직이는 돌이 있다.

 

* 登堦庵 등계암

國初,判書徐仲夏之一子,出家,賜號,登堦者結是菴,修鍊,而有井在廚內,大旱大雨

국초,판서서중하지일자,출가,사호,등계자결시암,수련,이유정재주내,대한대우

→ 조선 초에 판서 서중하의 한 아들이 집을 나가 법호를 얻고 계단 위에 암자를 짓고 수련을 하였다. 부엌 안에 샘물이 있는데 큰 가믐에도 큰 장마에도

不增不減,冬溫夏冷,四面石,自然方正,如削成焉,人飮其水則長壽云,高僧智環,結茅其墟

불증불감,동온하냉,사면석,자연방정,여삭성언,인음기수즉장수,운고승지환,결모기허

→ 물이 불어나거나 줄어드는일이 없었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차가웠다. 사면의 돌이 자연스럽게 모가 나서 깎은 것 같았다. 사람들이 그 물을 마시면 장수한다고 하며 道가 높은 지환스님이 뗏집을 짓고 그 터에서

居住十餘年,同居僧海日,言於金曰,是庵也,在花不注之絶頂,老僧自少,徧遊名山,金剛,

거주십여년동거승해일언어김왈시암야재화불읍지절정노승자소편유명산금강

→ 거주한지 십여년에 함께 사는 스님 해일이 김씨에게 말하기를 이 암자는 화불주(산)의 꼭대기에 있다고 했다, 늙은 스님은 두루 명산을 유람했다고 하면서 금강산 智異,妙香,太白,等處,亦多留處,而洞口之邃,遠道場,淸淨,泉水之甘味,未有如是處云,

지리,묘향,태백,등처,역다류처,이동구지수,원도량,청정,천수지감미,미유여시처운

余聞是

여문시

→ 지리산 묘향산 태백산 등이었고, 또한 여러곳에 머물렀는데, 골짜기가 깊고 도량이 멀고 청정하며 샘물이 달고 맛이 좋은 이와 같은 곳은 없었다. 내가 듣고서

∠道場;불교에서 수도하는 곳으로 ‘도량’으로 읽는다

言願一見之,老病如許,安得尋最討幽致身,其間孚悵望雲山,只馳精靈,而己井脉卽玉淵

언원일견지,노병여허,안득심최토유치신,기간부창망운산,지치정령,이기정맥즉옥연

發源處也

발원처야

→ 이에 보기를 원한다고 말하였으나 노병이 허락 할런지 어찌 가장 깊고 그윽한 곳을 찾아 갈수가 있을는지. 그 사이에 슲은 생각이 떠올라 구름 낀 산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을 해 본다. 그 샘의 수맥은 옥연동이 물의 근원처라고 한다.

 

古跡 고적

*金化部曲 김화부곡

在縣東三十八里,舊屬金山,後屬京山, 恭讓二年,來屬本縣

재현동삼십팔리,구속김산,후속경산, 공양이년,내속본현

→ 현의 동쪽 38리에 있다. 옛날에는 김산에 속했었는데 후에 경산에 속했다가 고려 공양왕 2년(1390)에 본 황간현에 속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