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대하소설 '임꺽정'을 쓴 월북작가 벽초 홍명희(1888∼1968)가 1911년 일본 문예지에 일본어로 투고한 단편소설이 발견됐다.
3일 학계에 따르면 한국학자인 하타노 세쓰코(波田野節子) 일본 니가타(新潟)대 명예교수는 1911년 일본 잡지 '문장세계'(文章世界)에 실린 홍명희의 단편 '유서'를 근대서지학회가 발행하는 반년간 학술지 '근대서지' 상반기호에 공개했다.
'유서'는 일본어로 1천자, 한글로는 200자 원고지 13매 정도 분량이다. 화자가 친구에게서 자살을 알리는 편지와 의사를 번복해 자살하지 않겠다는 편지를 잇따라 받고 장난으로 여겨 응수하는 답장을 보낸다는 내용이다.
'문장세계'는 "20세기 초반 거의 모든 문학 관계자가 이 투고란에서 자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는 평을 들을 만큼 당시 일본 문단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하타노 교수는 일본 작가 야마사키 도시오(山崎俊夫)의 작품집에 실린 문장세계 당선작 논평에서 단서를 발견하고 '유서'를 찾았다.
"'유서'의 필자는 홍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주소지가 조선으로 되어 있다…동급생으로 홍명희라는 조선인이 있었는데, 문학을 매우 좋아했다…그도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되어서 서로 헤어진 지가 3년이다. 그래서 이번에 혹시 그의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에게서 받은 편지를 꺼내어 읽어보았지만, 이 '유서'와 비슷한 필치는 못 찾았다."
야마사키는 1907∼1908년 홍명희가 일본에서 다녔던 다이세이(大成) 중학교의 동급생이다. 두 사람은 종교에 관한 논쟁을 벌일 정도로 깊이 교류했다. 야마사키는 '유서'가 홍명희의 작품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홍가인(洪假人)이라는 필명을 쓴 탓에 확신하지는 못했다.
홍명희는 '벽초'(碧初)라는 호 이외에 영국 시인 바이런의 작품 '카인'에서 따온 '가인'(假人 또는 可人)이라는 필명도 썼다.
하타노 교수는 "1900년대 문학에 관심을 가진 조선인 유학생은 '한말의 삼천재'로 불린 최남선, 홍명희, 이광수 세 사람밖에 없었다. 일본의 문예잡지에 게재될 만한 글을 쓸 수 있는 '홍'이라는 조선인은 홍명희 말고는 생각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문장세계는 투고 작품을 주로 싣는 특별호를 1년에 네 차례 냈는데, '유서'는 1911년 4월 '두견호'(杜鵑號)에 게재됐다. 1910년 부친 홍범식이 "죽을지언정 친일을 하지 말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본어로 단편소설을 써 투고한 셈이다.
이에 대해 하타노 교수는 "거꾸로 보면 이것은 일본어로 글을 쓰는 것이 그 무렵에는 친일로 여겨지지 않았음을 시사한다"며 "이 글을 반드시 읽을 누군가에게 보이려고 했다면, 그에 해당하는 사람은 바로 야마사키 도시오"라고 말했다.
근대서지 이번 호에는 월북 국어학자인 정열모(1895∼1967)가 쓴 '동요작법', 아동잡지 '어린이'의 부록으로 발행된 '어린이세상' 여섯 호, 해방 이후 나온 첫 종합예술지인 '문화통신' 발굴 소식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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