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중 민족성악 대표가수…87년 샤먼시 부시장이던 시진핑 만나
시진핑 부주석이 중국 차기 지도자 자리를 예약하면서, 그의 아내이자 중국 '국민가수'인 펑리위안(48)은 차기 '퍼스트레이디'라는 새로운 무대를 준비하게 됐다.
한국인이라면 이미자와 심수봉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듯이, 중국인이라면 펑리위안을 모르는 이가 드물 정도로 유명한 음악인이다. 그는 민요 창법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중국 특유 음악 장르인 민족 성악을 대표하는 가수다. 중국의 주요한 국가적 행사에서 그는 항상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다.
산둥성 농부의 딸인 펑은 18살에 가요계에 데뷔했고, 스무살이던 1982년 발표한 '희망의 들판에 서서'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어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 펑은 87년 9월 푸젠성 샤먼시 부시장이던 시진핑을 친구 집에서 만났다. 이 무렵까지만 해도 시진핑은 무명 정치인이었다.
첫 만남에 대해 그는 시진핑이 시골사람 같고 나이도 들어 보였지만 첫마디를 듣고 마음을 바꿨다고 회고한다. 시진핑은 "성악에는 노래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나요?"라고 진지하게 물었고, 두 사람은 마음이 통했다. 펑은 훗날 "인기가수가 아니라 여자로 나를 대해준 그의 진솔함에 반했기 때문에 사귀게 됐다"고 고백했다.
중국에선 고위층 가족의 동정은 비공개가 원칙이지만, 펑은 결혼 뒤에도 계속 음악활동을 해왔다. 중국음악학원에서 민족 성악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딴 펑은 상하이사범대학 음악학원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중국음악가협회 이사, 전국청년연합 상무위원, 중국문학예술가연합회 위원 등 직함도 많다. 이들 부부의 외동딸인 밍쩌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유학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박민희 특파원
▲ 지금까지 철저히 베일에 쌓여 있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외동딸 시밍쩌(習明澤·23)가 미국에서 유학을 마친 후 귀국해 부친의 이미지 컨설턴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1월 중국공산당 기관지인 런민르바오(人民日報)는 SNS 계정을 통해 시밍쩌와 어머니 펑리위안(彭麗媛)여사가 중국 유명 관광지에서 찍은 사진을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사진출처: 중국 바이두)<사진=뉴시스 |
2013년 타임지에서 선정한 영향력있는인물100인안에
중국영부인 펑리위안 의 이름이 올라있습니다.
그만큼 영향력이 있는 중국영부인 펑리위안은 대단한 여성인것 같습니다.
중국영부인 펑리위안이 말하는 여자에게 해주는 명언이
화재가 되었는데요,
오늘은 중국영부인 펑리위안의 명언과 패션을 소개해 볼께요~~
1.자신한테 투자하세요
여자일생에서 중요한 몇년을 남자를 위해 투자한다면
당신은 그후의 몇십년을 그 남자가 당신의 곁을
떠나지 않게 노력을 해야 하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시간을 자신한테 투자했다면 당신은
진정한 사랑을 얻을수가 있습니다.
사랑도 물징을 기초로한 사치스러운 정신적 향수 입니다.
잊지마세요!!
여자는 최적의 상태일때만이 따르는 남자가 있습니다.
중국영부인 펑리위안의 자기자신한테 투자하라는 명언!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야 겠습니다.
2.독립적인 여자가 되세요
경제도 사업도 남자한테 의지하지않는 독입적인 여자가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사랑은 사람이 행복할수 있도록 내 자심을 희생하는
건아닙니다.
모든걸 남자한테 의거해서 산다면 그 남자는
당신한테 선택의 전부 일지 몰라도 당신은 꼭 그
남자한테 선택의 일부분입니다.
중국영부인 펑리위안의 두번째 명언
독립적인 여자가 되자!
몸만 독립이 아닌 내면의독립..!
중국영부인 펑리위안의 말처럼 멋진 여성이 되기위한
내면의독립을 찾아야겠어요!
3.아무 남자나 만나지 마세요
외롭다고 아무 남자나 만나는건 당신과 그 남자한테
모두 불공평한 일이니 당신이 싫어하는 남자는
거절하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는 떠나세요.
헌신짝도 짝이있는 법이고 당신을 아낄줄 모르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돈 많고 인물좋은 것도 소용없습니다.
외로울때 아무 남자난 만나기 보다 그사이
몸매관리와 피부관리를 해서 좋은 남자가
나타나면 놓치지 않게 하는게 더욱 바람직한 선택입니다.
그리고 만나면 후회없이 사랑하세요
두사람이 만날 확률은 0.0000049입니다
4.책을 보세요
무조건 얼굴이 예뻐야지만 아름다운 여자는아니랍니다.
책을 보아 남들앞에서 지식을 자랑할 필요는 없겠지만
책을 본다면 적어도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는 남자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
나쁜 남자와 좋은 남자를 감별해낼수 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예술이 있지만 책 속에는
인생경험이 경험이 살아 있습니다.
중국영부인 펑리위안이 말하는 똑똑한 여자
외면 만큼 중요한 내면
책읽는 여자가 아름답다.
5.아름다운 여자가 되세요
세상에는 게으른 여자는 있어도 미운 여자는 없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여자는 자기자신을 우아하고 깨끗하게
단장해야 합니다.
여자가 구질구질하고 자기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데
어떤 남자가 그 여자를 사랑하겠습니까?
여자는 항상 자기자신에 신경을 써야합니다.
중국영부인 펑리위안은 정말 지혜로는 여자인것 같아여
항상 자기자신을 돌보며 사랑하는 여자가 되야겠어요.
6.너그러운 여자가 되세요
너그러움은 나약함도 아니도 양보도 아닌 알면서도
밀하지않는 지혜이고 인간의 따스함입니다.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다른사람을 욕하고 질투하는
여자보다 양보할줄 알고 용서할줄알고 배려할줄아는
여자는 모두가 존경합니다.
사람은 항상 자기자신에게 엄격하고 다른 사람한테는
너그러워야 합니다.
중국영부인 펑리위안의 현명한 여자는 너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부드러움이 있는 그런 여자네요!
중국영부인 펑리위안의 패션 우아하네요ㅁ
중국영부인 펑리위안 명언입니다.
진짜 모든 여자의 워너비 중국영부인 펑리위안
한마디 한마디가 중국영부인 펑리위안이 어떤 여자인지
알수있을 것 같아요!
1.자신한테 투자하라
2.독립적인 여자가 되라.
3.아무남자나 만나지 마라.
4.책을 보아라.
5.아름다운 여자다 되어라.
6.너그러운 여자가 되어라.
타고난 미모에 감각적인 패션센스 우아함과
뛰어난 자기 관리
시진핑 첫번째부인/ 커샤오밍
2007년 제17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국가 부주석이 되기 전만 해도 그의 지명도는 유명 가수인 부인 펑리위안보다 떨어졌다. 그가 저장성 서기 시절 부인과 함께 항저우 시내 산책을 나갔을 때 사람들이 자기네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있는 서기 얼굴은 모른 채 유명 인사인 펑리위안에게 몰려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들은 1986년 말, 시진핑이 푸젠성 샤먼시 부시장이었고, 펑리위안은 새롭게 뜨는 신인 가수였을 때 지인의 소개로 처음 만나 이듬해 9월1일 결혼했다. 그런데 펑리위안은 시진핑 주석의 2번째 부인이다.
시진핑 주석은 첫번 째 결혼 생활을 실패했다. 그는 3년 동안 짧은 결혼 생활을 했다가 이혼을 했다. 영국 대사를 지낸 고위 외교관 커화(柯華)의 막내딸인 커샤오밍(柯小明, 다른 이름 커링링(柯玲玲))이 그의 첫번째 아내였다.
시진핑 주석은 칭화대학을 졸업하고 1978년 첫 직장으로 인민해방군의 사령탑인 중앙군사위원회에 배치를 받아 겅뱌오 비서장의 비서를 맡았다. 겅뱌오 비서장은 시진핑 주석 아버지 쉬중쉰(習仲勳)과 전우 사이였다. 중앙군사위 비서 시절이던 1979년 시진핑은 26세때 당시 28세인 커샤오밍과 결혼했다. 그는 베이징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 고향을 따라 산시(陝西)성 출신으로 분류된다. 커샤오밍은 어머니(장밍)가 산시성 출신이고, 아버지 커화는 산시성 옌안(延安)에서 12년 동안 일한 인연이 있었다.
커샤오밍은 1951년생으로, 1953년생인 시진핑보다 2살 연상이었다. 3남3녀의 막내딸이었다. 집안 교육을 잘 받았고 총명해 최고의 신부로 꼽혔다. 이들 부부가 신혼 때는 시부모를 모시고 베이징 아파트에서 함께 살았다. 나중에 시중쉰이 갈수록 중책을 맡게 되면서 최고 지도자였던 덩샤오핑 자택과 가까운 곳으로 거처를 옮기자, 아파트에는 시진핑 부부가 단둘이 살았다. 하지만 이들은 거의 날마다 말다툼을 했다고 이들 사정에 정통한 대학교수가 위키리스크에 전했다.
1982년 결혼 3년만에 커샤오밍은 시진핑과 이혼을 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 당시 커샤오밍 아버지는 영국 주재 대사로 있었다. 시진핑은 1982년 3월, 중앙군사위를 떠나 허베이성 정딩현의 넘버 3인 당위원회 부서기로 부임했다.
이런 상황으로 미뤄볼 때 시진핑은 베이징을 떠나 지방에 가서 밑바닥부터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기로 했고, 이를 견디지 못한 부인 커샤오밍이 영국으로 함께 가지 않으면 이혼을 하자고 요구했다고 정리할 수 있다. 결국 시진핑이 이런 제안을 거부하면서 아내는 영국으로, 남편은 정딩현으로 각각 떠나면서 서로 다른 길로 걸어간 것이다.
커샤오밍의 아버지 커화는 1915년 생으로 광둥성 출신이다. 1935년 베이징대학의 전신인 옌징(燕京)대학 의대에 입학했다. 1937년 그는 10명으로 구성된 옌징대학생 대표단을 이끌고 비밀리에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있던 옌안에 갔다. 중국 최고 학부생들이 공산당 근거지를 자기 발로 찾아간 만큼 공산당 지도부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마오쩌둥 주석이 2번 만났을 정도였다.
항일전쟁이 일어난 뒤 그는 해방군의 전신인 팔로군에 참가했다. 산시성 시안이 공산당 수중에 넘어간 뒤 그는 중국 공산당 시안시 위원회 선전부장, 시안시 위원회 부서기를 지냈다.
1954년 시안을 떠나 외교부 예빈사 사장(우리로 치면 외교부 의전담당관. 중국의 사는 우리의 국으로 보면 된다)을 맡았다. 그는 외교부 4곳의 사장(예빈사, 아프리카사, 서아시아아프리카사, 아주사 사장)을 지냈다. 그리고 4개국 대사(기니, 가나, 필리핀, 영국), 4개국과의 수교 협상(가나. 말리, 필리핀, 태국)을 맡았다. 홍콩 반환 중국, 영국 정상회담에도 참가했다. 1983년 귀국한 뒤 국무원 홍콩 마카오 판공실 고문을 맡으면서 29년 외교부 생활을 마무리했다. 1988년 2선으로 물러나 최고 국정자문기구인 제7기 전국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을 맡았고, 1995년 정식 은퇴했다.
영국에서 발행하는 화교 신문 <영국 교보(英國 僑報)>는 최근호에 시진핑 주석의 첫번째 아내인 커샤오밍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커샤오밍은 현재 런던 사설병원의 고위 관리자로 있으면서 런던대학 아시아 아프리카 의대 객원교수로 있다.
기사에 따르면 커샤오밍은 가치관과 성격이 달라 1982년 이혼을 하고 영국으로 이주를 했다고 밝혔다. 당시 시진핑은 허베이성 정딩현 부서기로 나갔을 때였다고 한다. 커샤오밍이 함께 영국으로 가자고 권유했지만 시진핑은 영국가는 기회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오히려 아내가 서방의 화려함에 너무 빠져 있다고 질책했다. 여러차례 시진핑에게 외국으로 나가서 살자고 권유를 했지만 효과가 없자 두사람은 마침내 헤어지고 말았다.
다음은 커샤오밍과의 일문일답이다.
-시진핑과 이혼을 한 것에 대해 후회를 하는가.
"당시 이혼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시진핑과의 결혼 생활은 아주 짧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거의 공통점이 없었다. 후회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 시진핑은 집녑이 강한 사람이었다. 큰 일을 하고 싶어했다. 아무튼 내가 말하는 것은 거의 듣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혼을 선택한 것이다. 당시 부친(커화 영국 주재 대사)은 이혼을 반대했다. 내가 너무 경솔하다고 여겼다"
-이후 연락을 한 적이 있는가.
"영국에 간 첫 3년 동안 그는 거의 매주 국제전화를 걸어왔다. 당시 중국에서 국제전화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전화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전화를 한 통도 받지 않았다. 이것이 그를 매우 상심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가 이혼을 다시 되돌이키려고 시도한다고 보았다. 아무튼 이혼한 이후 우리는 전화통화나 연락을 한 적은 전혀 없었다"
-시진핑이 중국 최고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나.
"아니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중국 국가주석이 된 것은 아주 기쁘다. 우리가 헤어졌을 때 그는 과장급 간부에 불과했다. 그는 이상이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줄곧 그가 잠재력이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당시 그의 잠재력은 내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당신 마음 속에 시진핑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정직한 사람이다. 내가 그를 중요시 했던 점이다. 하지만 그는 너무 고집이 셌다. 아마 우리가 함께 살던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와서 되돌아보면 그가 한 일이 대부분 옳았다. 그는 이상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하는 일마다 빈틈없이 계획을 세웠고 꾸준하게 밀어붙였다. 나는 그가 좀 더 이상주의자였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여성은 낭만을 아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나. 그러나 시진핑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가 너무 융통성이 없다고 여겼다. 이것은 우리 둘의 성장환경과 교육배경이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이혼한 이후 만난 적은 한번도 없는가.
"그가 국가 부주석일 때 광둥성 선전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 때 나와 언니, 그리고 부친이 선전에 가서 성묘를 했다. 그는 당시 선전에 시찰을 하러 왔다가 (공산당의 원로인) 내 부친을 위문하러 왔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나를 포함해 가족 모두와 일일이 악수를 했다. 막상 만나니 난감했다. 30분 정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저 그가 너무 많이 늙었다는 생각만 들었다"
-시진핑 주석이 10월 영국을 방문한다. 무슨 기대감이 있는가.
"영국 주재 중국 대사관이 (시진핑 주석 영국 방문) 환영 파티에 영국 화교 대표로 나를 초청하겠다고 했다. 그가 중국 주석이 된 이후 영국을 찾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방문은 중국과 영국 두나라에 모두 좋다고 본다. 영국 화교 입장에서 본다면 (시진핑 주석의 영국 방문은) 영광스럽고 기쁜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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