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일본이 250만 명의 조선인들을 산 채로 폭파시킨 대학살 극 (영상정보)

백삼/이한백 2015. 9. 2. 14:05

일본이 250만명의 조선인들을 산 채로 폭파시킨 대학살극 (영상정보)

 


일본이 우키시마 호에서
250만명의 조선인들을 산 채로 폭파시킨
대학살극



일본정부는 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일본의 선박 우키시마 호에 조선인 1만 2천명을 어떻게든 꾸겨넣어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악마는 그렇게 거울을 스치며 그들의 눈을 우연찮게 마주하게 된다.

 

1945년 8월 22일에 출항하여 고향 조선으로 돌아가는 배를 달리며 조선인들은 뜨거운 칼바람을 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칼날같던 바람의 행진곡도 잠시 1945년 8월 24일 오후 5시 20분 쯤 일본 교토부 북부 와카사 만 서쪽 마이즈루 해역에서 우키시마 호가 폭발한다.

 

조선인 1만 2천명이 그 자리에서 수몰된다. 비극은 그렇게 마무리 되는 듯 했다. 일본은 사과를 하기는 커녕 조선인을 고향으로 돌려보내주는 일본천황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기는 커녕 도리어 조선인 자신들을 죽이려 했다는 소문을 이용해 일본을 살인자로 매도했다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이 와중에 일부 아주 극 소수의 생존자들은 고통을 추스릴 세 없이 마이즈루 항구 근처 타이라 해병단 숙소에서 난민생활을 하던 도중 의문의 증기폭발사고까지 당하게 된다. 이로인해 타이라 해병단 생존자는 전원 사망한다.

 

역사학자와 일부 증인들의 주장은 이러하다. 일본인 대부분이 조선인을 잔혹한 멸시와 강제 노동력 착취 그리고 만연한 성적 강간에 대한 야만적 진실을 조선인 노동자들이 본국 조선으로 돌아가 폭로하게 되면 머지않아 서방도 그 사실을 알게 될까 두려워 하여 4000명 수용 가능한 우키시마 호에 1만 2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인구를 태워 폭탄과 함께 가루로 만들 심산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조선인 노동자가 일본의 군사 기밀시설에 대한 어떠한 증거자료도 알리고 싶지 않았던 진심없는 반성이 있었던 결과이기도 하였다. 일본은 역사에 대한 야만적 도전을 서슴치 않고 있다.

 

지금 반성해도 사실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야만적 과제를 좀 더 지켜볼 생각이다. 나름 그들에게 되돌려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