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미록·王+肖尾錄≫의 저자 오희문(吳希文·1539~1613)은 서울 태생이나 그의 일기에는 우리고장 황간의 지명이 자주 등장한다. 그의 외가가 황간이기 때문으로, 그는 성장기를 황간에서 보냈다. 오희문은 1591년(선조 24) 11월 황간의 외가를 방문하고, 또 장흥·성주 등에 있는 노비의 신공도 받을 겸 두 명의 종을 데리고 서울을 떠나 남행길에 올랐다. 그러나 중도에 임진왜란을 당해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피난생활을 해야 했다. 그 과정을 10년 가까이 기록한 일기가 《쇄미록》으로, 1601년에야 귀가할 수 있었다. 연구논문을 보면 그의 일기에는 총 24명의 노비 이름이 등장한다. 이들은 상전의 수족(手足)이 되어 농삿일, 누에치기, 물품교역, 편지와 안부전달, 상전의 나들이길 수행, 밥짓기, 땔감나무 마련 등 집 안팎의 온갖 궂은 일을 다 해야 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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