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역사

허난설헌의 남편 김성립... 의병으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하다

백삼/이한백 2015. 4. 29. 11:43

우연히 허난설헌을   검색했다가 그녀의 남편 김성립이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한 것을 발견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없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해에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과싸우다 전사했으며, 그의 가족들이  전사한 그의 시체를 발견하지 못해서 

그의 의복만으로  장사지냈다고 짤막하게 나왔다.


허난설헌의 남편이라고 하면,  아내의 총명한 기질에 질투를 느껴서 그녀와 멀리하고

술과 기생짓으로 세월을 보낸   망나니로 생각하기 쉽다.

물론, 일부가 맞는 말이지만, 망나니 급은 아닌것 같다.

아내가 죽었던 해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도 잠시  했었고,시로도 어느정도 평판이 있었던 만큼,

허난설헌 남편도 부인보다는 못하겠지만, 자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자식 둘의 죽음,  친정가족의 풍지박살,  시어머님과의 불화로 인한 학대와 질시로

허난설헌, 그녀의 삶은 평탄하지 못했다. 거기에 남편의 사랑을 얻지 못하여 그녀의 삶은  평탄하지 못해

지옥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비극으로 인해서 그녀는 1589년에 홧병으로 인해 시름 시름 앓다가 죽었다.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는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심증에 불과하다.


남편 김성립은  아내의 죽음에 대해서 죄책감은 못 느낀 것 같다.

아내가 죽었던 해에  과거를 보아 합격을 한 후, 남양 홍씨의 여자와 재혼을 한 것을 보면 

알수가 있다.


임진왜란과 허난설헌은 직접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임진왜란 반발하기 3년전에 그녀가 죽었기 때문에 전란에 휘말리지 않았다.

다만, 허난설헌의 오빠인 허성이  1590년에 종사관 신분으로  조선통신사로 들어가 일본을 방문했고,

그녀의 동생 허균은 임진왜란때  함경도로 피난가던 중에 ,  첫번째 마누라와 배속에 있는 아기가  죽었으면,

남편 김성립은  왜병과  싸우다 전사했으니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남편 김성립이 싸우다 전사했기 때문에 후에, 조정에서는 전사한 김성립에게 이조참판이 추증되었고, 덩달아

허난설헌 그녀에게도  정부인으로 추증된 것 보면,어떻게든 임진왜란의 여파가( 이미 죽은 그녀이지만,) 끼친 것이 확실하다

또한 동생인 허균이 전란중에 조선에 파견된 명나라 장수에게 누이의  시를 처음으로  소개된 것을 보면 , 임진왜란이 그녀 사후 명성에도 영향을 준것은 사실이다.



뭐  어째듯,   허난설헌의  뛰어난 기질에 질투를 느껴  그녀를 멀리했던  남편 김성립이  의병으로 참전해서 죽었던  사실은 우리가 생각했던  허난설헌의   남편이 찌질이 (?)이라는 편견을  희석시킬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