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한국 고대사 - (2)요동은 이곳이다

백삼/이한백 2015. 4. 28. 09:32

카론은 한국 고대사 - (1) 고구려 국내성이 이상하다  http://cafe.daum.net/kseriforum/HjpU/2840 를 통해

고구려 국내성의 위치가 집안시로는 설명하기 힘들다는 의견과 국내성 예상 지역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제시한 지역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하기 전에 한가지 검토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동에 대한 것입니다.  

 

요동 동쪽에 고구려가 있었습니다.

이 말을 달리하면, 요동은 고구려 서쪽에 위치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구려 국내성의 위치가 집안시가 될 수 없다면 자연스럽게 요동의 위치도 따라서 움직여야 합니다

만약, 요동이 문제없다면 집안시의 국내성 문제는 더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반면, 요동도 이상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입니다.

 

 

카론은 상식 수준에서 요동을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들인데요.

중국 전국시대의 연나라가 요동군을 설치했다고 합니다. (요동, 연나라에 속함) 

그런데 연나라가 자객을 보내 진시황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였고, 

분노한 진시황이 군대를 보내, 요동까지 쫓아가 마침내 연나라를 멸망시켰다고 합니다.(요동, 진나라에 속함)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시황과 관련된 것으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만리장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실, 만리장성은 명나라때 만든 장성인데요.

중국은 오랫동안 만리장성을 진장성으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진시황 때 설치한 장성 위에 명나라때 다시 장성을 쌓았다는 겁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만리장성은 연나라와 진나라의 국경 지역으로 인식해도 될 것입니다.   

 

 

 

 

 

카론은 만리장성 주변에서 요동의 흔적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중국의 행정구역상 진황도시가 있는데요.

이곳을 설명하는 관광 홍보글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곳이 요동 아니야? 싶을 정도로 많은 단서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1.

진황도시는 예로부터 소금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합니다.

요동은 자염(끓여서 만든 소금)이 유명한 곳인데요. 

자염은 아무곳에서 막 생산되는 것이 아닙니다. 

소금기가 농축된 진흙이나 모래가 필요해 조수 간만의 차가 적어야 하는 등등의 특별한 자연 환경이 요구됩니다.

그래서 진황도시는 소금 산지로서 요동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하고 있습니다.

 

2.

진황도시는 철광산이 많았다고 합니다.   

요동 역시 철관이 있어 철을 생산하고, 거래가 활발했던 곳이므로 역시 요동이 될 수 있는 조건에 해당합니다.

 

3.

진황도시는 만리장성 동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키고 장성을 쌓았다면, 만리장성은 연나라, 진나라 시대의 동쪽 국경에 해당합니다.

연나라의 동쪽에 요동과 조선이 있었으므로 진황도시는 요동이 될 수 있는 조건에 부합합니다. 

 

4.

진황도시에는 진시황이 순행하여 찾았던 갈석산 전설이 있습니다.

갈석산은 국경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진황도시가 진나라의 국경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진황도시가 연나라의 동쪽 국경이라면 요동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5.

진시황의 불로초를 찾기 위해 떠난 마지막 도시가 진황도시입니다.

이 내용도 진황도시가 국경임을 나타내는 단서입니다.  

이는 위 항목과 마찬가지로 요동일 가능성을 제시하는 내용입니다.  

 

가볍게 조사를 했음에도 이 정도 단서가 나왔다면 문헌상으로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살펴본 문헌은 북위의 역도원이 수경이라는 책에 주석을 달아 만든 수경주와 사기, 한서등의 요동,현토군 지리지입니다.

 

대요수 (길이 =1250리, 500km) 

1. 大遼水 出塞外衛白平山

2. 東南( 入塞 過遼東襄平縣西

3. 屈而 西南流 逕襄平縣故城西

4. 又南() 逕遼隧縣故城西 

5. 又東南() 過房縣西 <地理志>房故遼東之屬縣也

6. 又東() 過安市縣西南, 入于海

 

1. 대요수는 장성 밖 위백평산에서 나온다.

2. 장성에 들어와 요동 양평현 서쪽을 통과할 때까지 동남쪽으로 흐른다.

3. 양평현의 옛성 서쪽 지점에서는 꺽이면서(톱니형태) 서남쪽으로 흐른다.  

4. 또 요수현 옛성 서쪽 지점에 이르러서는 남쪽으로 흐른다.

5. 또 방현서쪽을 통과할 때는 동남쪽으로 흐른다. (부연설명, 방현은 옛 요동에 속했던 현이다)

6. 또 안시현 서남을 통과할 때는 동쪽으로 흐른다. 마침내 바다로 들어간다.   

 

소요수 (길이 = 없음) 

1. 又玄토高句麗縣有遼山,小遼水所出,

2. 水出遼山, 西南流逕遼陽縣, 與大梁水

3. 西南()至遼隊縣,入於大遼水也.

 

1. 또 현토 고구려현에 요산이 있는데 소요수가 나오는 곳이다.   

2. 물이 요산에서 나와 요양현에 이르러 서남쪽으로 흐른다.

3. 요대현에 이르러 서남쪽으로 흐르다, 대요수로 들어간다.

 

그림을 그려 보았습니다.

 

 

만리장성 주변에서 위백평산과 요산의 추정되는 산을 찾아 그곳에서 발원하는 강들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위백평산과 요산으로 표시한 곳은 해발 1800미터 산으로, 주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입니다. -> 기준점

 

승덕시 북쪽산에서 발원되는 물길은 바다까지 약 500km 정도로 대요수의 조건을 만족하고 있습니다. 

* 어떤 물줄기를 어떻게 측정하느냐에 따라 450km~540km 내외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참고로, 물줄기는 승덕시를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으로 나뉘어지는데... 

북쪽은 오환을 가로지르며 내려가는 물줄기이고, 남쪽은 요동의 서쪽을 지나 바다로 들어가는 물줄기입니다.

대요수는 남쪽으로 향하는 물줄기에 해당합니다.

 

청룡만족자치현(青龙满族 自治县)의 복잡한 여러 개의 물줄기를 살펴보았는데요. 

그중 하나 만이 하나만이 소요수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북쪽의 물줄기(대량수)와 연결이 되어야 한다.

2. 남쪽의 물줄기(대요수)와도 연결이 되어야 한다. 

3. 요산에서 물줄기가 시작된다.  

4. 요산에 현토군의 속현인 고구려현과 양맥이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

 

량(梁)은 나무[木]를 베어[刃] 물[氵] 위에 걸쳐 놓는 데서 다리, 나아가 들보를 뜻하는 한자입니다.

즉, 쉽게 풀이하면 건너다니는 곳을 의미합니다.

카론은 대량(梁)수, 양(梁)맥을 같은 지역의 지명으로 인식하는 이유는 한자의 뜻 이외에도

고구려 유리명왕때의 기록에 고구려가 양맥을 치고, 곧바로 현토군 고구려현을 공격하는 구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요산, 고구려현, 소요수, 대량수, 양맥이 모두 인접한 지역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두 개의 강을 각각 대요수, 소요수로 비정하였습니다.

그럼 남은 것은 문헌에 등장하는 요동군의 속현에 대한 내용과 비교를 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1, 대요수 총거리  : 비슷함.

2. 장성 입구에서 양평현까지 동남류 ; 일치

3. 양평현 고성이 있는 부분 서남류 : 일치 (굴곡까지 있음)

4. 요수현서쪽에서 남류 : 해당 구역 있음

5. 방현서쪽에서 동남류 : 해당 구역 있음

5. 안시현 서남쪽에서 동류 : 일치

 

1. 소요수 대량수와 연결 : 일치

2. 소요수 대요수와 연결 : 양평에서 연결

3. 요양현에서 서남류 : 해당구역 있음

4. 요대현에서 서남류 : 해당구역 있음

 

* 구글맵 등에서 확대하여 그림에 표시한 지역의 위치를 정해 강의 진행방향을 보시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헌을 검토해 본 결과... 

만리장성 안쪽으로 대요수와 소요수로 추정되는 강들이 진황도시의 경계와 정확히 일치함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의 행정구역은 사람들의 오랜 공동체의 성격이 강해서 고대사 구역을 추정하는데 기본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진황도시의 경우는 그냥 요동 지역이라 해도 될 것 같은데요. 

 

 

다음은 학계에서 설명하는 요동을 살펴보겠습니다.

 

 

 

학계에서는 요동을 삼국지와 사기의 내용을 근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 삼국지 : 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 取地二千餘里, 至滿潘汗爲界, 朝鮮遂弱

연은 이전에 사자로 보냈던 장군 진개가 그곳의 서방을 공격하여, 2천여리의 땅을 취했는데, 만번한을 경계로 하였다.

조선이 약해졌다.

* 사기 흉노열전 : 燕亦築長城, 自造陽至襄平. 置上谷, 漁陽, 右北平, 遼西, 遼東郡 以拒胡

연은 조양부터 양평까지 장성을 쌓았고, 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군을 설치했다. 호를 막기 위해서

 

그런데 설명이 딱 여기까지입니다. 

부연 설명이나 지리지 정보도 없이 두리뭉실 넘어가며 정설이라고만 합니다.

  

카론은 중국에서 제작한 연 5군의 위치 지도를 보면서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을 느꼈는데요.  

가장 큰 이유는 '만리장성 동쪽은 높은 산으로 이루어진 산악지역'이라는 점입니다.

전 세계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지형이 복잡한 지역을 쉽게 점령한 예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진개가 단 한번의 전투에서 승리해 만리장성 동쪽을 모두 점령했다? 라는 말에 의심이 들었던 것입니다. 

 

또한 중국의 고대사 지도를 살펴보면.

중국의 중심지인 장안과 낙양 지역은 정상적인 행정범위를 나타내고 있지만 변방에서는 비정상적으로 매우 넓습니다.  

우북평, 요서, 요동을 봐도 각각 유주에 버금가는 크기를 자랑합니다.

 

설명도 안되고, 이해도 힘드니 할 수 없이 이전 기록들을 살펴보았습니다. 

 

* 사기 소진열전 : 燕東有朝鮮遼東, 北有林胡樓煩, 西有雲中九原,南有呼타易水 地方二千餘裏

연나라 동쪽에 요동과 조선, 북쪽에는 임호와 누번, 서쪽에는 운중과 구원, 남쪽에는 호타와 역수가 있는데, 2천여리의 땅이다.  

 

 

 

위의 그림은 기원전 334년 경의 연의 영역을 나타낸 것입니다.

점선 부분을 쭉 따라가면 약 2천여리가 됩니다. (해안선 제외) 

연나라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다고 느껴질 것입니다. 

 

연나라는 기원전 314년경에 내분이 발생하였고, 제나라의 침입으로 왕이 죽고 제의 속국으로 전락합니다. 

다행히 연소왕이 3년만에 나라를 되찾았고, 악의를 등용하여 제의 70여개 성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진개는 연나라가 가장 잘 나가던 연소왕때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천리를 빼앗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요.

문제는 당시 연나라가 여전히 제나라와 전쟁 중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카론은 연나라와 동호의 전쟁을 아래와 같이 생각합니다. 

* 연과 제의 전쟁이 장기화되자 후방에 있던 동호가 연나라를 압박했다.  

* 연은 진개를 보내 외교적으로 만났고, 허실을 살펴 불시에 기습을 가해 동호를 물러나게 했다. 

 

연나라를 공격하러 왔다가 물러갔다 라고 생각하고 자료를 살펴보았습니다.      

역시나 흥미로운 한자 단어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사기 흉노열전 : 燕有賢將秦開. 爲質於胡, 胡甚信之. 歸而襲破走東胡, 東胡千餘里
연에게 현명한 장수 진개가 있었다.  호의 볼모가 되어. 호의 깊은 신임을 얻었고, 돌아와 동호를 엄습하여 파하여 도망가게 했다. 동호는 천여리를 물러났다.

 

또한 호와 조선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는 문장도 보이더군요. 

 

염철론 : 燕襲走東胡 地千里 度遼東而攻朝鮮

연이 엄습하자 동호는 도망쳐 1000리 밖으로 물러갔다. 요동을 건너 조선을 공격했다.

 

 

오환과 구려가 호에 속한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정리를 하면,

요산 서쪽은 호의 범위에 속하고, 요산 동쪽은 요동이므로  염철론의 글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호를 물리치고(호는 천리밖으로 물러감) 요동을 건너 조선을 공격했다. 

 

 

 

호가 물러갔다와 연이 점령했다의 의미는 차이가 큽니다. 

사기의 기록은 중국의 입장에서 쓴 기록이기 때문에 점령의 의미라면 호가 물러갔다라고 쓰면 안됩니다.

반드시 차지했다, 빼앗다가 되어야 합니다.  

물러갔다의 의미에는 공격하러 왔다가 되돌아간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되돌아갔다면 어디에서 어디로 갔을까요? 

거리를 살펴봤더니 장가구시에서 석림곽릉맹까지가 천리입니다.  

석림은 주석(동검 제조시 필요한 광물질) 숲이란 뜻으로, 임호의 중심지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정리를 다시 하면...

 

진개는 호를 공격하여 천리밖으로 물러나게 했다. 

호는 북쪽에 위치해 있다.

진개는 북쪽이 정리되자 동쪽에 있는 요동을 건너 조선을 공격했다.

연나라는 호가 자신을 공격할 것을 대비하여 국경지역에 장성을 쌓았다.

호와 조선과 관련된 연의 국경은 총 거리 2천리이다.   

 

소진열전에 등장하는 연나라 영역과 만리장성을 겹쳐보면 연나라가 호에게 빼앗은 곳을 알 수 있습니다.

장가구 지역을 빼앗아 상곡군으로 삼았고, 진황도시를 빼앗아 요동군으로 삼았다

이는 한번의 전투로 얻을 수 있는 영토의 규모, 실제로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만리장성을 국경이라 가정하고 정리해 봅니다. 

만리장성의 길이는 요동에서 상곡까지 약 2천리에 해당합니다.

2천리를 세 구역으로 나누면 그림처럼 만, 번, 한 지역이 나오는데요. 

해당 명칭은 한자의 의미를 통해 짐작이 가능한데, 이 내용은 차후에 기회가 되면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내용이 다소 깊게 들어가 조금 어렵고 복잡해졌는데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본 글의 주제는 만리장성을 연의 국경으로 생각했을 때 진황도시가 과연 요동이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맞다 틀리다가 아닌 가능성 여부에 대한 의견을 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한국 고대사의 상당부분이 만리장성 유역에 펼쳐져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