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션>에 들어가기 전에
감독: 롤랑 조페 주연 : 로버트 드니로, 제레미 아이언스, 필립 보스코, 에이단 퀸
내게 있어 영화 <미션>은 몇 가지 장면들과 함께 항시 겹치는 추억의 이미지들이 중첩되는 영화다. 그 중 한 가지는 이 영화가 <킬링필드>와 함께 중·고등학교 시절의 기말고사 마무리를 장식하는 단체영화 관람의 단골 영화라는 사실과 함께 중학 시절 다니던 천주교 성당에서 본당에 커다란 영사막을 설치하고 다른 평신도들과 함께 역시 단체로 관람했던 영화라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가 내 인상에 깊이 각인된 이유는 영화 <미션> 자체가 매우 감동적이었다기 보다는 '정의에 대한 목마름' 혹은 영화의 어느 한 장면이 내 뇌리에 깊이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일이었다. 멀리 전라남도 광주에서 한 친구가 전학을 왔다. 그는 얼굴도 까무잡잡하고 키도 작은 친구였는데 성격이 활달하고 매사에 까불기를 좋아해서 친구들에게 나름의 인기를 갖고 있던 녀석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체육 시간 나는 이 친구에게 문득 예전부터 궁금해하고 있던 것 하나를 물어보았다. 그것은 당시만해도 '광주사태'란 이름이 더 낯익었던 사건이었다. 그 사건이 일어났을 무렵 우리들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그 친구는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더니 그늘진 후미로 나를 잡아끌었다.
광주에 대한 작은 진실이나마 신문이나 방송에서 말한 것과는 다른 진실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깨우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천주교 성당마다 돌아가면서 상영되던 독일 ZDF방송에서 녹화된 광주의 진실을 담은 비디오 테잎을 보게 되었다. 영화 <미션>과 이 광주 비디오를 본 간격이 엇비슷해서였을까? 영화 <미션>에서 과라니족 출신 신부가 백인 군대의 총부리 앞에서 신부복을 벗던 장면과 광주에서 시민들이 계엄군의 총부리 앞에 런닝 셔츠와 팬티 바람으로 서 있던 장면은 항상 오버랩된다.
영화 <미션>의 시대적 배경
앞서 시몬 볼리바르나 살바도르 아옌데 편에서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콜롬버스에 의해 발견된 신대륙 원주민들에 대해서 백인들은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의 정복을 시도했다. 하나는 정치적 정복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 정복이었다. 일례를 들어 코르테즈가 아즈텍을 공격할 때 정복군을 따라나섰던 신부는 금을 세기에 급급해 세례를 원했던 아즈텍의 죽어가는 황제 목떼수마에게 세례조차 주지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당시 가톨릭은 세속화되었고, 동시에 유럽은 새로운 부의 원천을 찾고자 하는 현실적 열망이 강했다.
당시 가톨릭은 종교개혁으로 인해 그 권위와 실질적인 권세에 있어서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그런 종교개혁에 대한 반동으로 가톨릭교회 내부에서 일어난 교회 쇄신운동이 예수회(Jesuit)였다. 종교개혁에 대한 반동이었던 만큼 보수적인 출발점을 가진 예수회였지만 그들의 전교(mission) 방식은 오히려 개혁적이었고, 상당한 융통성을 가진 것들이었다. 그들은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백인들처럼 원주민들을 사람과 비슷한 짐승으로 보지 않았고, 그들도 이성을 가진 인간이자 서구의 백인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순수한 영혼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서 원주민들의 영혼은 진실한 신의 왕국을 세울 수 있는 순진무구한 영토였던 것이다.
로드리고 멘도자 역의 로버트 드니로
하지만 예수회 신부들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원주민들을 전도할 수 있도록 한 데에는 스페인 왕실의 특별한 이해가 그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라틴 아메리카를 정복하고, 개척한 자들에게 스페인 왕실은 특별한 혜택을 주고 있었다. 그것은 엔코미엔다(encomiebda)라는 것이었다. 엔코미엔다는 16세기 스페인령의 공역제도로서 이것을 받은 정복 이주민들은 인디오 원주민을 기독교도로 개종시키고 보호(?)할 의무를 지님과 동시에 이들에게 강제 노역이나 공물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였다. 그리고 이런 혜택을 입는 자들을 일컬어 엔코멘데로(encomendero)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런 혜택을 받고 있던 정복 이주민들의 힘이 점점 커지자 스페인 왕실은 이들을 적절히 견제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그때 예수회 신부들의 전교활동을 적절히 이용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회 신부들은 영화 <미션>에서 볼 수 있듯이 초창기에는 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하는 희생을 치르면서도 점차 원주민들의 영혼에 기독교의 정신을 심어나갔다. 그들은 원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그들의 언어를 배웠고, 원주민 사회의 정치, 문화, 종교, 관습을 이해하려고 들었다. 예수회 신부들은 저마다 뛰어난 의사이자 신부요, 목수이자 음악가, 농부이자 미술가였고, 어부이자 저술가였다. 그들은 단순히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들만을 교화시킨 것이 아니라 라틴 아메리카라는 대륙의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예수회 신분들은 원주민들의 소박한 공동체적 생활에서 원시 기독교 신앙(원시 공산제적인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본체를 발견했고 그들 영혼의 구원을 확신했다.
가브리엘 신부 역의 제레미 아이언스
예수회 신부들은 잔악한 노예상인들로부터 원주민들을 보호하는 자치구역을 만들었고, 많은 도망 노예들이 이곳으로 탈출해왔다. 영화 <미션>의 산 미겔 보호구역의 경우 90%가 이런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이용되었다. 이 공동체는 약간의 개인 재산을 허용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원주민 농업공동체의 성격을 기본으로 하는 공동체적 생산양식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물론 기독교적인 가르침에 반하는 원주민들의 생활양식은 기독교적인 제례로 대체되거나 사라져갔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일부일처제였고, 그런 가족 단위의 구성은 전에 없던 가족의 이기주의를 불러일으켜 때때로 공동체적 삶을 위협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원주민 보호구역이 이렇게 흥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그들이 정복 이주민들과 노예상인들의 집요한 공격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한 곳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예수회의 활동은 정복 이주민들의 반감을 불러왔고, 정복 이주민들은 시시때때로 원주민보호구역을 무력으로 공격하는 일도 잦았다. 실제로 예수회 신부들은 스페인 국왕의 승인 아래 무장을 허가받아 정복 이주민들과 전쟁를 벌인 적도 있었다. 1641년 약 4,200여명의 원주민들이 약 4,200여명의 투피족으로 거느린 450여명의 정복 이주민(주로 노예상인들이 중심이 된)들과 전쟁을 벌여 자신들의 보호구역을 지키기도 했다.
영화 <미션>은 바로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1750년 1월 13일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의 영토를 교환하는 국경조약이 체결되고 스페인은 브라질로부터 라플라타 강 북부의 산 사크라멘토 지역을 받는 대가로, 약 30만 명의 과라니 원주민들이 살고 있는 우루과이 강 동쪽의 넓은 지역을 포르투갈에 넘겨주었다. 이 조약으로 인해 안심하고 살 수 있었던 보호구역을 포르투갈에게 넘겨주고 쫓겨나거나 노예로 살아야 했다. 결국 이에 항의하는 원주민들과 예수회 신부들은 두 차례(1754년과 1756년)에 걸친 포르투갈과 스페인 군대의 무력 공격에 학살당하고 만다. 그리고 얼마 후에 스페인에서 예수회 추방이 시작되었다.
무저항을 택한 가브리엘 신부와 로드리고 신부는 모두 죽고 만다.
영화 <미션>의 줄거리
영화가 시작되면 거대한 폭포의 상류로부터 한 명의 사제가 십자가에 묶인 채 떠내려온다. 그는 잠시 후 거대한 폭포의 물줄기 속으로 사라지고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 신부는 호전적인 과라니족 원주민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본인이 직접 갈 것을 다짐한다.(이때 그를 배웅하기 위해 따라오는 신부가 영화배우 리암 니슨이다. 나중까지 상당히 비중있는 역으로 나오므로 다시 보시게 되거든 주목해 볼 것.)그는 험준한 계곡과 절벽을 지나 원주민 지역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자신의 가방에서 오보에를 꺼내 연주를 시작한다. 그는 음악을 통해 원주민들에게 다가가고 가브리엘 신부에게 마음을 연 원주민들은 그를 믿고 신뢰하기 시작한다. 이때 노예사냥꾼인 로드리고 멘도자(로버트 드니로)의 습격을 받아 몇 명의 과라니 원주민들이 납치당하고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가브리엘 신부와 용병출신의 노예상인 로드리고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된다.
다시 칼을 잡은 신부. 로드리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 로드리고는 사냥해온 과라니족 원주민을 다른 상인에게 넘기고 자신은 사랑하는 여인과 동생 펠리페가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돌아온 로드리고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으로부터 사실은 자신의 동생을 사랑하고 있다는 고백을 듣게 되고, 이성을 잃을 정도의 충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동생을 우여곡절 끝에 숨지게 만든다. 하지만 동생을 너무나 사랑했던 로드리고는 그 자책감에 예수회 수도원에서 곡기를 끊음으로써 죽으려고 한다. 이때 원주민 지역으로부터 돌아온 가브리엘 신부는 원장 신부에게 이런 이야기를 전해 듣고 로드리고를 설득하여 원주민 마을로 데려가게 된다. 로드리고는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의미에서 그가 용병 생활을 하면서 착용했던 무거운 갑옷과 칼 등을 등에 짊어지고 고행의 행군을 시작한다. 드디어 도착한 과라니족 마을에서 그는 자신이 학대하고 노예로 사냥했던 마을 사람들에게 용서와 사랑을 받으며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결국 예수회 신부의 일원이 된다.
노예상인 로드리고는 이곳에서 사랑의 마음에 눈뜨게 되고, 마을 사람들과 융화되어 훌륭한 신부로서의 삶을 살고자 하지만 앞서 말한 스페인과 포르투갈 사이의 조약은 그가 사랑하는 원주민들을 다시 노예로 살아갈 것을 강요하게 만든다. 이때 가브리엘 신부는 신의 대리자로서 그들의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기도와 무저항을, 로드리고 신부는 그들에게 현실에서의 자유와 믿음을 주기 위해 저항을 택한다. 마을의 한 원주민 소년은 로드리고가 예전에 버렸던 칼을 가져다주며 그가 원주민들을 위해 싸워주길 무언(無言)으로 강변한다. 로드리고가 무력으로 저항할 것을 결심하고서 가브리엘에게 축복해줄 것을 부탁하며 말하는 장면이 또 한 기억에 남는다.
로드리고 신부 : 신부님! 축복을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Rodrogo Mendoza : Father, I've come to ask you to bless me.
가브리엘 신부 : 아니오. 만약 그대가 옳다면 신의 축복은 필요없을 것이오. 그리고 만약 틀렸다면 나의 축복은 소용이 없소. 만약 무력이 옳은 것이라면 이 세상에 사랑이 설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난 이 세상에서 살아갈 기력을 얻지 못할 것이오. 로드리고, 나는 당신에게 축복을 해줄 수 없소.
Father Gabriel : No. If you're right, you'll have God's blessing. If you're wrong, my blessing won't mean anything.... If might is true, then love has no place in the world. It may be so, it may be so, but I don't have the strength to live in a world like that, Rodrigo. I can't bless you. Rodrigo...
교황청 역시 세속의 권력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브리엘 신부는 로드리고에게 자신이 걸고 있던 십자가를 풀어줌으로써 그에게 무언의 의지를 전한다. 이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양심이 이르는 길로 발길을 옮겼다. 그것이 비록 방법적으로는 서로 정반대의 길이었으나 결국 하나의 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결국 사랑과 믿음을 위해 십자가를 들었던(영화 속에서는 십자가가 아니었음) 가브리엘 신부도, 총과 칼을 들었던 로드리고 신부도 모두 죽고 만다. 그에 앞서 이야기했던 과라니족 출신 신부의 옷벗는 장면과 원주민 아기들이 비오는 맨 땅에 놓여지는 장면들 역시 인상깊게 본 장면이었다.
중재라기 보다는 예수회 신부들을 설득하기 위해 교황청에서 파견되었던 주교는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쓴다. "표면적으로는 신부 몇몇과 과라니족의 멸종으로 끝났습니다만, 죽은 것은 저 자신이고 저들은 영원히 살아남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말입니다." 살아남은 과라니족 아이들이 줄 끊어진 바이올린을 들고 더 깊은 정글로 숨어들며 영화는 다음과 같은 자막이 올라간다. '빛이 어둠을 비춰도, 어둠이 이를 깨닫지 못하더라'라는 요한복음 1장의 말씀으로 끝을 맺는다.
영화 <미션>이 남긴 것
영화 <멤피스 벨>을 이야기하면서 데이비드 퍼트냄이라는 영화 제작자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 영화 <미션> 역시 데이비드 퍼트냄이 제작을 맡은 영화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영화의 일반적인 해피 엔딩으로부터 상당히 멀어진 영화가 되었고,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시나리오 작가가 각본을 쓴 영화답게 제국주의의 본질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처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감독 롤랑 조페 역시 그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주는 등 영화적인 완성도면에서는 깐느영화제 그랑프리 아니라 그보다 더한 상을 받았다고 해도 인정할 수 없는 면이 있다.
그외에도 물론 이 영화는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또한 이 영화는 이들 가톨릭 신부들이 라틴 아메리카의 정신 세계를 어떻게 정복해 나갔는지, 양극화된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톨릭 교회의 두 얼굴에 대해 명확하게 말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들은 이 영화를 보며 진정한 크리스찬이란 폭력적인 민중학살의 살인마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어떤 형태의 저항과 삶의 방식을 택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도록 만들었다.
그런 고민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디트리히 본회퍼로부터 하비 콕스, 구스타보 구티에레즈를 읽게 만들었고, 그후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이 진정 사람을 미워해 본 적이 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행위란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참고 도서 & 참고사이트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사상/ 이성형 편/ 까치/ 1999년 -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서 까치 출판사에서 여러 좋은 출판물을 많이 내고 있다. 이 책도 그 중 하나이다. 국내의 라틴 아메리카 학회 소속 학자들이 각자 논문을 만들어 라틴 아메리카의 과거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인물들을 통해 그들의 역사와 사상을 살펴볼 수 있도록 꾸미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를 찾아서/ 곽재성, 우석균 지음/ 민음사/ 2000년 - 위의 책이 약간의 사전 지식을 필요로 하는 책이라면 이 책은 라틴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입문서 구실을 할 수 있는 책이다.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간략한 통사와 더불어 문화, 예술, 환경 등에 대해서 곽재성, 우석균 두 명의 필자가 재미있게 잘 다루고 있다. 게다가 이 책의 한 가지 장점을 더 추가하자면 인터넷 시대답게 관련된 사이트들을 두루 소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점을 꼽으라면 적은 분량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만큼 대충대충이 좀 눈에 띄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옥에 티인 셈이고, 라틴 아메리카 읽기를 시작하는 분들은 이 책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무난하리란 생각이다.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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