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역사

경찰 압수한 지석(誌石) 550여점 조선시대 '타임캡슐'

백삼/이한백 2015. 2. 16. 12:45
전문가 "제작기법.형태 다양 …문화재적 가치 커"

【서울=뉴시스】강지혜 기자 = 경찰이 28일 사립박물관장으로부터 압수한 지석(誌石) 558점은 제작 시기가 광범위해 조선시대 사회상을 연구할 수 있는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고 평가된다.

지석은 묘에 묻힌 사람의 이름과 생년월일, 일대기, 조상·자손 등을 나무나 돌에 기록해 무덤에 묻는 기록물이다. 묘지석이나 묘지명이라고도 불린다.

동양권 나라에서 지석의 역사는 1700여년 전 매장 문화와 함께 시작됐다. 이후 유교 문화가 지배했던 조선시대 들어 활발히 제작됐다.

지석은 당시 사대부 이상의 위세 있는 가문에서만 만들 수 있었다. 조상의 덕성을 높이는 내용으로 구성된 묘지문은 당시 명문장가에 의뢰하는 것이 관례였다.

지석에는 매장자의 일대기가 기록돼 있어 당시 사회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이번에 발견된 지석들은 조선 초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형태와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 이제까지 발견된 조선시대 지석 중 2번째로 오래된 안복초의 지석(1457년 제작) 2점도 발견됐다.

조선시대 사대부 김극뉴의 지석에서 유자광이 직접 쓴 문장과 필체도 찾게 됐다. 연산군때 사림을 일으켰다며 죄인으로 몰린 유자광의 문집은 완전히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 제11대 왕 중종(中宗)의 손자인 풍산군 이종린의 분묘에서 나온 지석과 유명한 조선시대 실학자 이수광이 지은 묘지도 이번에 발견됐다.

지석 내용 중에는 18세기 노론과 소론의 대립에서 숨진 사람의 입장을 변론한 것도 있어 당시 정치사의 이면을 엿볼 수 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문화재청과 공조해 박물관장 권모(73)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도난된 불교문화재가 경매 시장에 나왔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지난 6월 권씨의 개인수장고를 압수수색하다가 3000여점의 문화재 중 지석을 무더기로 발견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조선시대의 거시·미시사를 연구할 수 있는 '타임 캡슐'이라고 평가했다.

유승민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은 "유명한 사람의 지석은 물론 역사에서 잊혀진 사람의 것도 있어 역사를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거시·미시사적으로 접근할 때 아주 중요한 사료가 된다"고 말했다.

유 위원은 "지석은 1700여년의 역사를 지니지만 유교 의식이 투철한 조선시대에 와서 활성화됐다"며 "제작 시기의 스펙트럼이 넓어 조선시대 지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통시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석은 무덤에 묻는 것이기 때문에 (후손이) 의도적으로 꺼낸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며 "발견된 지석은 모두 도굴됐다고 볼 수 있지만, 밖으로 나온 이상 큰 가치가 있는 역사·문화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동철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은 지석의 제작 기법과 형태도 연구할 가치가 높다고 평가했다.

장 위원은 "지석은 글자를 파내는 '음각'이나 표면에 안료로 글씨를 쓰는 '철화', '청화' 기법을 따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안복초 지석의 경우 음각과 철화 안료를 함께 사용하는 매우 드문 기법을 썼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사각형 형태인 장방형이 대부분이지만 벼루형과 사발형 등 보기 어려운 형태의 지석도 발견됐다"며 "15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변화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고 밝혔다.

또 "전국 국·공립박물관에서 보관 중인 지석을 모아 전시를 연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양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