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멸망 후 부흥운동을 했던 흑치 상지(黑齒常之) 장군의 봉작지인 흑치(黑齒)는 어디일까?
이에 대해 어떤 학자는 지금의 필리핀 지역이나 베트남 지역으로 보기도 하고, 충남 예산군 덕산(德山)면 지역으로 보기도 한다.
설사 동남아 지역과 교류가 있었다고 하더라고 이 지역을 지배하고 봉작까지 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필자는 그보다는 흑치(黑齒)가 바로 지금의 일본(日本)이라고 본다.
숙종조 문신인 미수[眉叟] 허목[許穆]은 자신의 문집인 《미수기언(眉叟記言)》36권 <동사[東事]> '흑치열전[黑齒列傳]' 에서 흑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흑치(黑齒)란 동해의 오랑캐 나라다. 창해(滄海) 동쪽 발해(渤海)의 밖에 있으며, 일본왜(日本倭)라고도 한다. 진시황(秦始皇) 때 서불(徐巿)이라는 자가 동남동녀(童男童女) 5천 명을 데리고 바다로 가서 삼신산(三神山)의 불사약을 구하겠다고 청하였는데, 이들이 흑치의 별종이 되었다.[黑齒者。東海蠻夷之國。在滄海東浡海外。亦曰日本之倭。秦始皇時。有徐巿者。請與童男童女五千人。入海求三神山不死藥。爲黑齒別種。]"
또 이들의 풍속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들의 풍속은 귀신을 믿고 부도(浮屠)를 섬겼으며, 남자는 수염과 머리카락을 깎고 부인(婦人)은 머리를 늘어뜨렸으며, 남녀 모두 긴 겉옷을 입는다. 귀인(貴人)은 이빨에 검은 칠을 하며 부인도 그랬다. 그래서 검은 이빨[黑齒]의 오랑캐라 하였다. 맨발과 민둥머리에 무릎으로 걸어 배를 땅에 대고 기는 것이 공손한 것이며, 배례하는 법이 없다.[其俗信鬼神。事浮屠。男子削鬚髮。婦人委髮。男女皆服襖子。貴人漆齒。婦人亦漆齒。故曰黑齒之夷。跣足赤頂。膝行匍匐爲恭。無拜禮。]"
더구나 흑치상지의 둘째 사위가 왜인인 모노노베 슌(物部珣)인 것이 더욱 설득력을 높인다.
현재 중국 산시성(山西省) 소재 고대 불교석굴 유적 중 하나인 천룡산석굴(天龍山石窟)은
동위(東魏) 시대 이후 오대(五代)에 이르는 기간에 조성된 석굴 25개가 있다.
이 중 제21호 석굴은 '순(珣)장군'이라는 사람과 그의 흑치부인(黑齒夫人)이 당나라 경룡(景龍) 원년(707)에 죽은 임금과 살아있는 인척들을 봉안하고자 삼세불상(三世佛像)과 여러 성현(賢聖)을 삼가 조성한 곳이라는 '대당물부장군공덕기'(大唐物部將軍功德記)라는 금석문이 남아있다.
본래 모노노베(物部)씨는 소가(蘇我)씨와 함께 일본 야마또(大和)시대 유력 호족(豪族) 집단의 하나였는데, 소가씨가 불교를 옹호하는 숭불론자(崇佛論者)였던 데 반해 모노노베씨는 배척하는 배불론자(排佛論者)였다.
흑치상지의 사위가 한반도계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것으로도 흑치 지역은 지금의 일본을 가리키는 것이 확실하다고 본다.
그럼 지금부터 중국 사서(史書)의 흑치국 기록을 통해 좀더 심도있는 고찰을 해보도록 하자.
黑齒國
自女王國東度海千餘里至拘奴國, 雖皆倭種, 而不屬女王. 自女王國南四千餘里至朱儒國, 人長三四尺. 自朱儒東南行船一年, 至裸國·黑齒國, 使驛所傳, 極於此矣.
출전 : 後漢書 卷八十五 東夷列傳 第七十五 倭
흑치국(黑齒國)
여왕국(女王國)에서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 1,000여리를 가면 구노국(拘奴國)에 이른다. 비록 모두 왜종(倭種 : 일본민족)이지만 여왕국에 속하진 않는다.
여왕국에서 남쪽으로 4,000여리를 가면 주유국(朱儒國 : 난장이 나라)에 이르는데, 사람들의 신장이 3,4척에 불과하다.
주유국으로부터 동남쪽으로 배를 이용해서 1년을 가면 나국(裸國), 흑치국(黑齒國)에 이르는데, 역마를 이용해 소식을 전하며, 이곳에서 극변에 해당된다.
黑齒國
女王國東渡海千餘里, 復有國, 皆倭種. 又有侏儒國在其南, 人長三四尺, 去女王四千餘里. 又有裸國·黑齒國復在其東南, 船行一年可至. 參問倭地, 絶在海中洲島之上, 或絶或連, 周旋可五千餘里.
출 전 : 三國志 卷三十 魏書 三十 烏丸鮮卑東夷傳 第三十 倭
黑齒國
其南有侏儒國, 人長三四尺. 又南黑齒國·裸國, 去倭四千餘里, 船行可一年至. 又西南萬里有海人, 身黑眼白, 裸而醜. 其肉美, 行者或射而食之.
출 전 : 梁書 卷五十四 列傳 第四十八 諸夷 倭
黑齒國
其南有侏儒國, 人長四尺. 又南有黑齒國·裸國, 去倭四千餘里, 船行可一年至. 又西南萬里有海人, 身黑眼白, 裸而醜, 其肉美, 行者或射而食之.
출 전 : 南史 卷七十九 列傳 第六十九 夷貊 下 倭國
黑齒國
○ 倭 自後漢通焉, 在帶方東南大海中, 依山島爲居, 凡百餘國.
…………………………………중 략 ………………………………
又千餘里至侏儒國, 人長三四尺. 自侏儒東南行船行一年至裸國·黑齒國, 使驛所傳, 極於此矣.
倭一名日本, 自云國在日邊, 故以爲稱.
출 전 : 通典 卷一百八十五 邊防 一 東夷 上
黑齒國
自侏儒東行一年, 至裸國·黑齒國, 使驛所傳極於此矣. 又按東夷記云: 倭又名日本, 自云國在日邊, 故以爲稱, 蓋惡舊名也.
출 전 : 太平寰宇記 卷一百七十四 四夷三 東夷三 倭國
黑齒國
漢譯官令 譯使 九譯令
○ 漢譯官令 譯使 九譯令
【後東夷傳】自女王國東度海千餘里, 至枸奴國, 雖皆倭種, 而不屬女王國. 南四千餘里, 至朱儒國, 人長三四尺. 自朱儒東南行船一年, 至裸國·黑齒國, 使譯所傳, 極於此矣.
太史公曰:「海外殊俗, 重譯款塞, 請來獻見.」
司馬相如曰:「康居·西域, 重譯請朝, 稽首來享.」
출 전 : 玉海 卷一百五十二 朝貢 外夷來朝 內附
위의 중국 사서의 흑치국 기록을 보면 모두가 동이전(東夷傳) 왜국(倭國)조의 기록으로 일본 관련 기록이다.
또한 위의 <통전(通典)>의 기록을 보면 왜국에는 모두 100여개국이 있고, 흑치국 또한 그 중의 한 나라임을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된 것은 "주유국(朱儒國)으로부터 동남쪽으로 배를 이용해서 1년을 가면 나국(裸國), 흑치국(黑齒國)에 이르는데, 역마를 이용해 소식을 전하며, 이곳에서 극변에 해당된다."는 기록이다.
그런데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 흑치국을 "배를 이용해 1년을 간다"는 기록만을 확대해석하여 필리핀이나 대만, 혹은 베트남, 중국 남방지역으로 잘못 보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왜냐하면 중국 4방에는 모두 4종류의 이민족이 있는데 동쪽으로 동이족(東夷族), 서쪽에는 서융(西戎), 남쪽에는 남만(南蠻), 북쪽에는 북적(北狄)이 있다. 이 가운데, 우리 나라와 일본은 동이에 속하고, 동남아지역은 남만에 속하기 때문이다.
원문에서 나국(裸國)은 훈도시를 차고 웃통을 벗고 생활하는 왜인을 묘사한 듯하고, 100여개 왜국의 한 나라인 주유국(朱儒國) 사람들의 키가 겨우 3,4척에 불과하다는 것도 고대의 키 작은 민족인 일본인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왜국(倭國 : 일본)의 왜(倭)자는 난장이 왜자이다.
앞으로 좀 더 이방면의 진전된 연구가 있기를 고대해 본다.
[주] 위의 원문 중 黑齒國 제목은 <동이전(東夷傳)> "왜국(倭國)"조에는 본문만 있고 따로 제목은 없는 것으로 본고에서 편의를 위해 필자가 임의로 붙인 것임.
글쓴이 박상진(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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