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역사

[역사의 향기] 애절양(哀切陽)

백삼/이한백 2015. 2. 9. 11:42

1803년(순조 3년) 가을. 강진 관아에 행색이 초라한 한 여인이 피로 물든 작은 천을 들고 왔다. 그 여인은 관아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미친 듯 소리치며 피로 물든 작은 천을 마당에 던졌다. 그 순간 작은 살점 하나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그녀 남편의 양물(陽物)이었다. 

여인의 기구한 사연은 이렇다. 그녀는 얼마 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상중이었는데 공교롭게도 3일 전에 아들을 낳게 됐다. 그런데 마을 관리들이 남편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시아버지, 갓 태어난 아들에게도 세금인 군포(軍布)를 부과했다. 당시 군적에 오른 사람은 병역을 대신해 군포를 내야 했는데, 관리들이 세금을 많이 거둬들이기 위해 이미 죽은 사람과 갓난아이의 이름까지 군적에 올린 것이다. 

이에 대해 그녀의 남편은 거칠게 항의했지만 관리들은 들은 체도 안 하며 오히려 세금 대신 마구간의 소를 끌고 가버렸다. 그러자 남편은 자신의 양물을 바라보고는 아내에게 “내가 이것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것 같소. 이제 나는 더 이상 남자가 아니니 나에게 군포를 부과하지 말라고 전하시오”라며 칼을 들고 자신의 양물을 잘라 버렸다. 그리고 여인은 이것을 수습해 관아로 찾아가 “출정 나간 지아비가 돌아오지 못하는 일은 있다 해도 사내가 (세금 때문에)자기 양물을 잘랐단 소리를 들어본 적 없다”며 목 놓아 울었다. 

강진 유배 기간 중 이 일을 전해들은 다산 정약용은 “부호들은 일 년 내내 풍류나 즐기면서 쌀 한 톨, 비단 한 치 바치는 일 없는데 똑같은 백성들에 대해 왜 그리도 차별일까?”라며 여인의 슬픈 이야기를 ‘애절양(哀切陽)’이란 시로 남겼다. 

최근 담뱃세 인상에 이어 봉급자들의 연말정산 폭탄이 이어지고, 지난해 소득세법 개정 당시부터 증세를 목적으로 개정안이 설계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의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당정이 뒤늦게 수습 대책을 발표했지만 국민의 분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일단 세금을 올린다는 분위기를 형성한 뒤 여론의 추이를 봐가며 세금을 올리거나 보완 대책을 내놓는 작금의 조세 정책은 조선시대에서 한 치도 발전하지 못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