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역사

이순신과 전시작전권

백삼/이한백 2015. 2. 9. 11:43

1598년(선조 31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죽었다는 소식이 조선에 전해졌다. 이순신은 이를 계기로 조선 땅에 남은 단 한 명의 왜군이라도 일본으로 살아 건너가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순신의 이런 계획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당시 선조가 명나라에 전시작전권을 넘겼기 때문에 명 군대가 끊임없이 조선 수군을 훼방했던 것이다. 실제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대가 일본으로 돌아가려다 조선 군대의 공격으로 곤경에 처하게 되자 명나라 수군 대장 진린(陳璘)은 일본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고는 통신선 1척을 빠져나가게 도와줬다. 이후 자국 수군의 어려움을 알게 된 일본은 500여 척의 함대를 끌고 노량으로 진격해 당시 200여 척밖에 없던 조명연합군을 위기에 빠뜨린다. 이뿐만이 아니다. 진린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선조 앞에서 조선의 수령을 구타하는 무례한 짓을 벌여도 임금은 물론 조선의 신하들 모두 잠자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 참담함을 느낀 이순신은 진린과의 담판을 통해 노량해전의 작전권을 되찾아왔고, 그가 조명연합군을 지휘하게 된다. 그리고 이순신은 선제 공격만이 승리할 수 있다고 판단, 수적으로 열세였던 연합군의 함대를 지휘해 노량으로 들어온 일본 수군을 기습했고, 조선의 마지막 해전을 승리로 이끈다. 이는 자국의 전시작전권이 과연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제46차 안보협의회`에서 전시작전권 반환이 무기한 연기됐다는 소식이 전해져 많은 국민을 실망에 빠뜨렸다. 2006년 우리 정부가 미국을 설득해 2012년 4월 반환하기로 설득한 전시작전권을 준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이명박정부 때 2015년 12월로 연기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시절 이를 지키겠다고 공언했는데, 이제 와서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은 것이다. 당리당략을 떠나 정부가 국민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전작권을 남의 나라에 넘기고 말로만 `자주국방`을 외치는 것은 주권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