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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맨’ CEO들 빚더미 안기고 퇴장하다

백삼/이한백 2014. 12. 17. 10:55

지난 정권 5년간 공기업 부채 244조원 증가…4대강 사업 등에 돈 쏟아부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 493조원에 달하는 공공기관들의 부채는 2011년부터 정부의 부채 규모를 뛰어넘었다. 1000조원에 달하는 가계 부채와 함께 크게 늘어난 공공기관들의 부채는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또 다른 뇌관이 되었다.

 

공공기관들의 빚은 이명박(MB) 정권 때 급증했다. MB 정권에서 공공기관의 부채는 244조원이나 늘어났다. 기획재정부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부채를 보증하는 12개 손실 보전 공공기관의 부채는 2008년 132조5030억원에서 지난해 270조1069억원으로 96.3% 증가했다. 최근 5년간 30개 공기업이 지불한 이자 비용은 27조7866억원, 연평균 5조5573억원이 이자로 나간 셈이다.

 

공공기관 가운데 12개의 부채 위험 기관은 한국가스공사·한국석유공사·한국전력공사·대한석탄공사·한국광물자원공사·한국도로공사·한국수자원공사·한국철도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 등 9개 공기업과 한국철도시설공단·예금보험공사·한국장학재단 등 3개 준정부기관이다. 이들 12개 기관의 부채가 412조3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기준으로 이들 12개 기관의 부채 규모는 295개 전체 공공기관 부채의 83.6%에 해당한다. 또 최근 5년간 금융 부채 증가분의 92.3%를 차지함으로써 공공기관 부채의 거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9년 10월7일 성남시 분당구한국토지주택공사 출범식에 참석해 현판을 제막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 연합뉴스

원금 상환 불능 상태에 빠진 공공기관도

 

빚의 규모도 문제지만 질이 좋지 않다. 매년 원리금을 갚아나가야 하는 부채가 전체 빚의 75%를 넘어선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곳은 석탄공사·철도공사 등 5곳에 이른다. 원금 상환 불능 상태에 빠진 곳도 있다.

 

MB 정권 때 급증한 공기업 빚에 대한 경고는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11월25일 펴낸 ‘2013~2016 공공기관 중·장기 재무관리계획 평가’ 보고서도 그중 하나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 보고서에서 공공기관 부채 관련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규모 공공기관 부채를 줄이기 위한 방안이 실효성이 미흡하고 재무 건전성이 오히려 악화될 가능성이 크므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중·장기 재무관리계획 작성 대상에서 제외된 금융 공공기관의 재무 건전성 관리 방안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수출입은행 등 5개 금융 공공기관의 2012년 부채는 397조9000억원으로 자산 건전성 차원에서 이들 기관에 대해 별도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공공기관 가운데 부채가 가장 많은 곳은 토지주택공사(LH)다. 전체 공공기관 총부채의 23.5%에 해당하는 138조1221억원의 빚을 지고 있다. LH의 부채는 최근 5년간 52조2663억원이 늘어났는데, 이것은 2008년에 비해 60.9% 급증한 규모다. 이어 한국전력 95조886억원(총부채 대비 16.2%), 정책금융공사 49조2402억원(8.4%), 수출입은행 46조226억원(7.8%), 예금보험공사 45조8855억원(7.8%) 순이다.

 

재무 건전성을 나타내는 부채 비율에서는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이 1292.6%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부채 비율은 부채를 자본으로 나눈 것이다. 중진공의 경우 부채(14조9639억원)가 자본(1조1577억원)보다 13배나 많다. 이어 한국장학재단 1086.2%, 철도시설공단 726.3%, LH 466.0%, 가스공사 385.4% 순으로 부채 비율이 높았다. 빚이 많으면 이자도 많은 법이다. 한전은 최근 5년간 지출한 이자 비용이 9조632억원에 달한다. 이어 도로공사 4조6476억원, LH 4조2045억원, 가스공사 3조3388억원, 철도공사 2조2924억원 순이다. 이들 5개 공기업의 이자 비용 규모가 전체 공기업 이자 비용의 84.7%에 달한다.

 

자녀 입학 축하금·가족 의료비 등 무차별 지원

덩달아 이자 비용 증가율도 가팔랐다. 특히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이자 비용 증가율이 2102.8%로 가장 높았다. 석유공사 1375.5%, 수자원공사 1171.7%, 인천항만공사 750%,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490.7% 등 기하급수로 늘어났다.

부채 규모뿐만 아니라 증가하는 속도가 빠른 것도 문제다. 자산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부채의 증가 속도가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은 공공기관의 재무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졌음을 뜻한다. 또한 공공기관 부채는 결국 국가와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국가 신용도, 정권의 존립 기반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지난 12월11일 “공공기관 부채 문제는 심각한 상태에 있고, 한시라도 해결을 미뤄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한 것은 이런 위험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현 부총리는 “파티는 끝났고 우리 모두 고지서에 답해야 할 시간이다. 고지서는 누구와 함께 먹었고 누가 그 식당에 가라고 했는지를 따져서 발급되지 않는다”며 공공기관 부채 증가의 원인을 정부로 돌리는 것에 대해 반박했다. 그는 부채 관리에 실패한 기관장을 문책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기업들에게 부채 비율을 현재 220%에서 4년 안에 200%로 낮추라고 주문했다.

 

그렇다면 MB 정권 시절 공공기관의 빚이 급증한 원인은 무엇일까. 방만한 경영과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는 새로울 것도 없이 공기업과 관련해 늘 제기됐던 문제다. 12월11일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발표하며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 실태를 공개했다. 크게 △과다 지원 △경조금 지원 △과다한 특별 휴가 △과다한 퇴직금 △느슨한 복무 형태 △고용 세습 △경영·인사권 침해 등 8개 항목으로 분류했다.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보훈복지공단은 임직원들에게 자녀의 입학 축하금으로 100만원씩을 지급했다. 석유공사는 자사고·특목고 자녀에 대해 수업료 전액을 지원해줬다.

 

대구경북과학기술원은 조합원과 직계 존·비속, 배우자와 그 부모에 대해 건강검진 비용을 지원하고 있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이들이 의료원을 이용하면 본인 부담금의 60%를 깎아줬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본인과 가족의 의료비를 연간 500만원 한도 내에서 지급했다. 한국전력은 산재보험상의 유족 보상금 이외에 1억5000만원을 추가로 지원해주고 있었다. 한국거래소는 창립기념일과 근로자의 날에 70만원의 보너스를 별도로 지급해왔다.

   
원전 관련 업체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수뢰한 혐의로 구속된 김종신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 연합뉴스

국책 사업과 공약 사업 무리하게 밀어붙여

 

이뿐 아니다. 신용보증기금은 업무상 부상을 입거나 순직한 경우 각각 퇴직금의 50%와 100%를 추가로 지급했다. 한전은 공무 중 부상으로 퇴직했거나 순직한 직원들의 유가족에게 10년간 매년 120만원씩의 위로금과 장학금을 줬다.

 

강원랜드는 직무 외로 사망하거나 정년퇴직한 직원의 자녀를, 농어촌공사와 환경공단은 순직한 직원의 부양가족을 특별 채용 방식으로 뽑았다. 항공우주연구원은 노동조합 간부의 인사 혹은 징계 시 조합으로부터 사전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

 

MB 정권 때 부채가 급증한 것은 이에 더해 국책 사업이나 정권 차원의 공약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과 관련이 깊다. 이명박 정부에서 부채가 71조원이나 불어난 LH의 경우 신도시 개발, 임대주택 건설, 보금자리주택 추진 등으로 빚이 급증했다. 하루 이자만 123억원 정도가 나간다. 실로 엄청난 규모다. 2008년 85조8000억원이었던 LH의 부채는 1년 만에 109조2000억원으로 뛰었고, 그다음 해에는 121조원을 넘어섰다. 초기 투자 비용이 많고 회수 기간이 길다는 점을 감안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2008년 이후 빠르게 부채가 늘어난 데는 정부가 부동산 관련 공약을 이행하는 과정과 관련이 깊다. MB 정권의 보금자리주택 사업으로 LH가 떠안게 된 빚은 23조8000억원에 달한다. 2008년부터 늘어난 LH 부채 규모의 절반이 넘는다.

 

4대강 살리기와 경인 아라뱃길 사업을 떠안은 수자원공사도 마찬가지다. 4대강 사업에 따른 금융 부채 증가분은 지난 2009년 1000억원으로 많지 않았지만, 2010년과 2011년 3조1000억원씩 부채를 더하며 규모를 키웠다. 2012년에는 8000억원을 더해 수공은 2009년 이후 총 7조1000억원의 금융 부채를 지게 됐다. 수공이 진행한 경인 아라뱃길 사업까지 더하면 부채 증가 폭은 더욱 커진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수공의 부채가 12조2000억원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SOC(사회간접자본) 분야 공기업 중 LH공사 다음으로 큰 규모다.

 

MB 정권의 공약 사안 등 중점 사업을 떠안으며 부채가 급증한 LH와 수공은 그 CEO가 ‘MB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5월31일 퇴임한 이지송 전 LH 사장은 1976년 현대건설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에는 청계천 복원 공사를 주무 관리하는 등 대표적인 ‘현대 MB맨’으로 꼽힌다. 김건호 전 수공 사장도 ‘MB맨’으로 불린다. 그는 2008년 수공 사장을 맡은 후 4대강 사업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연임에 성공한 후 지난 7월28일 퇴임했다.

   

내년 지방선거 앞두고 쟁점화 가능성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공공기관 부채 문제의 현황과 해결 방안’ 보고서에서 “정부 정책 사업의 경우 공공기관 자체 수입이나 재정 투입을 통해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공공기관 채무도 정부 채무와 같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12월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공공기관 부채 증가가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있다. LH·한국전력·도로공사 등이 부채를 줄이기 위해 분양가와 전기 요금, 고속도로 통행 요금 인상 등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LH는 내년 1월부터 재계약 대상인 공공 임대주택 임대 보증금과 월 임대료를 각각 4.8% 인상키로 결정했다.

 

임대 보증금은 거의 매년 오르고 있다. 2010년 4.8%, 2011년 3.9%, 2012년 4.8%씩 임대 보증금과 월 임대료를 각각 인상했다. 보금자리주택 분양가도 높일 계획이다. 현재 보금자리지구 전체 가구의 30?40%인 공공 분양주택 물량을 25?40%로 조정키로 했다. 분양가를 높여 떠안고 있는 부채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한국전력은 전기 요금을 평균 5.4% 올리기로 하며 부채 털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도로공사는 경차의 고속도로 할인율을 낮추고 외곽순환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유료로 전환해 적자를 만회하려고 한다. 철도공사(코레일)도 2008년 대비 2배 정도 늘어난 부채를 감당하기 위해 철도 요금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아직은 특별한 움직임이 없는 듯 보이지만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경우 공공기관 부채 문제와 관련한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왜 공공기관의 부채가 이렇게 많이 늘어났는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가 내년 지방자치단체 선거 등을 앞두고 쟁점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권 내에서도 이런 문제와 함께 ‘4대강 사업’ ‘해외 자원 개발 사업’ 등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나오고 있어 앞으로 흐름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정부가 MB 정권과 본격적인 선 긋기에 나설 경우 이런 부분부터 칼을 들이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