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의 통찰력은 사람을 놀라게 하곤 한다. 이 시도 그런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은 모든 것을 쓸어가는 비바람/젊은 미인의 살결도 젊은 열정의 가슴도/무자비하게 쓸어내리는 심판자이지만
시간은 아름다움을 빚어내는 거장의 손길/하늘은 자신이 특별히 사랑하즌 자를/시련의 시간을 통해 단련시키듯/
시간을 견뎌낸 것들은 빛나는 얼굴이 되살아난다...(중략)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박노해 시인의 시 제목처럼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그러나, 더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그것은 `사라진 것들'이다.
특히 `오래된 것'이면서 `사라진 것'들은 이젠 볼 수 없기에 더 아련하고 더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얼핏 보면 저 먼나라의 대초원 같지만 우리나라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제주의 풍경이다. 크고 멋진 나무 아래 다소곳하게 자리잡은 제주의 초가집. 지붕 선이 완만하면서도 봉긋한 모습이 마치 제주의 오름을 꼭 닮아보인다.
저 사진은 고 임인식 사진가가 1950년대 찍은 제주 초가 사진이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든 가장 흔했던 초가집은 이제 다 사라졌다. 바람이 세게 불어 지붕을 줄로 얽어매는 제주의 초가집들도 마찬가지다. 새마을 운동으로, 그리고 현대화로 사라졌다. 그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좀 남아있으면 좋았을텐데 이제 제주에서 제주 초가를 볼 수 있는 곳은 민속마을 외엔 거의 없다.
이 사진을 찍은 임인식 선생 집안은 무척 흥미롭고 유별난 집안이다. 온 집안이 사진가다. 임선생은 한국전쟁을 전장에서 직접 촬영한 종군사진가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의 작은 아버지 임석제 선생은 한국 리얼리즘 1세대 작가다. 그리고 조카보다 먼저 제주의 초가를 찍었다. 역시 1950년대 제주 초가가 있는 풍경이다.
집 뒤로 한라산이 펼쳐지는 어느 제주 마을, 두 소녀가 막 집을 나선다. 지금은 칠순 노인이 되었을 분들. 지붕을 묶는 제주 초가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한국의 초가들은 고장 산들의 능선을 닮았다. 오름과 한라산처럼 부드러운 산으로 둘러싸인 제주의 초가는 그 산들처럼 부드럽다.
작은 할아버지 임석제 선생과 아버지 임인식 선생에 이어 아들 임정의 작가도 사진가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한국 건축사진계의 1세대 중요 사진가인데, 그 역시 제주의 초가를 오랫동안 찍어왔다. 한 사진 집안과 제주의 특별한 인연이다.
임정의 선생이 찍은 한림 부근 바닷가 초가다.
3대에 걸쳐 찍은 이 제주 초가 사진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회가 내년 2월16일까지 제주 비아아트 대동호텔 아트센터(064-723-2600)에서 열린다.
이 전시회 사진을 전해 받고서 한참을 봤다. 오래된 것들, 아름다운 것들, 그리고 안타깝게도 사라진 것들이었다. 오래되고 사라진 것들이 주는 감흥은 늘 매력적이다. 저 사진 속 초가들은 이제 모두 사라졌다. 우리는 그 모습을 이제 저런 오래된 사진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 1955년 물동이를 지고 가는 서귀포 아낙네들의 모습. 임석제 사진가
앞서 소개한 시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에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오랜 시간을 순명하며 살아나온 것/ 시류를 거슬러 정직하게 낡아진 것/ 낡아짐으로 꾸준히 새로워 지는 것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저 초가들이 꼭 그렇지 않은가. 정직하고, 낡았고, 세월의 더께가 쌓였다. 치열한 삶의 현장이기에 정직하게 낡은 것이고, 낡아서 늘 새로워지는 것들이다. 그리고 이젠 사라졌다.
▲ 1957년 성읍마을 고목과 아이. 임인식 사진가
오래된 것이 다 아름다운 것처럼 오래된 사진들은 다 좋다. 저 사진들이 그렇다. 게다가 당대의 사진가들이 찍은 것이니.
이 사진들을 보면서 저 시절 제주를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내가 태어나기 전 모습을 상상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에도 남아 있으면 우리도 볼 수 있으련만, 우리는 늘 우리의 과거를 지워왔다. 그리곤 이렇게 사진으로만 아쉬워한다.
▲ 1993년 명월마을. 임정의 사진가
1993년이면 불과 20년 전 아닌가. 이 근사한 초가가 살기 불편하다면 몇 채 쯤은 나라에서 남겨놓았으면 안되는 것이었을까. 너무 흔했기에 소중함을 모르는 것은 인간이 늘 저지를 수밖에 없는 실수란 말인가.
이 사진들을 보고 당장 제주도에 가서 전시를 보고 싶었지만 일정이 허락치 않았다. 그래서 임정의 선생께 사진을 얻어 이 블로그를 통해 소개한다. 오래되어 아름답고 사라져서 더 사무치는 것들의 모습을 혼자 보기 아까워서다.
그런데, 임 선생은 또한 몇가지 재미있는 사진들을 함께 보내주셨다.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나오는 아버지 임인식 선생이 찍은 1950년대 무렵 사진들이다. 가령 이런 것들.
1954년 서울 가회동, 그러니까 지금 `북촌'으로 불리는 동네의 모습이다. 네모 반듯한 도시한옥들이 촘촘하게 동네를 이룬 모습이다. 지금은 이 집들 중에서 얼마만이 남아 있을까.
임인식 선생은 군인이었고 종군 사진가였고, 또 당시로선 거의 유일하게 항공 사진을 찍은 기록자였다. 그리고 이런 사료적 가치가 있는 사진들 못잖게 생활상도 많이 찍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촬영 대상은 물론 그의 가족이었다. 아들 임정의 선생을 비롯한 식구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들은 지금 보면 우리 부모님 세대가 이렇게 살았구나 실감하게 해준다.
임인식 선생 집은 가회동이었다. 그 가회동 집에서 1954년 어느날 점심을 먹고 있는 임정의 선생의 동생이다.
저 사진은 무척 재미있다. 양은냄비들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는데, 눈에 띄는 것은 창문 틀에 놔둔 시계. 손목시계도 무척 귀했을 시절일텐데 말이다.
당시만 해도 가회동에는 기와집이 아니라 초가집들이 수두룩했다고 한다. 그 초가집을 나서 학교에 가는 임정의 선생과 여동생의 모습이다.
1953년 초등학생들의 모습이다. 고무신을 신은 모습이다. 전쟁 직후였으니 정말 열악했던 시절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사진들은 이것들이다.
1953년 인사동 찻집 입간판과 그 옆에선 꼬마다. 전쟁 직후 피폐했던 서울에서 저 입간판이 어린 꼬마에겐 무척이나 신기했을 법하다. 꼬마는 간판 옆에 서서 포즈를 취했고, 아버지는 그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고무신에 눈길이 또 간다.
이건 도대체 어디일까?
임정의 선생네가 살았던 가회동 부근 삼청공원이다. 역시 1953년. 저 동그란 구조물은 정자다. 시멘트로 지은 현대식 정자인데, 전쟁의 흔적인지 중간중간 이빨이 빠진 듯 생채기가 있다.
앞서 3대에 걸쳐 사진가 집안이 찍은 제주 초가의 아름다운 사진들은 제주에서 전시회가 열러 쉽게 보기 어렵지만,
이 정겨운 가족 사진들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중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이젠 사라져버린 옛 서울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 전시회를 지금 열고 있다.
임정의 선생의 아버지 임인식 선생이 찍은 저 사진들을 비롯해 강홍구, 김기찬, 김문경, 김한용, 안세권, 이득영, 임흥순, 전몽각, 전미숙, 전민조, 한정신, 홍순태, 황헌만 작가 등 유명 사진가들이 찍은 귀한 서울 사진들이 모두 나온다.
전시는 12월30일까지 열리며 무료다. 월요일은 쉰다. 문의 02-2171-2481.
사진들을 소개하는 김에 이번 전시에 나오는 유명 사진들을 몇점 소개한다. 모두 `오래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이건 어디일까?
맨 왼쪽 건물만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옛 한국은행 본관이다. 그러니까 신세계 백화점 앞이다.
전차가 다니는 선로가 보이고, 버스와 자동차들은 이젠 도저히 볼 수 없는 옛날 것들이다. 지금은 청동 조각상 분수가 있던 자리에 단출한 옛 분수가 있다.
이 사진은 김한용 사진가가 찍은 1950년대 남대문 로타리 모습이다. 김한용 작가는 임인식 선생처럼 종군 사진가였다. 전쟁 이후에는 상업 사진으로 방향을 돌려 한국 상업사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아마도 이 사진은 많은 분들이 보셨을 것이고, 다시 봐도 놀라우실 듯하다.
뒤로 보이는 아파트가 서울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의 대명사로 꼽혀왔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다. 그런데 그 앞에는 농부가 소를 끌며 농사를 짓는다.
동아일보 사진기자 출신으로 현대사의 여러 장면을 찍은 전민조 선생이 찍은 1978년 압구정동 모습이다. 당시만해도 서울이라고 하면 강북을 말하는 것이었고, 강남은 시골이나 다름없었음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이 사진은 참으로 강렬하다. 어린 여자애는 보물이었을 듯한 인형들을 자기 옆에 뉘어놓고 잠이 들었다. 맨 왼쪽 인형은 눕히면 눈이 감기는 인형이다. 1960~80년대 주거 문화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진들 중 하나다. 1967년 사진이다.
토목공학자이자 교수였던 전몽각(1931-2006)은 대학 4학년 때 받은 장학금으로 카메라를 산 뒤로 평생 카메라를 옆에 두고 가족들의 모습을 찍었다. 큰 딸 윤미씨가 태어나서부터 시집갈 때까지의 모습을 찍은 수많은 사진으로 펴낸 사진집 <윤미네집>은 그 생생함과 절절함, 공감이 묻어나는 글과 사진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감동시켰다.
개인적으로 무척 놀라운 사진 중의 하나다. 원로 사진가 홍순태 선생이 찍은 1966년 뚝섬 빨래터다.
1960년대에만 해도 뚝섬은 한강에서 유일하게 수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곳이어서 여름이면 수영하러 온 시민들로 붐볐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수영만 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저렇게 빨래를 하러 왔다고 한다. 수도가 부족했으니 강에서 빨래를 하러 빨랫감을 든 이들이 전차를 타고 뚝섬으로 몰려들었고, 강물에 나무 판자를 띄워 만든 세탁장에 수십 명이 둘러앉아 빨래를 한 다음 대나무 빨래 걸이에 빨래를 말려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뚝섬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었을 것이다.
컬러 사진들도 있다. 1973년 청계천 판자집 풍경이다. 지금의 청계천을 생각하면 상상조차 안될 풍경이다.
이 사진을 찍은 분은 한국인이 아니다. 노무라 모토유키란 일본인이다.
1970년대 청계천은 노동자들과 빈민들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곳이었다. 노무라 모토유키는 이 열악한 외국의 빈민가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이들의 삶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이 귀한 사진들을 2006년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사진은 또 어떤까. 회색빛 허름하기 짝이 없는 집과 여러 색깔 빨래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홀로 앉아 있는 소년과 흙바닥이 더욱 안쓰럽게만 다가온다.
1986년 사당동의 모습이다. 사진을 찍은 이는 사회학자로 철거 재개발 문제를 연구해왔고, 소설과 영화로 철거 재개발 문제를 알려온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 삶의 현장을 일거에 파괴하는 재개발 지역의 느낌이 물씬 묻어난다. 현장으로 들어가 연구한 덕분에 나올 수 있는 사진일 것이다. 저 마을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 사진들은 아름답다. 비록 사진 속에 담긴 현실은 치열하고, 지저분하고, 고통스러울 지라도 사진들은 그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 처절하고 현실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사진들은 사진가든 아니든 평생 자기 분야에 헌신해온 사람들의 작품들이다.
오래된 것이 다 아름답듯, 오랫동안 한가지 일을 해온 이들도 아름답다.
박노해 시인은 앞의 시에서 그런 사람들을 이렇게 말했다.
"자기 시대의 풍상을 온몸에 새겨가며/ 옳은 길을 오래오래 걸어나가는 사람/ 숱한 시련과 고군분투를 통해/ 걷다가 쓰러져 새로운 꿈이 되는 사람/오래된 것은 다 아름답다."
우리 곁에는 사라진 것들이 너무 많다. 그 흔적을 모처럼 만나보고 싶다면, 비록 힘들고 어려웠지만 이젠 추억이 된 시절을 떠올리고 싶다면, 저 시절을 기억할 부모님과 함께 전시회를 가보고자 한다면 이 두 전시회를 권한다.
귀한 사진들을 전시회를 가지 못하는 분들도 보실 수 있게 전해주신 임정의 선생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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