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 1898-1974 http://en.wikipedia.org/wiki/David_Alfaro_Siqueiros
시케이로스 작품의 기본 주제는 사회에서의 인간의 역할과 자유를 향한 인간의 투쟁이다. 자화상에서 시케이로스는 멕시코 혁명가의 자신을 재건설의 신인(신과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의 조형 언어는 자신이 유럽에서 공부했던 이탈리아 고전과 르네상스 미술에 표현주의적 , 초현실주의적 요소와 개념을 결합시킴으로써 대중에게 강렬한 시각적 충격을 주는 극적인 회화를 만들어낸다.
1896년 멕시코 치와와(Chihuahua) 주에서 출생하였으며 본명은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David Alfaro Siqueiros)이다. 4살 때 어머니 시케이로스가 사망하자 할아버지에게 보내져 성장하였고 어린시절에는 반항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었다고 전한다. 산 카를로스 미술학교를 다녔으며 멕시코 혁명의 지도자였던 베누스티아노 카렌자(Venustiano Carranza1859~1920)가 이끄는 멕시코 혁명군에 가담하였다. 이때 그는 멕시코의 여러 지방을 여행하였고 시골에서 살아가는 멕시코 민중에 대한 강한 인상과 의식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며 이후 시케이로스가 미술가로 활동하는데 매우 중요한 미술적 모티브로 작용하게 되었다. 산 카롤로스아카데미아에서 그림공부를 하다가 멕시코혁명운동에 가담하여 사회주의의 투사 ·지도자 ·예술가가 되었다. 멕시코사회당(Mexican Communist Party)에 가입하여 마르크스주의자로 혁명미술을 이끄는 역할을 하였고 급진적인 사회주의자였다.
미술공부와 작가로서 활동을 위해 유럽으로 건너가(1919∼1922) 당시 그곳에서 각광받던 피카소와 브라크의 큐비즘(Cubism)의 영향을 받았고, 세잔의 인상주의 미술도 그에게 영향을 주었다. 그는 전위적인 회화에도 접하였으나, 민중을 위한 회화라는 그의 사회주의적 미술 신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프랑스에 머물면서 같은 멕시코 출신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를 만났으며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르네상스 벽화미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귀국 후 같은 사회주의미술가로서 활동하였던 디에고 리베라와 함께 공공건물에 프레스코(Fresco) 벽화를 그리면서 멕시코의 민중이 겪는 고통과 민족의 정체성을 표현하였다. 하지만 리베라와 이념성의 차이로 갈등을 빚었고 독자적인 벽화운동에 전념하였다. 그는 멕시코에서 정치활동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사회주의 운동에 앞장섰다. 정치적 활동으로 여러 번 투옥되고, 추방되어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을 여행하였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벽화작품 제작을 의뢰받아 6개월 동안《라 아메리카 트로피칼 La Ameria Tropical(1932)》을 제작하였다. 이후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며 여러 전시회에 출품하였고 1936년 노동절에는 시위대에 참가하였다. 1938년 에스파냐 내전에 가담하여 프란치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가 주도하는 파시스트와 싸웠다. 그는 다시 멕시코로 돌아와 그의 대표적인 작품중 하나인 멕시코 전력노동조합을 위한 벽화제작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1940년 멕시코로 피신해온 소련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 암살에 가담되었다는 혐의를 받아 멕시코에서 국외로 추방되었다. 1950년에는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비엔날레 전시회 멕시코 대표로 참가하여 상을 받았다. 1960년 폭동을 선동하고 주도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3년 동안 수감되었다.
1964년 출옥하여 사회주의 정치활동보다는 차풀테펙 성(Chapultepec Castle)의 벽화제작에 전념하였다. 화풍은 크고 굵은 터치로 강하고 격렬한 표현을 사용하였고 다이내믹한 리얼리즘적 표현을 구사하였다. 프레스코 벽화에서는 평면에서만 만족하지 않고 돌출부를 만들거나 그림물감 대신 에나멜을 사용하는 등 자신만의 독특한 미술기법을 구사하였다. 주요작품은 멕시코시티의 국립고등학교와 대학의 벽화, 그리고 라 라자(la Raza) 병원 로비의 벽화, 멕시코 암센터 벽화, 부에노스 아이레스나 로스앤젤레스미술학교 및 아트센터의 벽화 등이다.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José Clement Orozco), 디에고 리베라와 함께 멕시코 화단의 3대 거장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1966년 레닌평화상을 수상했으며 1974년 사망했다
자화상: 멕시코 혁명가 자신을 재건설의 신인으로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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