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역사

@조선 도공 심수관, "나는 일본인입니다"

백삼/이한백 2014. 8. 7. 10:10

@   조선 도공 심수관, "나는 일본인입니다"

 

 

글 | 조현제 남큐슈전문여행사 스토리투어 대표

 

 

 

 

아주 오래 전 기억이다. 백발의 노인을 신문기사에서 본 것은. 불을 가지고 배 위에
있던 모습으로 기억하는데 그는 다름아닌 정유재란 때 일본 가고시마로 끌려간 조선도공 심당길의 후예 14대 심수관(沈壽官)이었다. 
 
1598년 선조들이 일본에 끌려갈 때 조선의 백토와 잿물은 가져갔지만 불을 가져가지 못해 온전하게 조선의 도자기를 만들어 내지 못한 아쉬움을 해소하기 위해, 400년만인 1998년에 남원에서 도자기의 ‘혼불’을 채취해 사쓰마에 안치하는 국제 이벤트 ‘400년 만의 귀향’을 기획하면서 신문에 소개된 사진에서였다.
그 후로 15년 여 만에 가고시마의 미야마(美山 )도자기 마을에서 실제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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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심수관  심수관요홈페이지 http://www.chin-jukan.co.jp/ >
 
연세는 들어 보였지만 온화한 모습으로 한국에서 온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전시관 입구 매장에서 14대 심수관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고향을 어찌 잊으랴.
(故郷忘じがたく候)”를 구입하였다. 작가는 일본에서 최고의 역사소설가로 평가 받고 있는 시바료타로(司馬遼太郎)이다. 
표지를 넘기자 “幾山河 転じて 越えて四百年“ 라고 적혀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산하를 구르고 넘었던가, 400년 “ 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타의에 의해 조국을 떠나서 타향에 자리잡기까지 험난했던, 선조들과 자신의 삶과 마음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여 가슴이 먹먹하였다.
이 소설로 인하여 사쯔마도자기와 심수관 가마는 전국에 다시 한 번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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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을 어찌 잊으랴(故郷忘じがたく候)의 표지속: 14대 심수관의 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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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수관요 내의 수장고 전경:    심수관요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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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장고내의 전시작품들 :  심수관요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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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바카리(오직 불만: 흙과 유약과 도공등 모든 것이 조선에서 온 것으로 만들어 졌으나
              불만 일본의 것을 사용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 1대 심당길 작품>
 
심수관가(家)는 1598년 정유재란 당시 전북 남원에서 거주하던 심당길(1대)이 일본 사쓰마(현 가고시마)로 끌려간 이래 416년 동안 청송심씨(靑松沈氏) 성(姓)을 그대로 간직해 왔다고 한다.

 1867년 파리에서는 제 5회 만국박람회가 개최되었는데 당시 일본의 중앙정부인 막부와 갈등을 빚던 사쯔마번은 독자적으로 박람회에 출품하게 된다. 이것을 계기로 유럽제국에 있어서 막부의 권위가 실추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다음 해의 메이지유신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하지만 12대 심수관이 출품한 사쯔마  도자기가 박람회에서 절찬을 받으면서 일본의 도자기는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다.

이후 12대 심수관부터 현재의 15대에 이르기까지 '심수관'이란 이름을 계승하여 사용하게 되었으며, 일본에서 우리나라의 전통과 정신을 계승하며 예술적 자긍심을 지켜 오고 있다. 지금도 많은 한국사람들이 가고시마를 방문할 때 반드시 들르는 곳 중의 한 군데가 되었다.
하지만 한국인 후손으로서 일본에서 살아가기가 간단치도 않았을 것이며 막연한 애착심으로 방문하는 한국사람을 맞이하기에도 다소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음과 같은 심수관요의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는 글로써 어느 정도 짐작을 해 본다.
 
“우리 가마에는 한국에서 많은 분들이 찾아 주신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명함을 드리고 인사를 나누면서 자주 받는 질문이 있는데,
「15대 심 선생님은 한국인이지요?」
「 아니오 저는 일본인입니다.」
「 그래도 혈통은 한국사람이지요?」
「 ,,,,,,,,?」
 실제로 이와 같은 대화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있었다. 
도대체 한국인, 일본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중략)
2013년 11월 서울의 예술의 전당 전시회의 인사말에서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사쯔마도자기의 400년의 노력과 그 성과를 한국인의 민족의 힘이라고 하는 자존심에 단순히 귀착시키고 싶지 않다. 확실히 고난의 역사였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의 사회와 화합하고 서로를 인정하고, 일본인에게 격려를 받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러지 않았으면  원한과 반발만으로는 40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결코 살아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사쯔마도자기는 불행한 시대의 바람에 아버지인 한국의 종자가 어머니인 일본의 대지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것으로써, 이 두 나라의 은혜와 사랑에 의해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것을 부디 이해해 주면 좋겠다.」 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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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가고시마 이브스키, 고이즈미총리, 노무현대통령,
15대 심수관 : 심수관요 홈페이지 http://www.chin-jukan.co.jp/>
 
작년 10월부터 큐슈에는 <7성급 크루즈열차>가 운행을 시작하였다. 부유층 고객을 대상으로 큐슈내의 명승지만을 순례하는 열차로서 후쿠오카의 하카타역을 출발하여 오이타현, 미야자키현을 거쳐 가고시마현에서 구마모토현을 경유하여 하카타역으로 돌아가는 3박4일의 코스이다. 큐슈 내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만을 순례하는데 이 곳 심수관 가마도 코스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고급스럽고 의미있는 관광지로 입증이 된 셈이다.

 아직까지 한국에서 가고시마로 가는 교통편은 그리 원활하지 않다. 서울에서는 주3회 인천공항에서 가고시마로 가는 직항편을 이용할 수 있지만 충청 이남에서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큐슈의 북쪽 관문인 후쿠오카에는 매일 인천과 부산에서 10여회의 항공편이 운행중이며 부산에서는 카멜리아훼리와 쾌속선으로 하카타항까지 이동이 가능하다. 후쿠오카 공항이나 하카타항까지만 가면 하카타역에서 출발하는 신칸센으로 1시간 20분이면 가고시마 중앙역으로 갈 수 있다.

지금까지 북부 큐슈에만 머물렀던 발걸음을 신칸센을 이용하여 가고시마까지 확장하여 그 동안 접하지 못했던 역사의 현장과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들을 가슴 뛰게 하는 한국산( 韓国岳 :가라쿠니다케)을 직접 만나보는 경험을 하기를 바란다.
약 1년간에 걸쳐서 이 곳 지면을 통하여 남큐슈 가고시마의 매력을 소개할 기회를 가졌다. 일본을 보다 폭넓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