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독립하우스에는 고지서가 날아들지 않는다. 한전과 전력사용계약 자체를 맺지 않았고, 기름이나 가스를 이용한 보일러도 없다. 패시브하우스로 집을 짓고 태양광으로 전기를 만들어 쓰는, 미래를 위한 실험이자 현명한 도전이다.
작년 봄 입주해 이제 만 1년이 지난 에너지독립하우스 1호. '파시브하우스 디자인 연구소'의 최우석 연구원이 직접 짓고 사는 집이다. 그는 꾸준히 연구해 온 패시브하우스에 대한 이론을 직접 현실로 검증해 보고 싶었다. 마침 서울의 답답한 전세살이에도 염증이 나 있는 터였다. "착실하게 월급을 모아 서울에서 집을 짓는 건 애시 당초 불가능하고, 그렇게 얻은 집이라도 여름엔 덥고 겨울에 추울 거예요. 서울의 아파트며 단독, 연립주택의 시공 수준은 뻔하니까요. 결국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땅값이 싼 곳을 찾아 나섰어요."
중앙선 전철과 철도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양평역을 기점으로 답사를 시작했다. 가능하면 자전거로 양평역까지 갈 수 있는 거리여야 했다. 운 좋게 건폐율이 크고 반듯한 작은 땅을 구해 여동생네와 나눠 가졌다. 각각 254㎡, 255㎡의 70평 규모였다.
집은 패시브하우스의 5가지 원칙 '단열, 기밀, 고성능 창호, 열교 없는 건축, 열회수 환기'를 적극 적용했다. 설계는 파시브하우스디자인연구소 이필렬 소장이 맡았다. 집은 대지 조건에 따라 전면이 짧고 측면이 긴 형태의 동남향으로 디자인되었다. 집 앞으로는 온실용 창고까지 지어 전체 지붕에 250W 태양광 모듈 16개를 설치했다. 정남향이 아니라 아쉬움이 있었지만, 우려했던 것보다 만족스러운 발전량을 얻고 있다. 덕분에 난방, 온수, 조명, 조리 및 가전기기 이용을 모두 태양 에너지로 해결한다.
지난겨울은 난방을 위해 작은 캠핑용 가스난로를 추가했다. 4달 동안 사용량은 부탄가스(220g) 19통이 전부였다. 아주 추운 날, 새벽에는 16~17℃까지 내려가기도 했지만 그 외에는 실내 온도 20℃를 계속 유지하며 지냈다.
"가스나 전기 요금 등 별도의 관리비는 전혀 없습니다. 대신 서너 달에 한 번씩 환기장치의 필터를 교체하는 비용이 몇 만원쯤 들지요. 태양광 설비와 고품질 인버터 수명은 25년 정도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매달 절약되는 에너지 비용으로 본다면, 초기 투자비는 십수 년 내로 상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그의 집 옆에는 에너지독립하우스 2호도 준공을 마쳤다. 최우석 씨의 여동생 가족을 위한 집이다.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인만큼 에너지뿐 아니라 디자인에도 여러모로 신경 쓴, 또 다른 패시브하우스다. 2호 주택의 취재를 위해 다음 달 또 한 번의 방문을 약속했다.
<PROCESS>
↑ 01 기초 콘크리트 바닥과 옆면에 부피단열재를 두껍게 시공한다. 이는 여름철 땅의 열기와 습기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 02 벽체는 바닥에 눕인 채로, 한면을 통째로 제작한다. 구조재 사이에 폴리우레탄보드 단열재를 두 겹 댄다. 단열재가 이어지는 면에 열교를 줄일 수 있도록 겹침 시공한다.
↑ 03 크레인을 이용해 건물의 4면을 모두 들어올린다. 내벽 쪽에는 가장 큰 규격의 농업용 비닐을 둘러 기밀을 확실하게 잡는다.
↑ 04 벽체 간 조립을 시작한다. 중목구조 형식의 짜맞춤 구조에 남동쪽으로는 고효율 창호가 벽체 전면에 끼워진다.
↑ 05 일반적인 정화조 대신 친환경 하수정화시스템을 위해 별도의 저장조를 땅에 묻었다.
↑ 06 창호면 주위로 기밀테이프를 꼼꼼하게 시공하고 주택 외부를 투습방수지를 에워싼다. 모든 틈은 단열재로 충분히 막고 밀착 시공해 열교를 최소화한다.
↑ 07 지붕재를 고정시키기 위한 기초목 작업. 추후 설치될 태양광 모듈에 대비해 튼튼히 고정한다.
↑ 08 중목구조의 장선에 맞춰 2층 바닥을 앉힌다. 난방이 없는 건식이기 때문에 간단한 작업이다.
↑ 09 블러도어 테스트를 실행한다. 건물 외피의 기밀값을 측정하고, 침기 위치를 확인해 집의 성능을 볼 수 있다.
직장 가까이 살기 좋은 내 집을 짓는 일은 어렵습니다 모두를 가질 수 없다면 어차피 선택은 불가피한 것, 우린 출퇴근 시간을 포기한 대신, 쾌적하고 살기 좋은 내 집을 선택했습니다
1 250W 태양광 전지판이 본채와 창고동 지붕에 16개 설치되었다. 총 4㎾h 용량으로 신성솔라 제품이다. 8개는 직렬 연결 후 인버터로, 나머지는 8개는 콘트롤러를 거쳐 배터리로 직접 연결된다. 인버터는 Infinisolar 하이브리드 고성능 제품으로 전지판과 비슷한 수명을 가진다.
2 나무로 주택을 지을 경우 철근콘크리트를 이용한 주택보다 비용을 줄이고 더욱 자연친화적인 분위기를 얻을 수 있다. 중목구조에 폴리우레탄보드 단열재를 넣고 전면 외부는 목재로 마감했다.
3 건물의 나머지 세 면은 폴리카보네이트 골판으로 이루어졌다. 건축주는 건물 외관에 불필요하게 돈을 들이는 것을 배제하고, 실용성과 내구성을 추구한 자재를 지향했다.
4 지붕은 아연도금 골강판으로 덮었다. 이 역시 자재비와 시공비가 저렴하여 실용적인 지붕을 만들 수 있었다.
5 별도의 하수처리시스템을 설치했다. 주방, 목욕탕에서 발생하는 생활하수는 자체 저장조에 담겨 자연 정화 및 미생물학적 처리를 거쳐 필지 내에서 재활용된다.
저장된 하수는 전동펌프를 이용하여 실외 채소 정원과 온실 내 재배지에 농업용수로 쓴다. 이때 1, 2차 정화를 거친 물에 다소 남아 있는 유기물은 작물의 양분으로 이용될 수 있으며, 정원과 온실의 흙을 거쳐 증발하거나 식물에 흡수되며 3차 정화를 거치게 된다.
6 실내는 목구조를 그대로 노출시키고, 석고보드나 미장 작업 없이 단열재에 기밀막을 대고 목재로 바로 마감했다. 오히려 나무가 주는 포근함이 한껏 느껴진다.
7 가로로 설치되어 부엌에 채광을 책임지는 창. 환기는 기계 장치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고정창 비율이 훨씬 높고, 여닫이는 최소화했다.
8 외부에서 LPG가스를 공급하는 관로와 가스레인지는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전기를 사용하는 인덕션 레인지, 오븐 겸용 전자레인지, 커피 포트 등을 이용한다.
9 바닥은 보일러 배관이 없기 때문에 천연 마루의 느낌을 한껏 즐길 수 있다. 별도의 가공 없이 UV처리된 목재만을 사용했다.
1 온수를 사용하기 위해 30ℓ용량의 전기온수기(Fresh TT-30R)를 설치했다. 매월 전기 생산량 중 약 40㎾h 정도를 온수에 사용한다. 건축주는 그때그때 전기 생산량에 맞춰 온수를 사용하는 습관이 생겼다.
2 수세식 화장실 대신 현대화된 비수세식 변기가 설치되어 있다. 스웨덴 제품으로 대변은 모아서 퇴비를 만들고 소변은 희석해서 텃밭에 거름으로 준다. 가정에서 나오는 분뇨는 그 자체로 유용한 에너지를 포함한 훌륭한 자원이지만, 이를 물에 섞어 버리면 분해시키는 과정에서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3 집 안에서는 합성세제를 쓰지 않고, 고형비누 또는 자연적으로 완전히 분해되는 식물성계면활성제만 사용한다.
4 열회수환기장치는 사계절 실내에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는 한편, 겨울철에는 문을 열지 않고도 환기가 가능해 에너지를 밖으로 뺏기지 않는다.
5 남쪽을 향해서는 창호 크기를 최대로 하고 에너지 투과율이 높은 맑은 유리를 사용해 태양열의 유입을 최대화한다. 폴란드 MS社의 Evolution 창호로 단열 PVC 프레임에 더블 로이 코팅의 3중 유리를 사용했다.
↑ PLAN - 1F
↑ PLAN - 2F
<INTERVIEW _ 건축주 최우석 씨>
"매일 하늘을 쳐다보고 '에너지 살림'을 합니다"
요즘은 매일 하늘을 쳐다보고 살게 됩니다. 옛날 농사짓던 사람들처럼 말이죠. 오늘 해가 좋은지 안 좋은지, 빨래나 요리를 하기 좋은 날은 언제인지 늘 신경을 쓰게 됩니다. 전기와 에너지를 마음껏 쓰던 삶에서 집에서 얻은 에너지로만으로 사는 삶은 가족의 일상을 이렇게 바꿔놓았습니다.
이런 선택이 있기까지 많은 과정이 있었습니다. 우리 집은 한전 전기와 계약을 맺지 않았습니다. 우리 후세가 지구상에서 지속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 이상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전으로부터 전력을 구매하는 한 원자력 전기와 화석연료 전기를 쓰지 않을 방법은 없었습니다. 내 집에서 얻은 재생가능한 에너지만으로 불편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는 집, 바로 저희 집과 우리가 꿈꾸는 세상입니다.
↑ 태양에너지를 전기로 전환하고 저장하는 장치들, 컨트롤러 및 인버터 박스, 배터리 설비가 들어 있다.
↑ 블로도어 테스트 당시 수치. 연간 난방에너지 요구량이 파시브하우스 기준인 ㎡당 15㎾h 이하를 충족함은 물론이고, 난방에너지 요구량이 ㎡당 10~12㎾h에 근접할 만큼 좋은 성능이 나왔다.
↑ 전원생활에는 바깥 활동을 위한 창고가 하나쯤 필요하다. 추후 온실로 활용할 수 있는 창고를 목재로 만들고 투명 폴리카보네이트 골재로 벽체를 둘렀다. 지금은 건축주의 목공을 위한 작업장 겸 수납고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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