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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orgione (c. 1477/8 ~ 1510), Tempest
c. 1505, Oil on canvas, 82 x 73cm, Gallerie dell'Accademia, Venice
베네치아에 있는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인 조르조네의 '폭풍우'는 보는 사람마다 제 각각의 해석을 내놓게 한 그야말로 알쏭달쏭한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베네치아의 귀족인 가브리엘리 벤드라민(1484~1552)을 위해 그렸다는 사실 외에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논쟁에 휩싸여 있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인 조르조네 또한 삼십대 초반에 죽었다는 사실 외엔 그에 대해서 알려진 게 별로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미스터리 화가에 미스터리 그림인 셈입니다.
이 풍경화의 전경에는 세 명의 인물, 즉 젖을 물린 여인과 아기, 그리고 파수꾼처럼 보이는 남자, 이렇게 세 명이 번개 치는 풍경을 배경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화폭 속은 평화로워 보이는 한편으로 뭔가 불안스러운 조짐이 가득해 보입니다. 어깨에 흰 천을 두른 벌거벗은 한 여인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과 그 곁에 무심한 표정으로 긴 작대기를 걸치고 서 있는 한 사내의 표정에선 그 어떤 긴박감도 느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좀 저 멀리 쳐다보면 짙게 드리운 구름 사이로 번개가 번쩍이고 있습니다. 제법 거센 바람이 부는 듯 풀과 나뭇잎은 제법 세차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곧 일어날 것만 같은 분위기입니다. 이처럼 이 그림은 당시 그림으로선 새로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당시에 배경으로만 그려졌던 풍경이 이 그림에선 인물과 함께 독자적인 주제로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반된 두 이미지가 묘하게 충돌하며 화폭 속에 섞여 있다 보니, 그림에서 느끼는 첫인상은 참 묘합니다.
그러면 이 인물들과 그 배경은 서로 어떤 연관성이 있으며, 화가는 그림 속에 무엇을 담으려 한 것일까요?
지금까지 이 그림의 해석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이런 질문을 풀기 위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이 그림이 벤드라민의 저택에 소장될 때에는 '조르지 다 카스텔 프랑코가 그린 폭풍우와 집시와 병사가 있는 작은 풍경'이라고 언급됐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당시엔 남자는 병사로, 여자는 집시로 이해했다는 말입니다.
그 후 300년 동안 이 작품은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가 1855년 예술사학자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해졌습니다. 우선 벌거벗은 여인이 누구인가를 두고 논란이 있는데, 벤드라민의 저택에 소장될 당시에 이해했던 '집시'라는 의견에서부터 후에 '이브'라는 의견까지 다양합니다. 물론 그에 따라 아기와 사내에 대한 의견도 제각각이겠죠.
우선 이런 여러 주장 가운데 살바토레 세티스의 의견을 먼저 소개합니다.
그는 이 인물들을 아담과 이브, 그리고 그 아들 카인으로 해석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세 명의 인물들은 낙원에서 추방되어 인류 미래의 운명이 함축된 '윤리적인 풍경'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에 대한 근거의 하나로 그림의 아랫부분에 보이는 뱀을 들기도 합니다. 이런 그의 견해에 따르면, 하나의 다리가 천국의 강을 거쳐 인적 없는 마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휴식을 취하고 있고, 번개로 상징되는 신의 섬광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 원죄의 결과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이브 사이에 있는 두 개의 부러진 기둥은 죽음을 상징하며, 젖을 빠는 아기는 후에 그의 동생인 아벨을 살해하는 죄를 범하는 카인이라고 합니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지붕 위에 있는 황새 한 마리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화가는 왜 이렇게 황새 한 마리를 그려 넣은 것일까요? 황새는 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사랑을 암시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후에 카인이 아벨을 살해한 것은 부모의 사랑을 동생에게 빼앗긴 데 대한 그의 질투심 때문이라는 이야긴가요?
물론 세티스의 이런 해석과 전혀 다른 해석을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들은 이 그림이 평온함과 영혼의 평화를 표현한 그림으로 해석합니다. 다시 말해 이 그림은 활동적인 삶과 사색적인 삶의 대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지팡이를 든 남자는 활동적인 삶을, 반대편의 여자는 사색을 의미한다는 것이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 두 사람 사이의 간격에 주목해야 한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남성과 여성에 관한, 둘 사이의 차이와 끌림에 관한 것이라는 해석이죠.
이 그림을 두고 이처럼 분분한 해석이야 어떻든, 조르조네의 '폭풍우'는 보면 볼수록 평화로움과 불안함이 묘하게 공존하는 낭만적이면서도 매력적인 그림입니다.
그러나 이 그림이 미술사상 가장 훌륭한 작품의 하나로 손꼽히는 것은 그 내용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이 작은 도판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이것으로도 어렴풋이 그의 혁명적 업적의 편린을 짐작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인물들이 특별히 세심하게 그려진 것도 아니고 구도에서도 별다른 기교가 엿보이진 않지만 이 그림은 분명히 화면 전체에 스며 있는 빛과 공기에 의해서 하나의 전체로 융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뇌우의 섬뜩한 빛이 그림 전체를 지배한다.또한 이 그림이 그 시초일 듯 싶은데, 그림에 등장하는 배우들이 움직이고 있는 무대가 되는 풍경이 이제는 단순한 배경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풍경은 그 나름대로 그림의 진정한 주제가 되고 있다. 우리는 인물들로부터 이 작은 패널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풍경을 번갈아 살펴보며 조르조네가 그의 선배나 동시대 화가들과는 달리 사물과 인물을 나중에 공간 속에 배치한 것이 아니라 땅, 나무, 빛, 공기, 구름 등의 자연과 인간을 그들의 도시나 다리들과 더불어 모두 하나로 생각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거의 원근법의 창안과 맞먹는 새로운 영역을 향한 하나의 발돋움이었다. 이제부터 회화는 소묘에 채색을 더한 것 이상의 의미가 되었다. 회화는 그 자체의 비밀스런 법칙과 방안을 갖는 하나의 예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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