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피에르 보나르의 시든 꽃을 좋아하는 취향에 대한 소고

백삼/이한백 2014. 7. 18. 10:49

만년의 피에르 보나르(Pierre Bonnard·1867~1947)가 프랑스 남부의 칸에 살 때다. 하루는 가정부가 정원의 꽃을 꺾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오후가 지나도 보나르는 꽃을 그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정부는 보나르에게 물었다.  

 

“주인님, 왜 꽃을 그리지 않는 거죠? 시들기 전에 그리셔야 할 텐데요.” 보나르는 꽃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꽃이 시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꽃은 시들어야 존재감이 생기거든요.” 꽃의 시듦에 대한 보나르의 존재론적 사유에 심하게 매혹된 나는 그의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피카소가 ‘얼치기 화가’라고 보나르를 폄하했던 것처럼 나 역시 보나르가 내 미술사전에는 없었다. 한 사람에게 매료되는 계기는 의외로 사소하고 단순하다.

나는 보나르의 시든 꽃에 대한 취향이 얼마나 그의 본질을 잘 드러내는지 새롭게 깨닫고 있다. 동시에 시든 꽃에 대한 그의 취향이 바로 시든 사람, 즉 아픈 연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도.
   
   보나르는 19세기 말 부르주아의 단란하고 내밀한(Intime) 가정생활을 즐겨 다룬 앵티미슴(Intimisme) 경향을 대표하는 나비파(폴 고갱을 따르던 일군의 화가)의 일원이다. 그는 꽃과 과일과 같은 정물, 개와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 어린아이와 여자들과 같이 일상 속의 친밀한 소재들을 그렸다.
 

 

그리고 그의 작품 속에 빠짐없이 지속적으로 드러나는 존재가 있었다. 바로 그의 오랜 연인이자 아내였던 ‘마르트’이다. 어떤 화가도 보나르만큼 한 여자에 대한 집중을 보인 예가 없다.
   
   보나르는 평생 한 여자, 마르트하고만 살았다. 보나르는 1893년 26세 때 파리의 오스망 거리를 지나다가 우연히 마르트(1869~1942)를 만난다.
 

 

장례용 조화를 만드는 가게에서 일했던 그녀는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여인이었다. 첫 만남부터 마르트는 자신이 16세라고 속였다. 본명이 마리아 부르쟁이라는 걸 알게 된 것도 같이 산 지 32년 만에 혼인신고를 할 때였다. 보나르는 이 모든 것을 무심하게 받아들였다.
   
   사실 마르트는 병든 여자였다. 그녀는 ‘한 마리의 새’처럼 가냘픈 체격에 걸음새가 사뿐사뿐했으며, 약간 어린아이 같은 둥근 얼굴에 연보랏빛 눈동자를 지녔다. 폐질환이 있어서인지 목소리는 쇳소리가 났다.
 

 

점차 폐질환이 심해지고 정신까지 온전치 않게 되면서 중년에는 편집증과 피해망상에 사로잡혔다. 마르트는 다른 화가들이 보나르의 아이디어를 훔칠까봐 집에 찾아오는 것을 싫어했다. 보나르가 강아지 산책을 핑계로 친구를 만나야만 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그는 마치 이런 억압을 즐기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행동하면서 그녀에 대한 연민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모든 생활이 마르트 중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맑은 공기와 청결함 그리고 안정이 필요한 그녀를 위해 한적한 온천이나 요양지를 찾아다녔다.  

 

평소 목욕하는 것을 좋아해 욕조에서 살다시피한 그녀를 위해서 당시로선 드문 뜨거운 물이 나오는 시설을 갖추는 등 돈을 아끼지 않았다.
   
   보나르는 이미 결혼신고 수년 전에 자신의 전 재산을 마르트에게 남긴다는 유서를 남겼다. 뿐만 아니라 오십줄에 만나 5년 동안 함께 보낸 모델이자, 연인이자, 약혼자였던 젊은 여인 르네 몽샤티와도 고통스러운 이별을 감행했다. 결별선언을 들은 몽샤티는 자살을 했고, 보나르는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마르트와 결혼신고를 하게 되었다.
   
   이상한 것은 그때부터다. 보나르는 자기 또래인 마르트의 나체를 더욱 더 집착적으로 그려낸다. 그것도 오십대 중반의 여자를 20대 중반, 열정적으로 사랑했을 당시의 젊고 아름다운 육신으로만 묘사했다. 목욕 준비를 하고, 욕조에 막 들어서고, 목욕을 끝내고 분가루를 바르는 여인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렇게 400점에 가까운 작품을 남겼다. 중요한 건 그림 속 그녀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여자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마치 공기처럼 투명하게 부유하는 이미지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나체가 아닌 정물이나 풍경을 그릴 때조차도 마르트는 거의 모든 작품에 등장한다.  

 

그것도 단박에 명료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유령처럼 어슴푸레 출몰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마르트를 찾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열심히 보나르의 그림을 들여다보아야만 한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중요한 건 보통 사람들에겐 힘들고 버거운 대상인 신경증환자가 보나르에겐 영감의 근원이 되었다는 점이다. 병든 마르트와 살면서 가장 생산적인 시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무엇이 보나르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보나르는 왜 마르트에게 매료된 것일까. 그것은 단순히 연약하고 병든 여자에 대한 보호본능과 연민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죽은 보나르를 불러낼 필요는 없다. 그림이 말해주니까.
   
   그림 속 마르트는 거의 혼자다. 그녀는 욕조에 들어가거나, 목욕을 하거나, 수건으로 몸을 닦거나, 거울을 들여다보거나, 식탁에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실 때에도 언제나 홀로다. 물리적 의미에서가 아닌 심리적 의미에서 그렇다.

마르트는 세상에서 할 일이라고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전부인 양, 혹은 자기 앞의 사물이 온 세계인 양 완전히 ‘몰입’되어 있다. 마치 자폐증에 걸린 아이처럼, 놀이에 빠진 아이처럼 자기만의 세계에 푹 빠져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모습이 예술가인 보나르를 매료시켰을 것이다. 철학자 강신주가 사랑에 관한 강의에서 인용했던 한용운의 시처럼 ‘님의 자유를 사랑’했던 것이다.
   
   마르트가 병적인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지 않고, 여느 여자처럼 헌신적으로 보나르를 사랑했다면? 그녀가 자신을 미스터리하게 꾸며내지 않았더라면? 아마 보나르는 더 이상 그녀 곁에 머물러 있지 않았을 것이다.
 

 

마르트의 사랑은 늘 미끄러지기에 안타깝고 아쉽다. 그렇기에 그녀에 대한 화가의 환상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었다. 보나르는 그렇게 반쯤만 존재하는 여자를 영원히 존재하는 욕망의 대상으로 격상시켜 놓았던 것이다.
   
   수년 전 TV 토크 프로그램에 가수 타블로가 초대손님으로 나왔다. 아마도 결혼 전이었나 보다. 이상형을 묻는 질문에 대한 타블로의 대답은 “낯선 여자!”. 참으로 인상적인 이 대답은 사랑의 담론에서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는 마르셀 프루스트를 환기한다. “그녀는 다른 어떤 이유에서가 아니라, 나와 다른 자, 즉 타자이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비밀스러운 것이며, 이 타자성 때문에 결국 나로 환원될 수 없고, 늘 낯선 자로 남는 것이다.” (‘사라진 여인’ 중)  

 

그러니까 프루스트는 알베르틴의 이타성을 파괴하고, 그녀를 소유하는 데 성공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그녀의 이타성, 그녀의 낯섦이 계속 상처를 주는 한에서만 그녀를 사랑할 수 있었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보나르의 사랑 역시 프루스트적인 것이었으리라.
   
   마르트가 없었다면, 그녀가 사람들을 좋아했더라면, 그래서 은둔하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았더라면, 보나르는 어떤 작품을 했을까. 단언컨대, 이런 환상적인 그림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게 중요한 건 마르트의 신비가 아니다. 그녀를 바라보는 보나르의 내면이다. 말년의 자화상을 보면 어떤 설명도 사족이다. 그림이 문학보다 위대한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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