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스크랩] 일본군이, 故 유관순 열사에게 행었던 고문들

백삼/이한백 2013. 10. 12. 10:04

 

일본군이, 故 유관순 열사에게 행었던 고문들 

 

 

 

 

 

故 유관순 열사 · 독립 운동가

1902年 12月 16日 ~ 1920年 9月 28日
 
서대문 형무소, 검거 당시 17세

 

故 유관순 열사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라곤 없는

상상 초월인 엄청난 고문을 받았었다고 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성폭행.

그 것도, 고문을 당하고 난 뒤 몸이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당했었었다고 한다. 
그 고통이, 얼마나 컸었을지 … , … .  
다가 성폭행은, 육체적으로만 아니라 성적 · 정신적 피해도 뒤따르기 미련인데 … , … .


그리고 일본군들은, 故 유관순 열사의 머리에 콜타르를 바르곤 마치 가발을 벗기듯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머릿 가죽을 통째로 벗겨냈었다고 한다.   
 피부 없는 생살 … , 얼마나 고통스러웠었을까 … ?

그리고 손톱을, ?치로 들었 놨다 하면서

서서히 뽑는 고문도 했었다고 한다.

열 손가락, 모두 다.

그리고 또 위와 호스를 연결시켜, 이물질이나 변 등을

위에 강제로 투입시키는 고문도 행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 면도칼로, 귀와 코를 모두 깎아냈었다고 한다.

또한 밥에, 모래와 쇳가루 등을 넣어 먹였었다고도 한다.

짐승도 먹지 않는, 그것을 사람이 그 어찌 먹을 수 있었었는지 … , … ?

또 거꾸로 천장에 매달아 놓은 채, 코에 고춧가루나

후추를 들이붓는 고문도 실행됐었다고 한다.

무려, 세 시간 동안이나 … .

 

하지만 그것도 부족해,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나무상자긴 대못을

박아놓곤, 그 속에 故 유관순 열사를 강제로 접어 넣었었다고 한다.

그 좁은 나무상자 속에서 옴짝달싹도 못하는데, 대못까지 박아 놓았었다니 … , … ?

그 것도, 삼 일 씩이나 … , … .

그리고 더욱 더 가관이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 故 

유관순 열사의 옷을 발가벗겨 세워 놓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것 뿐만도 아닌, 일본군들은 모든 독립 열사들이 보고 있는

곳에서 故 유관순 열사의 옷을 발가벗겨 일본군들이 항상 지니고

있던 칼로 양쪽 가슴들을 모두 잘라냈었다고도 한다.

그 외에도, 많은 고문들이 이뤄졌었다고 한다.
발바닥 가죽 벗기기 · 입 찢기 · 전기고문 · 달군 인두로 허벅지 지지기 · 음부와
겨드랑이

털을 달군 쇠로 태워버리기 · 시뻘겋게 달궈진 쇠몽둥이로 등 후려치기 · 상체를

벗겨 채찍으로 등 후려치기 · 입에 호스를 연결하여 물 주입하기 등등.

 

故 유관순 열사의 사망 소식을 접한 이화 학당의 프라이 교장은,

국제 여론에 호소하여 열사의 시신 인도를 요구했었다고 한다.

해서 결국 그 시체를 받긴 받았었는데 … , 그렇게

시신은 아주 끔찍하게 돼 있었다고 한다.

머리 · 몸통 · 사지가 따로따로 잘라져, 여섯 토막으로 나눠져 있었으며,

코와 귀가 잘려 나가고 · 머리카락이 머리가죽째 뽑혀졌었을 뿐 아니라

손톱 · 발톱까지도 다 뽑혀져 있던 모습이었었다고 한다.  

 

死因은, 바로 그런 고문으로 인한 장독(杖毒)으로 1920年 10月 12日, 

서대문 감옥소에서 18살인 참 어린 나이로 순국했었다.

 1920年 10月 14日, 정동 예배당에서 김종우 목사의 주례로 유족 3형제와 동창생들이

애통해 하는 가운데 영결식이 거행됐었고, 시신은 이태원 공동묘지에 묻혔었다고 한다.

그러나 열사의 무덤은, 도로 개설로 손실돼 그 근방 어디에 옮겨졌다가,

참 어처구니 없게도 그 조차 유실돼 버리고 말았었다고 한다.

 

 

 

  

 

 

                                 

  故 유관순 열사의, 서대문 감옥 수형자 기록표 사진

 

故 유관순 열사의, 마지막 유언

 

내 손톱이 빠져 나가고 · 내 귀와 코가 잘리고 ·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   

 


한 곳으로 몰아넣어, 집단으로 무차별 학살한 후 불태운 모습



죽이는 방법, 시범 · 실습 현장 모습 · 1938年

강변에서, 총 · 검으로 살육하는 실습을 자행하고 있다.
이런 현장을 지켜 보기 위해, 동원된 일본군들은 관심 깊게 보고 있다.



산더미같은 시체들

 여성의 하의가 벗겨져 있고, 하체에선 선혈이 흘러 나오고 있다.



수장된 시신, 손을 뒤로 묶곤 못에 수장을 시켰었다.
막대기는, 위에서 누르고 있다.

살기 위해, 그 얼마나 바둥거렸었을지 … , … .



갓난 아기의 죽음

인형처럼 뒹굴고 있는, 아이들의 시체.
아예 일본군들은, 전쟁으로 이성을 상실했었던 듯 … .


창고에서의 독살 

엄청난 시체들이, 당시의 혹독한 진실을 보여 주고 있다.



아예 일본군들은,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을 말살하기로 한 것인다.
어린 아이들까지, 다 죽여 불태워졌었다.
온갖 수단으로 자행한 이런 행위들은, 사진 속에선 피할래야 피할 순 없다.

 

 

독립군 간부의, 처형 모습 

목을 치기 전, 뒷편 일본군의 웃는 모습을 볼 땐 분노보다

일본인의 양심과 목적을 뚜렷이 알 수 있을 것 같다.

 



노역자가, 운송을 마치면 죽음이다.
부릴 때로 부리곤, 쓸모가 없어지면 장소와 때를 불문하곤 이렇게 죽였었다.

 

 

故 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 시절

출처 : 朴英才의 文學 blog
글쓴이 : 박영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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