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이승만 성공한 매국노

백삼/이한백 2013. 10. 12. 10:06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이완용은 실패한 매국노,
이승만은 성공한 매국노라는 것이다.

왕족이자 기득권층인 양반의 신분에서 근대화의 물결을 편승 외세에 기댄 매국노, 그는 1910년대의 

독립운동세력을 약화 분열시킨 주역이였으며, 독립운동자금의 한 축이였던 미주교포들의 세금을 착복 

주식회사를 차린 자이다. 독립청원을 명받은 대한제국시절에서는 자신의 도미유학수단으로 활용하는 

영악한 매국짓을 행하고, 국민회시절에는 위임청원이라는 천인공로할 매국짓을 행한다. 하와이에 

이승만의 정착을 도운 독립운동가들에게는 배신으로 화답한 이승만, 임시정부시절에 이르러는 대통령 

손병희가 취임을 못한 점을 악용하여 대통령을 사칭 결국 그 직함을 강탈한다.

한 걸음 더 나가 임정의 방향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자 미주지역에서 송금하던 독립자금을 착복, 

주식회사를 차려 돈벌이에 나선다. 그는 진주만사건으로 미일간의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자신의 

영달을 위한 영리사업에 치중한 자이다. 미일갈등이 심화되어지자 미국의 우세를 점친 이승만은 다시 

독립운동에 합류 일정부분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지만 그는 독립운동보다는 미국의 대일전쟁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 미국의 심리전인 "미국의 소리"에 참가 미국의 대일전쟁에 도움을 준다.

이승만의 임시정부에 대한 태도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행태를 반복하면서 결국 해방정국에 도착한다.




이승만의 해방이전 행적은 다음으로 정의될 수 있다, 

1918년 국민회대표직함은 사용하면서 국민회의 파리강화회의 독립청원을 수행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의 야심이 드러난 것은 1919년 3월 1일 고국에서 일제에 항거하는 3. 1운동이 일어나자 그를 따르는 

교민들을 규합하여"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한인대회의 발언이었다." 이승만은 "한국이 일본에 

합병된 뒤에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리고 나는 단 한 번도 독립운동을 획책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한국독립은 

국제연맹에"청원서"를 내고 "위임통치를"받은 후에 해야 할 일이며, 독립이 된다면, 반드시"기독교"국가를 

건설하고"미국식"민주주의를 표방할 것이라고 역설을 하며 가장 양심적 평화를 사랑하는 박애주의자처럼 

2박 3일간 미국각지에서 몰린 교민들을 기만하며 치렀다. 이날 이승만은 미국의 신화 같은 초대대통령"

워싱톤이 앉았다는 의자에 앉아건방을 떨며"새한국의 초대대통령이 자신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과시하며 

대통령 취임식 까지 했다. 

위의 사건은 후일 해방대한민국을 분단시키는 신탁통치를 낳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