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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퀸'의 남자, 김원중은 누구?.."아이스하키 에이스"
출처 디스패치 입력 2014.03.06 08:56 수정 2014.03.06 10:30[Dispatch=나지연·김미겸·김혜원기자] '퀸' 김연아(24)가 사랑에 빠졌다. 상대는 아이스하키 선수 김원중(30)이다. 국가대표 부동의 에이스로, 포워드(FW)로 활약중이다.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안양 한라에서 활약했다. 현재 국군체육부대 하키팀(대명 상무) 소속이다.
사실, 아이스하키는 비인기 종목이다. 국내 실업팀은 고작 3개. 안양 한라, 하이원, 대명 상무가 전부다. 국내 단일리그를 꾸릴 수도 없는 형편. 한중일 3국이 모여 만든 '아시아 아이스하키 리그'가 유일한 전쟁터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김원중은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다. 국내에서보다 일본에서 더 인기가 많은 선수다. 그의 인기 비결은 단연 실력. 안양 한라 소속 당시 아시아리그 2연패 주역이다. 2011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게다가 아이스하키 최고의 꽃미남 선수다. 180cm가 넘는 신장, 다부진 체격, 또렷한 이목구비로 여성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훈남 스타, 그래서 김연아도 그에게 빠졌는지 모른다.
◆ 김원중, 아이스하키 선수가 되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초등학생 때 아이스하키를 시작한다. 하지만 김원중이 처음으로 하키 스틱을 잡은 건 중학교 시절. 경희중학교 아이스하키부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출발이 늦었기에 남들보다 2배로 땀을 흘렸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서서히 실력을 인정받았고, 경복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김연아와 학번은 다르지만, 고려대 동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원중은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딛고, 한 우물을 팠다. 그리고 2006년 안양 한라에 지명됐다.
선수 생활이 순탄한 건 아니었다. 대학 4학년, 안양 한라와의 연습경기에서 당한 어깨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입단 첫 해에는 영락없는 벤치 신세였다. 그는 현실을 탓하기보다 실력을 키웠다. 처음 하키채를 잡았을 때 처럼, 가장 일찍 링크로 나가 가장 늦게 짐을 쌌다.
◆ 김원중, 부동의 국가대표 에이스
김원중은 준비했다. 벤치 신세를 탓하지 않았다. 언젠가 기회가 올거라 믿었다. 그렇게 2년간 자신과 싸웠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터닝 포인트. 2007~2008 아시아하키리그, 김원중은 중국과의 경기에 출전하자마자 데뷔골을 터뜨렸다.
김원중은 한 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강렬한 데뷔골 이후 서서히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2008~2009시즌이 시작되자 팀의 주축이 됐다. 그 해 우승. 내친김에 2009~2010 시즌까지 접수했다. 안양 한라는 한국팀 최초로 아시아리그 2연패의 주인공이 됐다.
2011년에는 아스타니-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출전해 동메달도 목에 걸었다. 2012년 4월, 폴란드에서 열린 '디비전1'에 출전, 한국을 B그룹 우승국으로 만들었다. 당시 김원중은 국가대표 부주장으로, 한국팀 최다인 5골을 뽑아내기도 했다.
◆ 김원중, 상무에서 제2의 인생
김원중은 현재 국군체육부대 아이스하키팀인 '대명 상무' 소속이다. 한 마디로 군인 신분이다. 국군체육부대는 2018년 평창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키팀을 만들었다. 2012년 11월, 국가대표 출신을 우선적으로 선발했고, 김원중이 선발됐다.
김연아와 조우한 것도 이 때다. 김연아는 2012년 7월, 태릉 선수촌에 입소했다. 김원중은 4개월 뒤인 11월에 입소했다. 둘은 태릉 빙상장을 이용한다. 특별한 데이트는 없었다. 훈련을 하며 얼굴을 확인하는 정도. 가끔 외출 외박 포상 휴가를 얻으면 함께 저녁도 먹었다.
김원중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운동에만 집중했다. 상무는 창단 첫 해, 2013 전국 아이스하키 종합선수권대회를 제패했다. 제 95회 전국동계체전 아이스하키 우승 트로피도 들었다. 2013~2014시즌 아시아 아이스하키리그 PO 진출도 이루어냈다.
◆ 김원중, 김연아와의 동병상련
대명 상무의 소속 선수는 고작 17명 뿐이다. 대부분의 실업팀이 30명 안팍의 선수를 보유한 것에 비해 열악하다. 마음 놓고 훈련할 수 있는 빙상장도 없다. 태릉 빙상장에서 피겨, 쇼트트랙 선수들과 나눠 쓴다. 그런 면에서 김원중과 김연아의 공감대는 높을 수 밖에 없다.
김원중은 부상에도 익숙하다. 대학 시절 어깨 부상을 당했고, 지독한 슬럼프를 극복한 경험이 있다. 김연아도 부상과 씨름했다. 소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중족골 미세손상 진단을 받았다. 김원중과 김연아, 둘은 서로의 고통을 가장 잘 이해하는 친구이자 연인이었다.
김연아는 소치를 마지막으로 현역 생활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김원중은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가까이는 이번 시즌 아시아 아이스하키리그 우승을 꿈꾼다. 멀리 보면 평창행이 남아있다. 한국 최초 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해 스틱을 더욱 단단히 잡을 예정이다.
김연아는 2014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선수 생활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김원중의 활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출전이 목표다. 지난 2012년, 대명 상무가 창단된 배경에도 평창이 있다. 실력파 김원중은 1순위로 상무 입단의 기회를 얻었다.
< 사진=이승훈·송효진·서이준기자 >
사실, 아이스하키는 비인기 종목이다. 국내 실업팀은 고작 3개. 안양 한라, 하이원, 대명 상무가 전부다. 국내 단일리그를 꾸릴 수도 없는 형편. 한중일 3국이 모여 만든 '아시아 아이스하키 리그'가 유일한 전쟁터다.
게다가 아이스하키 최고의 꽃미남 선수다. 180cm가 넘는 신장, 다부진 체격, 또렷한 이목구비로 여성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실력과 외모를 겸비한 훈남 스타, 그래서 김연아도 그에게 빠졌는지 모른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초등학생 때 아이스하키를 시작한다. 하지만 김원중이 처음으로 하키 스틱을 잡은 건 중학교 시절. 경희중학교 아이스하키부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출발이 늦었기에 남들보다 2배로 땀을 흘렸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서서히 실력을 인정받았고, 경복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김연아와 학번은 다르지만, 고려대 동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원중은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딛고, 한 우물을 팠다. 그리고 2006년 안양 한라에 지명됐다.
선수 생활이 순탄한 건 아니었다. 대학 4학년, 안양 한라와의 연습경기에서 당한 어깨부상이 그를 괴롭혔다. 입단 첫 해에는 영락없는 벤치 신세였다. 그는 현실을 탓하기보다 실력을 키웠다. 처음 하키채를 잡았을 때 처럼, 가장 일찍 링크로 나가 가장 늦게 짐을 쌌다.
김원중은 준비했다. 벤치 신세를 탓하지 않았다. 언젠가 기회가 올거라 믿었다. 그렇게 2년간 자신과 싸웠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터닝 포인트. 2007~2008 아시아하키리그, 김원중은 중국과의 경기에 출전하자마자 데뷔골을 터뜨렸다.
김원중은 한 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강렬한 데뷔골 이후 서서히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2008~2009시즌이 시작되자 팀의 주축이 됐다. 그 해 우승. 내친김에 2009~2010 시즌까지 접수했다. 안양 한라는 한국팀 최초로 아시아리그 2연패의 주인공이 됐다.
2011년에는 아스타니-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출전해 동메달도 목에 걸었다. 2012년 4월, 폴란드에서 열린 '디비전1'에 출전, 한국을 B그룹 우승국으로 만들었다. 당시 김원중은 국가대표 부주장으로, 한국팀 최다인 5골을 뽑아내기도 했다.
김원중은 현재 국군체육부대 아이스하키팀인 '대명 상무' 소속이다. 한 마디로 군인 신분이다. 국군체육부대는 2018년 평창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키팀을 만들었다. 2012년 11월, 국가대표 출신을 우선적으로 선발했고, 김원중이 선발됐다.
김연아와 조우한 것도 이 때다. 김연아는 2012년 7월, 태릉 선수촌에 입소했다. 김원중은 4개월 뒤인 11월에 입소했다. 둘은 태릉 빙상장을 이용한다. 특별한 데이트는 없었다. 훈련을 하며 얼굴을 확인하는 정도. 가끔 외출 외박 포상 휴가를 얻으면 함께 저녁도 먹었다.
김원중 역시 대부분의 시간을 운동에만 집중했다. 상무는 창단 첫 해, 2013 전국 아이스하키 종합선수권대회를 제패했다. 제 95회 전국동계체전 아이스하키 우승 트로피도 들었다. 2013~2014시즌 아시아 아이스하키리그 PO 진출도 이루어냈다.
대명 상무의 소속 선수는 고작 17명 뿐이다. 대부분의 실업팀이 30명 안팍의 선수를 보유한 것에 비해 열악하다. 마음 놓고 훈련할 수 있는 빙상장도 없다. 태릉 빙상장에서 피겨, 쇼트트랙 선수들과 나눠 쓴다. 그런 면에서 김원중과 김연아의 공감대는 높을 수 밖에 없다.
김원중은 부상에도 익숙하다. 대학 시절 어깨 부상을 당했고, 지독한 슬럼프를 극복한 경험이 있다. 김연아도 부상과 씨름했다. 소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중족골 미세손상 진단을 받았다. 김원중과 김연아, 둘은 서로의 고통을 가장 잘 이해하는 친구이자 연인이었다.
김연아는 소치를 마지막으로 현역 생활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김원중은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가까이는 이번 시즌 아시아 아이스하키리그 우승을 꿈꾼다. 멀리 보면 평창행이 남아있다. 한국 최초 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해 스틱을 더욱 단단히 잡을 예정이다.
김연아는 2014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선수 생활 결실을 맺었다. 하지만 김원중의 활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2018 평창 동계 올림픽 출전이 목표다. 지난 2012년, 대명 상무가 창단된 배경에도 평창이 있다. 실력파 김원중은 1순위로 상무 입단의 기회를 얻었다.
< 사진=이승훈·송효진·서이준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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