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이씨
[정의]
이도를 시조로 하고 이정간을 입향조로 하는 서울특별시 구로구 세거 성씨.
[연원]
전의이씨(全義李氏)의 시조 이도(李棹)는 고려 개국공신이다.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따르면, 이도는 초명이 이치(李齒), 시호는 성절(聖節)로, 고려의 삼한 통합 때 공을 세워 삼한개국(三韓開國) 익찬이등공신(翊贊二等功臣) 삼중대광(三重大匡) 태사(太師)에 책록되었고, 전산후(全山侯)에 봉해졌다. 또한 이도의 신도비(神道碑)를 보면, 공신에 책록되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도는 공주(公州) 출신으로 왕건(王建)이 후백제의 견훤(甄萱)을 정벌하기 위해 남하하여 공주에 이르렀을 때, 홍수로 금강(錦江)이 범람하여 진군이 멈추게 되자 도강책(渡江策)을 주도한 공이 커서 도(棹)라 사명(賜名)하고 앞서와 같은 공신 책록과 봉작까지 하였다고 한다. 전산(全山)은 전의(全義)의 옛 이름으로, 전산후에 책봉된 후 이도는 전의의 이성산(李城山) 아래로 이거하여 정착 세거하였기에 후손들이 전의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또 예안이씨(禮安李氏)가 전의이씨에서 분관되었기에 흔히 전의·예안이씨라고 부른다.
분적종 및 분파로는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 문장공파(文莊公派), 전서공파(典書公派), 문의공파(文義公派) 등이 있다.
[입향경위]
구로구 수궁동 궁골의 청룡산 아래 살고 있는 전의이씨 집안은 이도를 시조로 하여 1360년(공민왕 9)부터 11세손인 이정간(李貞幹)[1360~1439]과 이문간(李文幹) 형제가 궁동 산10번지 일대 약 30만평을 사패지로 하사 받으면서 정착한 후 현재까지 22대가 이어오고 있다. 이정간은 강원도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나이 70세 때 100세에 가까운 어머니를 지성으로 보양하자 세종은 이정간을 자헌대부 중추원사(資憲大夫中樞院使)로 승진시킨 후 궤(机)와 장(杖)을 내리고 교지로 효행을 표창하였다. 세종이 친히 어필을 내린 ‘「가전충효 세수인경(家傳忠孝世守仁敬)」’은 전의이씨 집안의 가훈으로 대대로 전한다. 아들로는 이사흠, 이사관, 이사신, 이사혜, 이사민 오형제를 두었다. 현재도 궁동 전의이씨 화수회는 이러한 선조들의 효행을 기리고자 매년 이정간의 경로 충효 사상을 높이 기리는 행사를 대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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